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역사Q&A
일본의 보수정권 아래 '근린제국조항' 소멸하려나?
  • 이명찬 재단 정책기획실 연구위원

Q : '근린제국조항'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13년 4월 10일 중의원예산위원회에서 답변을 통해 "유감스럽지만, 교과서 검정 기준이 애국심과 향토애를 존중하도록 한 개정 교육기본법의 정신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교과서 검정제도 수정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이러한 답변은 교과서 기술에서 한국과 중국에 대한 배려를 촉구한 '근린제국조항'의 수정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아베 총리는, 제 1차 아베정권 때인 2006년에 다룬 교육기본법(※개정교육기본법은 제1차 아베 내각인 2006년 12월에 성립. 전통문화의 존중과 국가와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의 육성을 교육의 기본책무로 규정하고 있음.)이, "일본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할 것을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종군위안부'문제에 관해 '일본군에게 연행', '강요당했다'라는 기술이 통과된 검정교과서에 대해, "검정관이 그러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발언의 배경에는, 현행제도로는 사회과를 중심으로 많은 교과서에 만연하는 자학사관의 기술에 제동을 거는 것이 불가능하고, 개정교육기본법에서 제시한 애국심의 육성이 방해받는다는 인식이 있으며, 이 인식의 바탕에는 '근린제국조항'이 있다는 것이다.

Q : '근린제국조항' 제정의 경위는?

'근린제국조항'이 제정되게 된 배경에는 1982년 교과서 파동이 있다. 문부성에 의한 1981년도 교과용 도서 검정에 대한 일본TV 기자의 보도가 발단이 되어 중국과 한국이 항의하여 외교문제가 되었다. 1982년 6월 26일, 일본TV는 "고등학교용 일본 사교과서에 중국·화북에 대한 '침략'이라는 표기가 문부성의 검정 과정에서 '진출'이라는 표기로 수정되었다"라고 보도하였다.
오보임이 밝혀졌지만 당시의 미야자와 기이치(宮沢喜一) 관방장관은 "교과서 기술을 수정하겠다.", "검정기준을 수정하고 근린제국과의 우호·친선을 배려하겠다."고 약속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 담화에 기초하여 교과서검정 기준에 추가된 것이 '근린제국조항'이다. '근린제국조항'은 "이웃 아시아 국가들과의 사이에 근현대의 역사적 사상을 취급함에 있어 국제이해와 국제협조의 견지에서 필요한 배려를 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Q : 수정 또는 폐기의 움직임은?

자민당의 교육재생실행본부(본부장 :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관방부장관)는 2012년 11월 20일 교과서검정채택개혁과 교육위원회제도개혁 등 5분과회의 중간보고를 발표하여, 교과서 검정기준으로서의 '근린제국조항'에 대한 재검토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아베 총재는 '근린제국조항'에 대한 재검토를 '신정권의 핵심정책'으로 평가하고 자민당의 중의원 선거 공약에 포함시켰다. 아베 정권에서 문부과학성 장관이 된 시모무라 하쿠분은 일본군에 강제 동원된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극우성향의 정치가로, (1) 자학사관의 편향적인 교육의 중단, (2) 교과서 검정제도의 개편을 통한 근린제국조항의 폐지, (3) 애국 교육의 강화 등의 내용을 포함시킨 자민당의 2012년 총선거 교육 공약을 만든 인물이다.

Q : '근린제국조항' 폐지론의 근거는?

'근린제국조항' 폐지론자들은 이 조항의 제정이 이중의 의미에서 부당한 것이었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제정 과정이 부당하였다. '침략'을 검정에 의해 '진출'로 수정하게 했다는 보도는 오보였고(따라서 이 사건은 '침략진출오보사건'이라 불리고 있음), 그것은 일본의 교육주권을 팔아넘기는 행위였다.

'이 조항의 기안·첨가는 한국, 중국의 요구에 의해 발의된 것이 아니고, 현행의 일본 역사교과서의 기술을 '우호'적인 것으로 수정해 달라는 제의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야자와 관방장관은 상대방의 요구 범위를 넘어서, 장래 일본 교육계의 교과서 제작에 수갑·족쇄를 채워 자진해서 상대에게 제공하였다. 그 배경에는 9월에 예정되어 있던 스즈키 젠코(鈴木善幸)총리의 방중 일정을 원만히 진행시키고, 관방장관으로서의 체면을 세우기 위한것으로, 사리를 위해 국가의 명예를 판 것이다.

