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문화 교류와 소통 국제 학술회의
동북아역사재단이 "고대 문자자료로 본 동아시아의 문화 교류와 소통" 을 주제로 주최한 국제학술회의가 6월 10일, 11일 이틀간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열렸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세 분과로 나뉘어 한국 7명, 일본 4명, 중국 2명 등 총 13명의 주제 발표와 9명의 분과별 토론이 이루어졌다.
첫 발표는 동국대 이기동 명예교수의 기조 강연으로 시작되었다. 『문자와 동아시아의 문화 교류』 에서 최근에 발굴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 목간들에 주목, 출토 문자자료를 통한 고대의 하층 사회에 대한 미시사적(微視史的), 심성사적(心性史的) 연구를 이끌어내야 할 것임을 역설하였다.
이어서 『한자·한문의 수용과 전파』 를 주제로 한 제1분과의 발표가 이루어졌다. 한림대 김병준 교수는"낙랑의 문자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낙랑군에서의 문서행정이 한반도에 한자·한문의 수용에 결정적 요인이었을 것으로 분석하면서,' 中',' 之',' 節'을 예로들어 한반도의 이두식 표현들이 중국의 속한문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우리의 언어 습관에 맞게 변용시킨 것임을 강조하였다. 한국외국어대 여호규 교수도 "고구려의 한자문화 수용과 변용" 이라는 제목으로 4세기 전반 낙랑군과 대방군의 점령 및 중국계 망명인의 내투 등으로 고구려의 한자문화의 수용과 정착 기반이 마련되었음을 강조했다.
이두, 중국 속한문 선택적 수용과 변용의 결과
이어서 동국대 윤선태 교수의 "백제와 신라에서의 한자·한문의 수용과 변용" 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윤 교수는 신라인들은 자신들이 구두 세계에서 달성한 의사소통의 수준을 문서 세계에서도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형식과 내용을 담지하려 노력한 점이 이두발전의 신라적 조건으로 작용하였음을 역설하였다. 동경대 사토마코토(佐藤信) 교수는 "일본에서 한자문화의 수용과 전개" 에서 한자문화의 수용과 전개가 불교·유교·율령 등과 일체가 된 선진문화로서 수용되었음에 유의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新潟大세키오시로(關尾史) 교수 는"동아시아에서 서사 재료와 문자 의 '서점'(西漸)에 대해서" 에서 고창국(高昌國)에서의 구두 처리된 특이한 행정시스템의 소개는 많은 참석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제1분과의 토론에서는 특히, 이 구두 행정시스템과 관련하여 신라와 고창국 사이의 관련성을 찾아보려는 윤선태, 김병준 교수의 질의와 세키오 교수의 답변이 이어졌고 이 방면의 학제적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둘째날 오전에는『서체로 본 동아시아 문자문화』를 주제로 한 제2분과의 발표가 있었다. 수도사범대의 왕원근(王元軍) 교수는 "고대한국의 당대 서법문화 수용" 이라는 제목으로 왕희지 서법, 구양순서법, 불교문화적 서법의 수용 양상을 자세히 분석하였다. 원광대 김수천 교수는"고구려 서풍의 특징과 독창적 미의식"이라는 제목으로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한 다양한 고구려 명문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고구려 서풍의 특징을 한 마디로 "소원(溯源)의 미의식" 으로 결론지었다. 이어진 홋카이도대 이시즈카 하루미치(石塚晴通) 명예교수의 "동아시아 한자 자체와 문헌의 성격" 이라는 발표에서 30여 년간 심혈을 기울여 개발해온 '한자 자체 규범 데이터베이스' (HNG)를 소개한 뒤, HNG상의 대비를 통하여 '대화영국장화엄경(大和寧國藏華嚴經)' 이 발해 사경일 가능성을 제기하여 주목을 끌었다.
제2분과의 토론에서는 이용현 박사의 질의로 이시즈카 선생께 HNG DB 구축과 관련하여 자료의 선정, 저작권의 문제, 예산상의 문제 등 앞으로 한국 내에서 이와 비슷한 DB 구축시에 해결해야할 과제들에 대한 귀중한 경험들을 들을 수 있었다.
'之'의 용례를 통해 본 초기 불경의 영향
오후에는 『어법으로 본 동아시아 문자문화』 를 주제로 한 발표가 이어졌다. 서울시립대 김영욱 교수는 "동아시아의 문자문화와 한문의 수용 양상" 이라는 제목으로 이두 발생이 한·중 언어접촉의 결과임을 낙랑의 벽돌 명문을 사례로 실증하였으며, 훈민정음과 한자문화권의 서사방식 등을 중심으로 한자를 '동아시아 공동의 지적 코드' 라 부를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교토산업대의 모리 히로미치(森博達) 교수는 "한·일 속 한문의 세계" 라는 제목으로'일본서기'에 나오는 '之' 의 용례를 철저히 검색·분석하여 그것들이 주로 β계 사료에 편재됨을 실증적으로 밝혀 발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남경사범대의 동지교(董志翹)교수는 "'中'의 문법적 의미와 문법적 기능 약론" 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中' 의 의미를 "중간, 중심" 이라는 제1 의미와 "내부" 라는 제2 의미로 나누어 상고에서 중고에 이르는 각종 예들을 철저히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한국기술교육대 정재영 교수는 "한국 고대 문자자료에 나타나는 종결어미 '之' 에 대하여" 라는 제목으로 초기 이두문과 제2단계 이두으로 나누어 종결사'之'의 용법을 검토하면서 우리의 차자표기의 연원으로 낙랑과 함께 초기 불경 한문의 영향으로 결론 내렸다.
이어진 제3분과의 토론에서는 남풍현 선생의 소개와 모리 교수의 설명으로 우리의 향가나 일본의'고사기'에서 '之' 가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할 것' 정도의 강조 의미가 포함됨으로써 시가 형식에는 부적합하였을 것이라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어 흥미를 더하였다. 끝으로 필자가 이번 학술대회의 의미를 문자 관련 학계의 학제적 연구로 새로운 성과 도출로 정리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