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의 현안들은 한일 양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의지' 여하에 따라 '번영의 불씨'가 될 수 있겠지만, '공멸의 불씨'가 될 수도 있음을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 중국, ASEAN(동남아국가연합) 등을 중심으로 FTA(자유무역협정)의 확산과 함께 동아시아 경제통합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지역경제통합에 소극적이었던 우리나라의 경우 2003년 2월 칠레와 FTA를 체결한 이후 싱가포르, EFTA(유럽자유무역연합), ASEAN, 미국, 인도, EU(유럽연합), 페루, 터키, 콜롬비아 등과 FTA를 체결하였으며 캐나다,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 베트남 등과 FTA 체결을 협상중이다. ASEAN 회원국들은 ASEAN 경제공동체를 2015년까지 설립하기로 합의하였으며, ASEAN, 한국, 중국,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은 RCEP(포괄적 지역경제협정 :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한·중·일 FTA 체결협상은 ASEAN 경제공동체 및 RCEP와 함께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지난 2013년 3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TPP(환태평양동반자협정 : Trans-Pacific Partnership Agreement) 협상은 아시아·태평양 연안국가들(호주, 브루네이, 칠레,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 미국) 간의 자유무역협정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TPP 체결협상에 한국과 일본 등이 참여할 경우, TPP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경제통합체로 부각될 것이다.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의의
동아시아 경제통합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평화와 번영을 확보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구축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동아시아 지역의 중요성을 고려해 볼 때,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시장 확대에 따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경제협력 및 발전을 주요 목표로 하는 동아시아 경제통합은 역외국가와의 교역 및 투자 확대를 초래하여 국제무역질서를 보완하고 활성화시키는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증대는 역내 회원국들의 각종 현안과 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각종 국제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창설할 필요성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지역경제통합의 건설은 아직 논의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쿠릴 열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스프래틀리 군도 등을 둘러싼 뿌리깊은 영토분쟁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종군위안부 문제 등과 함께 동아시아 경제 통합의 출범을 어둡게 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통한 뿌리깊은 적대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독일은 사과와 반성에 기초한 '화합과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EC(유럽공동체)라는 평화번영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동아시아지역에는 이러한 평화번영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 요원한 것인가?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선결과제
EU에 비해 동질적인 문화 및 공동체의식이 미흡한 동아시아의 경우 동아시아경제통합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첫째, 역사 및 영토분쟁에 따른 긴장 및 적대감 고조는 관련 국가들간의 대립과 불신을 촉발해 왔다. 대립과 불신의 주된 원인인 국수적이고 감정적인 민족주의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에 평화와 번영을 구축하고자 하는 열린 시민의식과 정치지도자들의 의식전환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둘째, 동아시아의 영토 및 해양 분쟁은 결국 에너지자원을 둘러싼 분쟁이라고 할 수 있다. 황해와 동중국해 유전개발을 둘러싼 이해 국가들간의 분쟁은 결국 에너지 자원를 확보하기 위한 다툼이기때문이다. 에너지자원의 확보와 개발에는 경제발전과 국가안보라는 국가의 중대한 이해가 관련되어 있으며 에너지자원의 안정적인 확보와 이용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동으로 직면한 문제이기 때문에, 상호협력을 통해서 효율성과 안정성을 제고하는 것만이 이익과 혜택을 향유할 수 있고 동아시아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셋째,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ㆍ11 사태 이후 국가안보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정치적 화두로 등장하였다. 지속가능한 번영은 평화 확보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평화와 번영은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에 필수적이고 상생적인 가치이다. 유럽의 경우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중심으로 한 집단안보체제의 존속은 EC의 성공적인 운영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EU의 성공적인 발전과정을 고려해 볼 때, 동아시아경제통합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지역에서도 동아시아국가들이 주도하는 상설적인 안보협력 체제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EU의 경우 기독교에 입각한 동질적인 문화공유는 결과적으로 유럽경제통합을 촉진시키는 촉매역할을 했는데 비해, 동아시아의 경우 이질적이고 다양한 종교와 문화는 동아시아경제통합의 발전에 필수적인 공동체의식의 형성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단일문화권에만 공동체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성숙되고 열린 문화의식이 있는 경우 '다문화적 공동체'의 성립도 가능하다고 본다. 에너지와 환경 및 테러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협력의 필요성과 세계화의 확산은 이미 다문화적 공동체를 요청하고 있다. 열려있는 문화공간으로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갈등요인을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역사 왜곡 및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민간전문가 차원의 '동북아역사연구회'(가칭)를 조직·운영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동북아역사재단과 관련 학자 및 NGO의 역할 분담적인 지속적 활동 및 기여가 필요하다.
위기를 극복할 해결책은?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특히 한국, 중국, 일본 3국간의 정치적 신뢰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근혜정부가 강조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는 신뢰와 협력에 기초한 평화번영 공동체를 정착시키기 위한 로드맵과 법적·제도적 장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따른 안보위기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기원한 뿌리깊은 영토 및 역사 분쟁과 함께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정치적 대립과 갈등 때문에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실현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독일 시인인 홀더린(Frederich Holderlin)이 지적한 바와 같이 위기가 도래하면 위기를 극복할 해결책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오랜 역사적 반목으로 점철된 동아시아 지역에 평화와 번영을 효과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가지 현안을 대립과 갈등이 아닌 '화해와 협력'의 촉매제로 활용하는 지혜로운 결단이 요청된다. 한일간의 현안들은 한일 양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의지' 여하에 따라 '번영의 불씨'가 될 수 있겠지만, '공멸의 불씨'가 될 수도 있음을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