필자 입장에서 독자에게 드리는 세 가지 부탁
이 책은 일본의 개항에서 조선의 개항에 이르기까지(1853-1876) 20여년을 조선침략론(정한론)을 중심으로 전환기 한일관계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했다. 『메이지 유신 초기의 조선침략론』을 읽기 전,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해 주면 좋겠다.
첫째, 지금까지는 일본의 개항에서 조선의 개항에 이르는 한일관계사를 연속적으로 살펴보는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막부시대의 우호 관계에 대한 연구와 메이지기의 침략성에 대한 연구가 단절적으로 이해되어온 측면이 있다. 그래서 본서는 ‘성신지교’가 ‘구폐(막부시절의 폐단)’라고 인식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독자들이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연속성을 이해하면서 읽어 준다면 더없이 고마울 것 같다.
둘째는 대마도의 ‘구폐개혁 ’의도에 대한 동래부의 태도이다. 기존의 연구는 “조선은 완고한 쇄국정책으로 전혀 대화할 생각도 없이 왕정복고를 알리는 사절을 문전 박대하였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격변하는 상황 속에서 조선이 대마도의 역할을 기대하였고 우호를 설득하고 정성을 다해 접대하였다는 사실이 감춰지고 있다. 일부 원칙에 어긋나는 선박들에 대해 접대를 하지 않은 것이 전부인 양 이해되었음을 인식하고, 가역(조선과의 가교역할)을 유지하기 위한 대마도의 논리와 이에 대한 동래부의 대응 논리는 무엇이었는지 독자들이 의문을 가지고 읽어 주기를 바란다.
셋째는 1872년 9월, 하나부사가 왜관에 와서 대관소를 폐지하고 외무 관료로 관수를 임명하고 떠난 이후를 주목해 주길 바란다. 일부 연구에서는 이때 왜관이 침탈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기유약조체제가 일방적으로 부정되면서 외교적인 접촉은 격이 낮아졌지만, 관계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었다. 왜관은 변함없이 동래부 소관으로 관내의 담장과 건물, 선창의 수리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순찰도 이뤄졌다. 표류민 송환도 형태를 달리하면서 계속되었고, 무기와 화약의 수입도 추진되고 무역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만 500명 정도 거주하던 왜관에 70여 명만이 거주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쓸쓸함은 무시할 수 없다. 왜관이 침탈당한 것이 아니라 기유약조의 붕괴로 말미암아 쇠퇴해 가고 있었던 점에 주의하며 글을 읽어 주길 바란다. 이 와중에 외무성 관료들의 논리와 조선의 논리가 충돌하고 있었다. 조선은 정신문명을 소중히 여기고 서구의 물질문명을 원하지 않았을 뿐이지 무지한 나라가 아니었다.
본 저서의 제목에 해당하는 조선침략론은, 목차를 보면 1장-4, 2장-4, 3장-2, 3장-4, 4장-3, 4장-5의 부분에 설명되어 있다. 일본의 정세 변화에 따라서 주목되는 6차례의 조선침략론 주장을 분석하고 설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제목을 보고 이 책을 선택한 독자들은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읽어 주길 바란다.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만든 서적
일본 유학 시절, 석사 논문을 준비하다가 1860년 러시아 군함 포사드닉호가 대마도에 정박하였을 때 작성된 쓰시마의 사료를 읽던 중, 일본의 통설이 사실과 다름을 발견하게 되었다. “포사드닉호는 대마도를 점령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이에 영국도 대마도를 점령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식민지화의 위기가 발생하였는데 지배층은 여기에 겁을 먹어서 대마도를 떠나려고 이봉운동(移封運動)을 하였으나 오로지 민중만이 이에 저항하였다.”는 역사상이 통설이었는데 이는 막부나 대마도의 사료와는 합치하지 않았다. ‘만들어진 역사’라고 할까? ‘정치적 작용’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메이지 정부의 기록인 『유신사(維新史)』를 비판하면서 학문의 길을 열게 되었다. 1995년 3월 「에도막부 말기 대마번 정치사의 연구(幕末対馬藩政治史の研究)」로 학위를 취득하였고, 2003년에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모아 저서 『19세기 후반의 대마주와 한일관계』 (국학자료원)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전체적인 연결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그 후, 동북아재단에서 장기간에 걸쳐 총독부 교과서 분석 프로젝트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총독부 시절의 교과서 분석은 정치 권력과 역사학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했고, 더불어 한국 사학,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어 주었다. 일본에서 막말-개항기를 전공한 학도로서 조선의 개국·개항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이동했다.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 지배층이 무능하고 부패하였음을 강조하였다. 조선의 주체적인 고민과 결정은 사장되고 무시되었으며 일본의 역할만이 강조되었다. 이후 한국 지식인들도 개국을 일본의 침략 과정으로 간주한다. 주체적인 고민과 결정이 무시되고 침략의 과정으로만 서술된 근대사는 실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역사적 교훈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본의 개항에서 조선의 개항까지 한일관계사를 다시 쓰는 것은 나의 책임이라는 자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는 저서 집필을 계기가 되었고 필자는 집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제1부는 일본의 개항과 대마도, 제2부는 메이지 정부의 성립과 왜관, 제3부는 개항 이야기(개항체제의 확립과정) 로 채워 나갈 것을 잠정적으로 설정했다. 작업을 진행하던 중에 동북아 재단에서 ‘메이지 유신과 조선침략론’에 대한 교양서적을 집필 요청이 들어왔다. 더없이 반가운 요청이었다. 전문 서적을 출간하기 전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메이지 유신과 조선침략론’을 흥미로운 주제로 풀어내어 설득력 여부를 평가받아 보는 것은 정말 좋은 기회였다. 나는 계획하였던 1부와 2부를 간추리고 조선침략론을 부각시켜 원고를 제출했다. 원고는 당연히 많은 수정을 거쳤다. 연구자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쟁점들이 많이 삭제되었고, 당연하다고 생각한 부분에 대해서 설명이 추가되는 과정은 나에게 배움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이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첫걸음을 뗐으니 앞으로는 조금 더 쉽고 재미있는 역사서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을 만드는 데에 애써주신 동북아재단 담당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특히 문장을 쉽게 쓰도록 도와주신 청아출판의 홍은아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올린다. 책의 내용에 오류가 있다면 오로지 필자의 책임이다. 독자의 질정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