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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폴란드-독일의 역사화해 사례로 본 동북아시아 역사분쟁의 해결 방안
  • 김종학 (한일관계연구소 연구위원)

폴란드-독일의 역사화해 사례로 본 동북아시아 역사분쟁의 해결 방안재단은 1113일 폴란드 루블린에서 중동부유럽연구소(Institute of East-Central Europe, Poland)동북아시아와 중동부 유럽의 인접국가 관계과거 역사와 화해의 전망을 주제로 국제 학술회의를 공동개최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국과 폴란드의 피식민 경험 및 독립운동의 역사를 공유하고, 폴란드와 독일의 역사화해 사례를 통해 동북아시아 역사분쟁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한국과 폴란드의 피식민 경험 및 독립운동사 비교

필자는 ‘19세기 서양 국제법과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 과정발표에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서양 국제법의 논리를 철저히 추종했으며, 조선 침략 또한 서양 국제법과 서구 열강의 식민지 획득 방식을 모방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음을 지적했다. 또한 1876년 조일수호조규에서 자주지방(自主之邦)’ 규정이 만들어진 배경과 1894년에 이르러 그것이 일본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권독립국의 의미로 해석되는 과정을 통해 일본은 이른 시기부터 국제정치의 몰()윤리적 권력정치의 속성을 체득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곧 자국의 힘이 충분치 않을 때는 조약 문구를 애매하게 만들어두었다가 훗날 힘이 강해졌을 때 이를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외교행태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장세윤 재단 연구위원은 한국 독립운동의 특징과 의의-한국독립운동사,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발표를 통해 일제의 한국 식민통치 시기별 특징과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에 관해 설명했다. 또한 한국 독립운동의 세계사적 의의는 세계 식민지 해방운동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것,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에 대항해서 고유 문화를 지킨 것, 거의 모든 한인 거주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것, 반제국주의 투쟁 및 약소 민족의 해방 투쟁과 연대한 것,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징적인 면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것 등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피오트르 그우슈코프키(Piotr Głuszkowski) 바르샤바대 교수는 폴란드 분할과정과 지배실태-러시아를 중심으로발표에서 폴란드가 18세기 말 3차례의 분할을 거쳐 러시아에 주권을 빼앗긴 과정을 소개했다. 폴란드가 식민지로 전락한 가장 큰 이유는 국왕선거제도로 인한 왕권의 약화와 주변 열강, 특히 러시아의 내정간섭에 있었다. 또한 제1차 분할이 이뤄진 직후 소집된 ‘4년의회에서는 각종 개혁 법안이 제출되었지만, 급진적 변혁을 꺼린 귀족 그룹은 러시아 군대를 끌어들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는 결국 러시아에 의해 제2차 분할을 당하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비에스와프 차반(Wiesław Caban) 얀 코하노프스키대 교수는 ‘11월 봉기와 1월 봉기-독립으로 가는 길발표에서 1830년의 11월 봉기와 1863년의 1월 봉기의 배경과 경과, 실패 원인을 분석했다. 전자는 폴란드와 러시아 간 전면전의 양상을 띤 반면에 후자는 게릴라전 형태로 진행되었다는 차이는 있지만, 공통된 실패 원인은 서유럽 국가들의 원조에 지나치게 의뢰한 데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반 교수는 이 두 차례의 봉기가 폴란드 민족의식을 고취하여 1918년 폴란드의 독립에 기여했음을 강조했다.

 

폴란드-독일의 역사화해 사례로 본 동북아시아 역사분쟁의 해결 방안

 

역사 분쟁의 해결 방안 모색

한편 미로스와프 필리포비츠(Mirosław Filipowicz) 중동부유럽연구소장은 국가 간 관계 개선과 악화의 역사라는 발표에서 사실로서의 역사와 이야기로서의 역사 서술을 구분해야 함을 강조했다. 국가, 민족, 사회, 집단에 관한 역사 서술은 기본적으로 은유에 기초하며 특히 의인화 방식을 취한다. 단 한 번의 설명으로 의심할 수 없는 역사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실증주의에 대한 맹신에 불과하다. 따라서 역사학자의 관점에 따른 해석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역사화해의 첫걸음이 된다고 주장했다. 남상구 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은 ·일 간 역사 갈등과 화해를 위한 노력발표에서 한·일 간 역사문제의 본질과 지난 60여 년간 그 화해를 위한 노력이 전개된 과정을 개괄했다. 그리고 한·일 양국의 상호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역사분쟁의 한 가지 해법으로 일본의 역사 인식과 사죄, 보상,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 등을 외국 사례에 비추어 검토하고 평가하는 국제비교연구를 심화할 것을 제안했다.

마렉 라지본(Marek Radziwon) 중동부유럽연구소 박사는 폴란드-러시아 간 역사갈등과 화해를 위한 노력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20세기 폴란드와 러시아 간의 몇 가지 역사적 쟁점을 소개한 후, 진정한 역사화해는 국가의 주도가 아닌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권위주의 체제가 변화하지 않는 한 실현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김용덕 한국외대 폴란드어과 교수는 독일과 폴란드 간 공동역사교과서 편찬의 역사적 배경과 과정을 검토했다. 김 교수는 폴란드-독일 간 역사 갈등과 화해를 위한 노력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양국의 50년에 걸친 공동역사교과서 편찬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과거사 책임 인정과 통렬한 반성, 그리고 피해국 폴란드가 먼저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 양국 역사화해의 배경이 되었음을 강조했다.

    

이날 학술회의에 앞서 이현주 사무총장은 루블린 요한바오로2세대학에서 200여 명의 폴란드 학생들을 대상으로 ‘History in the PoliticsHistorical Disputes in Northeast Asia, North Korea Problem’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했으며, 강연이 끝난 뒤 재단에서 발간한 동북아 평화와 역사문제, 한일 간 역사 속의 우리 땅 독도영문 책자를 배부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재단 연구위원들이 발표한 논문은 폴란드 중동부유럽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영문저널 Yearbook of the Institute of East-Central Europe 특집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또한 한일관계연구소는 이번 학술회의의 성과를 더욱 발전시키고 폴란드 학자들과 학술 교류를 지속하기 위해 2018동아시아와 유럽의 탈식민운동과 역사화해라는 주제로 국제 학술회의를 기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