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국여성이 한국 바둑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10년째 한국에 살고 있으며 온갖 바둑 대회를 휩쓸고 있다. 그녀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한국 여성 바둑계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다."
어느 신문기사의 내용이다. 그녀는 왜 한국에서 활동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녀가 중국을 떠난 이유는 중국 바둑계의 관료주의적인 태도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싶어서 6년을 머물렀으나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때 한국의 지도적인 기사(棋士)들이 "한국 여자 바둑의 활성화를 위해서 외국인에게 개방해야 한다"고 하여 한국에서의 활동을 적극 추진했다. 그 결과 이제 한국의 여자바둑은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이 기사를 읽으며 고구려의 벽화가 생각났다. 고구려 고분의 벽화는 현대인들이 보아도 시공(時空)의 차이를 넘어 그 생동감에 감탄을 자아낸다. 세기를 뛰어넘는 뛰어난 예술 작품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벽화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붓으로 쓴 묵서를 비롯하여 부엌의 살림살이, 우물가의 모습, 곡식을 찧는 디딜방아, 다양한 무늬의 옷감과 문양들, 온갖 악기를 연주하는 행렬도의 사람들, 갖가지 놀이, 심지어 머리스타일까지 엿볼 수 있다. 안악 3호분 묘주(墓主) 부인의 옷차림에서 는 섬세한 바느질 솜씨까지도 살필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내용 중에서 돋보이는 것은 역시 외국인의 모습이다.
각처총 무용총의 활기와 자신감의 비결
고구려의 두 번째 도성이 있던 국내성의 각저총에는 씨름에 열중하고 있는 두사람을 그린 벽화가 있다. 그림을 보면 서로 샅바 싸움을 하는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고구려 사람이 분명해 보이나, 또 한사람은 서역계의 사람 같다. 두 사람의 코 모양을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데, 한 사람의 코는 오뚝한 반면 다른 사람의 코는 우리가 매부리코라고 부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사람이 서역인으로 추정된다.
또 무용총의 벽화에도 두 사람이 수박희(手搏戱)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있는데,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서역인으로 추정된다. 이로 미루어 씨름이나 수박희가 서역계통의 사람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벽화를 그린 화가는 이러한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후대인들이 벽화의 내용들은 볼때 마다 신선함을 느끼게 되며, 마치 숨은 그림을 찾는 듯 한 재미가 있다.
이는 벽화를 중요한 역사벽화를 통해서 우리는 고구려 사람들이 외국 문화에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국적인 문화를 받아들이되 훌륭하게 자신의 것으로 재창조하였음도 알 수 있다. 낯선 문화를 자신감있게 받아들여서 자신의 것으로 재창조했던 고구려의 문화는 세기를 뛰어넘어 여전히 의미를 부여한다.
※ 역사에세이는 재단 연구위원들이 쓰는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의 칼럼입니다. _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