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현안유적 조사사업
규슈 남단 미야자키(宮崎)시 헤이와다이(平和台) 공원에는 '평화의 탑(平和の塔)' 으로 불리는 거대한 석조물(사진 1)이 우뚝 서 있다. 그런데 원래 이 탑은 과거 일본 군국주의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40년에 '기원2600年기념사업' 으로 건립한'八紘之基柱'(아메츠치노모 토하시라)였다. 중국 만몽 지역과 대만, 조선, 동남아 일대로 확장해가던 '황국' 의 위세를 널리 선전하고 기념하기 위해 중국 점령지와 식민지, 일본 각지의 돌을 모아 만들었다. 탑의전면에는 현 천황의 삼촌인 지지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이 쓴 '八紘一宇(팔굉일우, "천하가 천황의 지배 아래 일가를 이룬다")' 가 새겨져 있다. 누가 보더라도 군국주의의 상징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평화의 탑'으로 바뀌어 있다.
'사진 2' 는 히로시마에 있는'평화탑'으로 불리는 탑이다. 원래는 1896년 청일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일청전쟁개선비(日淸戰爭凱旋碑)' 였다. 당시 대륙으로 출정하는 일본군은 이 비를 보면서 항구로 행진해 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은 '평화탑' 으로 명칭이 바뀌어 있다.
과거 군국주의와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위의 두 석조물이 느닷없이 평화의 상징물로 둔갑한 것은 모두 1945년의 패전 때문이다. '평화의 탑' 은 연합군 진주 후 GHQ를 의식한 일본이 탑에 새겨 있는 '팔굉일우' 가 군국주의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아예 탑신에서 지워버리고 탑 주위에 세워진 무인상인 아라미타마(荒御魂像)도 제거해버렸다. 그리고 명칭도 아예 '평화의 탑' 으로 고쳤다.
히로시마의 '평화탑' 도 사정은 비슷하다. 1947년 여름 '일청전쟁개선비' 라고 되어 있는 비명 위에 시멘트를 바르고"평화탑"이라고 새겼다고 한다. 또한 그때 탑 위에 있는 매를 평화의 새 비둘기로 보이려고 날카로운 부리를 중간에서 잘랐다고 한다.
군국주의 지우고 슬그머니 다시 새기고는 '평화탑' ?
이렇게 패전 직후 '평화' 의 상징물로 둔갑한 탑들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히로시마'평화탑'의 매는 1985년 매의 부리 등을 보수했다. 미야자키의 '평화의 탑' 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복원하기로 하여 1962년에 무인상이, 1965년에는 '八紘一宇' 을 다시 새겼다. 그리고 이 탑은 도쿄 올림픽 성화 봉송 출발 지점으로 유명해졌다.
군국주의의 상징이 갑자기 평화의 상징으로 돌변하는 과정을 살펴면서 의문이 든다. 과연 이 두 석조물이 표방하는 '헤이와(平和)' 가 우리가 아는 평화(peace) 개념과 같은 것일까? 탑에서 문자도 지우고 상도 치우고 감추다가 다시 슬그머니 옛날 그대로 복원하고는'평화의 탑'이라고 선전을 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일본에서는 '군국' 과 '평화' 가 조화를 이루는 개념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현재 일본 각지에는 많은 평화 기념관이 있다. 전 세계 평화 기념관의 절반은 일본에 있다고 할 정도로 많다. 한·일 현안 유적 시설 조사 사업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주로 일본의 평화기념관을 살펴보고 전쟁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전시, 계승하고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그 성과물이 『일본의 전쟁 기억과 평화기념관Ⅰ-관동·동북지역 편』 으로 정리, 간행된 바 있으며 올해에는 후속편 『일본의 전쟁 기억과 평화기념관Ⅱ-관서·구주·오키나와 편』 이 나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