둘째, 주권 침해의 부당함이다. 일본 이외에 교과서의 내용이 외교상의 문제가 된 예는 없다. 일본의 교과서 검정이 세계의 상식에서 일탈한 원인은 본래 일본의 국내문제였던 교과서의 내용을 둘러싼 논쟁에 스스로 외국의 간섭을 초래한 경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국의 교과서를 제작할 때, 이웃국가인 일본에 대해 어떤 배려도 하지 않으며, 한국의 교과서도 같다고 생각한다. 왜 일본만 이웃 국가를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중국의 교과서는 '남경대학살'에 대해 허구의 숫자를 꿰맞추어 일본의 극악무도함을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한 증오심과 원한을 교육의 다양한 곳에서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무수한 사실 중에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무엇을 교과서에 기재할 것인가, 그 선택은 국가에 따라 당연히 다르다. '종군위안부'나 창씨개명은 한국인에게는 중요한 사실일지라도, 일본인에게는 교과서에 기술하여 수업에서 가르칠 만큼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이상이 '근린제국조항'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Q : '근린제국조항' 유지론의 근거는?

'근린제국조항' 유지론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과거의 반성'을 근거로 1982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 침략이나 조선 통치의 사실이 교과서에 애매하게 기술된 것에 대해 중국이나 한국이 강하게 반발하여, 정부는 "과거의 반성에 대한 인식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 "교과서 기술에 대한 비판에 충분히 귀를 기울여 정부의 책임 하에 시정하겠다"라는 견해를 발표하였고, 이를 근거로 만들어진 '근린제국조항'은 이러한 나라의 기본자세에 근거하는 것이다. 정부 견해에 있는 '과거의 반성'은 40년 전의 일한공동성명서나 33년 전의 일중공동성명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오부치 총리와 김대중 대통령이 공동선언으로 미래 지향의 일한 관계의 구축을 강조했던 것도, '과거의 반성'을 근거로 한 것이다. 원래 아이들에게 역사의 빛과 그림자의 양면을 가르치고 아시아에 한정하지 않고 세계의 나라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둘째, 오보로 탄생했지만 판단은 정당하다. 실제로는 수정이 없었는데, 사실 오인으로부터 태어난 조항이라고 하는 견해가 재평가론의 배경에 있다. 오보는 반성해야 하지만, 조항을 만든 당시의 판단까지가 잘못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잘못된 항의가 있을 때는 제대로 된 학설을 근거로 설명하면 되며, 냉정하고 성숙한 나라의 모습을 나타내면 아이들의 자랑은 저절로 길러질 것이다. 이 조항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교과서가 외국의 하라는 대로 쓰여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문부 과학성에 의하면, 조항에 근거해 검정 의견이 첨부된 것은 확인할 수 있는 한 91년도가 최후이며, 이번에도 없었다고 한다. 이 조항은 실제의 검정 기준으로서 보다는, 내외에 그 자세를 나타내는 선언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이 조항을 삭제하면, 근린 제국에게 괜히 "배려를 그만둔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의미를 띄게 된다. 이상이 '근린제국조항' 유지론자들의 주장이다.

Q : 우리의 대응 방안은?

'근린제국조항'의 폐지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일본 국내의 역사 해석과 관련되어 있는 본질적인 문제이지만, 한국은 이 조항의 당사국이므로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이 조항의 폐지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응은 일본 국내의 '근린제국조항' 유지론자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간접 지원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에 더하여, 또 다른 당사국인 중국과 연계하여 압박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낮은 강도로 유연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좀 더 본질적인 대응으로는, '조항' 폐지 여부에 연연하지 말고 아베정부의 역사인식 전반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대응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근린제국조항' 폐지문제를 제기하여 최근 일본국내정치의 보수적 흐름에 영합하려는 보수정치가들의 국수주의적인 정치행태 하나하나에 일일이 대응하기 보다는, 일본국민 전체의 바른 역사인식 양성을 목표로 하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하겠다. 그 실행방안으로써 한중일 3국간 역사인식의 간극을 좁혀나갈 수 있는 역사공동연구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여 공통의 역사교과서를 만들고, 이에 기초한 3국 공통의 역사교육을 꾸준히 시행해 나가는 작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