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제는 지금 동북아 전역에서 가장 민감하고도 중요한 문제다. 민족주의와 역사문제가 얽혀 갈등을 빚고 있는 동북아에 새로운 역사 화해 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신기욱 스탠포드 대학 교수 겸 아시아태평양 연구센터 소장을 만나보았다.
민족주의와 관련한 저서와 논문이 다수 눈에 띄는데 민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사회학자로서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구성원리가 무엇인지 많이 생각해보았다. 집합주의, 가족주의 등도 해당이 되겠지만 나는 한국사회와 한국인을 움직이는 원동력, 구성원리가 단일민족에 기초한 민족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민족주의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역사 문제와 민족주의가 얽혔을 때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어느 나라에나 역사는 민족의 정체성과 관계되어 있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역사는 정확한 '사실'과는 다르다. 나라마다 강조하고 싶은 부분과 경시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일부는 기억을 하고 일부는 잊어버린다. 각각의 지배적 서사(master narrative)가 따로 있기 때문에 동일한 기간에 대한 한·중·일의 기억, 역사도 다르다. 그 다른 기억을 역사교과서에 기록해 자국민을 교육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과서 문제가 국제관계의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역사와 민족주의가 얽혀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기 전에 자국의 기억과 기록을 내세우며 갈등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중·일 세 나라의 민족주의를 비교한다면?
중국은 반제국주의, 민족의 저항, 민족해방과 같은 의식이 지배적이고 한국도 그와 같은 경향이 많다. 하지만 일본은 제국주의의 주체였기 때문에 한국이나 중국과는 조금 다르게 명치유신 이후 근대화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민족주의 자체는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없다. 민족주의가 어떤 것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서구에서는 제국주의와 결합해 주로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지만 한국과 중국, 제3세계에서는 반제국주의와 주로 결합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역사분쟁과 화해-동북아모델을 찾아서' 라는 주제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동북아역사 화해의 동북아 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와 새로운 화해 모델의 방향은?
지난 20년 사이 동북아시아 국가 간 교류가 경제, 문화,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늘어났다. 그런데 역사문제는 항상 교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동북아시아가 평화롭게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화해 모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유럽의 화해 모델을 거론하며"왜 독일은 했는데, 일본은 못 하냐?"식의 단순 비교는 적합하지 않다. 유럽과 동북아는 역사적인 경험이 다르다. 독일과 일본은 가해자이지만 일본은 원폭피해를 당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단순히 유럽의 모델을 똑같이 동북아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국제사회에서 통할 수 있는 세련된 논리를 가진, 동북아시아의 역사 경험과 상황을 고려한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동북아 화해 모델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지?
동북아 화해 모델의 중요한 변수는 바로 미국이다. 공식적으로는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지만 1945년 이후, 동북아 지역 질서를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니 미국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후 미국과 서구 중심으로만 진행했던 전범재판문제와 중국이나 한국을 포함하지 않은 채 맺은 샌프란시스코 조약만 보더라도 미국은 책임을 느끼고 일정 역할을 해야 한다. 일본이 피해자가 된 원폭문제에 대해 미국 측에서 히로시마를 방문, 애도를 표한다면 정체된 동북아 역사문제에 돌파구가 만들어 질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전범재판문제와 샌프란시스코 조약, 원폭문제를 다시 검토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미국 측에 제안할 예정이다.
스탠포드대학과 재단은 지난해 MOU를 체결했다. 협력의 내용은?
3년간 세 가지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작년, 첫 번째 프로젝트로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미국 5개국의 역사교과서 분석을 실시했다. 교과서를 보지도 않고 비판하기 전에 어떻게 다른지, 왜 다른지를 인식하는 것이 동북아 화해의 기본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 나라별로 교과서를 두 권씩 선정해 번역, 분석하여 작년 2월에 학술회의를 가졌다. 두 번째 프로젝트로는 역사영화를 통해 5개국이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는지 살펴보았다. 지난해 12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포함한 5백여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토론도 하며 학술회의를 성황리에 마쳤다. 그리고 올해, 세 번째 프로젝트로 각 나라를 대표하는 리더들을 10명씩 선정,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프로젝트와는 별개로 포스트 닥터 제도를 운영해 현재 재단의 연구원이 스탠포드 대학에서 강의와 세미나를 맡아 하고 있다.
동북아 역사 화해 모델 창출과 관련해 재단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세 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심도 깊은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연구에서 끝내지 말고 제안 등을 통해 연구 성과를 정책과 연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세 번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재단이 하고 있는 것처럼 해외학자를 초청하고 연구를 지원하고, 포스트 닥터 제도를 운영하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기욱 _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소장, 스탠포드대 사회학과 교수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워싱턴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저서로는 「동북아에서 지역주의와 민족주의」(2007), 「동북아시아에서 역사적 불법행위와 화해에 대한 재고찰」(2006), 「한국의 민족주의」(2006) 등이 있으며 현재 재단의 지원을 받아 동북아 역사 화해 모델을 찾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