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를 기획한 취지는 냉전 종식 이후 한층 심화된 국경과 민족 문제의 대표적 사례로서 러시아 또는 구 소련의 경우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켜보려는 데 있다. 미소 양극체제로 상징되는 냉전의 종식이 1989~1991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동유럽 블록의 소멸과 구 소련의 해체라는 원심력 극대화 현상을 보여주면서 국경과 민족 문제는 이전과는 비할 바 없이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문제가 좀 더 근본적인 역사-문화적 기원을 지닌 민족문제와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는 차원에서 국경 문제를 좀 더 긴 호흡으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려는 취지가 연구에 반영되어 있다.
본 연구의 주요 내용은 러시아-폴란드 양국관계와 국경문제, 발트3국의 독립과 국경문제, 러시아의 고립영토 칼리닌그라드주의 역사 정체성 문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국경문제, 중앙아시아 민족문제와 국경분쟁, 유고슬라비아 연방해체의 여섯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제시된다. 각 주제는 일정한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지만, 연구대상으로 설정한 시공간적 범위와 접근방법은 다채로운 면모를 보인다.
역사-문화적 기원을 가진 동유럽의 국경문제
러시아-폴란드 갈등의 역사와 국경문제는 두 국가의 성립시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통시적 고찰을 시도했다. 비록 두 나라의 국경은 구 소련 해체와 더불어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공통된 슬라브 문화권의 외양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동방교회의 대표자를, 폴란드는 서방교회의 첨병을 각각 자부하고 있는 가운데 이질적이고 경쟁적인 문명사적 경계가 오랫동안 양국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때문에 양국은 중세 이래 극심한 갈등 양상을 보였다. 심지어 불과 수개월 전 폴란드 대통령 일행이 학살된 폴란드 장교들의 위령제를 지내려고 '일방적인' 러시아 입국을 감행하다가 항공사고로 희생된 것은 아직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발트3국의 독립은 20세기의 일이지만, 본 연구에서는 이 지역의 역사적 배경과 경제적 특성에 대한 예비적 고찰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200년 가까운 러시아 지배 하에서도 이 지역이 민족정체성과 고유한 문화와 해상교역을 유지하는 가운데 독립의 기반을 구축해온 점이다. 즉 사라진 정치적 경계 속으로 발트해 연안의 역사문화적 경계가 함께 소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경계로 소생하는 복원력을 20세기에 두 차례나 보여준 것이다. 발트3국은 구 소련의 체제위기 속에 대규모 유혈사태를 거치지 않고 평화적으로 독립을 쟁취하였다. 비록 발트3국과 러시아와의 갈등요인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국경문제에 있어서는 원만한 타협의 사례를 보여준다.
칼리닌그라드의 '역사 정체성 찾기'는 독특한 주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더불어 구 독일영토인 동프로이센 지역에 이주하여 살게 된 러시아인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이 핵심문제다. 이주지의 과거 역사와 문화를 부정하고 러시아 국가발전사의 틀 속에 억지로 끼워 넣은 구 소련의 역사서술 대신에, 지역의 과거를 인정하고 그 교류양상에 강조점을 두는 탈경계의 역사학 기술이 대두되는 과정이 제시된다. 즉 역사문화적 경계를 부정했던 과거가 극복되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하겠다.
러시아 남단의 캅카스 지역은 면적에 비해 여러 소수민족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민족문제와 국경문제가 늘 폭발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중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은 구 소련의 구성원이었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대립이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영토상으로 아제르바이잔에 속하지만, 이 지역 인구의 압도적 다수인 아르메니아계는 구 소련 시절의 경계설정 자체를 문제 삼으며, 역사문화적 경계를 자국의 정치적 경계로 확대시키려 했고, 아제르바이잔은 자국의 영토주권을 내세우며 이에 반대했다. 그 결과 양국 사이에 무력충돌과 유혈참극이 발발했으며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국경문제의 사례다.
동북아 역사논쟁의 인식 지평 확대를 바라며
중앙아시아지역은 19세기 후반에 러시아에 병합된 후 구 소련 시절, 대부분 주민이 유목민이어서 '경계' 인식이 거의 없던 지역에 '인위적'으로 공화국들의 경계가 설정되었는데, 소련붕괴 후 중앙아시아 5개국 독립과 더불어 이러한 분계가 그대로 국경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경계는 민족구성이나 경제 생활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갈등의 불씨가 되어 왔다. 최근의 키르기스탄 사태는 이러한 갈등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아울러 구 소련 시절부터 계속된 중앙아시아 원주민 중심의 민족주의적 정책은 1930년대 이 지역에 대규모로 강제이주하게 된 한인들을 배제하고 소외시켜 이들이 러시아로 또 한 차례로 이주하게 되는 배경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구 소비에트연방의 축소판이라고 할 구 유고슬라비아연방은 그 해체과정에서 악명 높은 '인종청소'라는 유혈참극을 초래하였다. 티토에 의해서 통제되던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그의 사후 분출하면서, 세르비아(신 유고슬라비아연방의 중추)가 자국 국경 밖의 세르비아인과 그 거주지까지 포함하려는 이른바 '국경 새로 짜기'를 시도한 것이 유고내전의 근본원인으로 제시된다. 민족경계와 정치적 경계를 일치시키려 했던 과격한 시도가 인접국의 강력한 반발과 국제적 개입에 의해 좌절된 사례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경과 민족 정체성과 관련한 러시아와 인접국 간의 사례연구를 통해 냉전 종식 후 한층 심화되는 전 세계적 갈등요소에 대한 이해와 그 해결전망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연구가 좀 더 본격화됨으로써 특히 동북아의 역사논쟁과 영토문제에서 비교연구를 위한 인식지평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