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熱河日記」를 읽고 있다. 경향 후마니타스연구소의 ‘열하일기 답사’2018.6.23~29를 준비하면서 시작한 열하일기 독서는 2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연행 과정에서보고, 듣고, 대화하고, 느낀점을 기록한기행 문학이다. 생생한 문체, 사실적 묘사, 소설적 구성, 해학과 풍자등은 열하일기를이야기할 때마다등장하는 찬사들이다. 한 연암연구자는 “영국에셰익스피어, 독일에괴테가 있다면한국엔 연암박지원이 있다”고했는데, 연암문학의 중심에열하일기가 놓여있다. 열하일기는연암 문학의진수이자 수백편에 달하는연행록 가운데서도백미다. 그렇다고열하일기에 대한과도한 문학적칭찬은 오히려이 책의진면목을 보는데 방해가될 수있다는 점을유념해야 한다. 열하일기가 기행서인것은 맞다. 기행문이라고 문학서로만읽어야 할까. 열하일기는 ‘천의얼굴’을 가진책이다. 문학이라는장르로 규정해서는안 된다.
열하일기는압록강을 건너는도강渡江의 기록에서시작한다. 강을건너면서 연암은물빛이 오리머리처럼푸르러 ‘압록강’이라는이름을 얻었다고말한다. 옛날중국에서는 압록강이장강, 황하와함께 3대강으로 불렸다는사실도 전한다. 강의 발원지가백두산이라고 밝히면서그 산이‘백산’, ‘불함산’, ‘장백산’ 등여러 이름으로일컫는다고도 했다. 「당서」, 「산해경」, 「황여고」 등옛 문헌을전거로 들이댄다. 백두와 압록에대한 지리학적설명이다.
역사에 대한 서술은 열하일기 곳곳에서 나타난다. 압록강 너머 첫 노숙지 구련성을 국내성 터일 수 있다고 내비친 연암은 봉황산성에 이르러 우리 역사를 본격적으로 거론한다. 누군가가 “봉황성이 안시성이다”고 말하자 연암은 고구려의 방언 등 언어학적 고찰을 통해 안시성으로 비정되긴 어렵다고 일축한다. 그러나 봉황성이 평양이었을 수 있으며, 평양이라는 지명이 여러 문헌에 등장하고 있음을 들어 요동이 본래 우리의 강토였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요동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천하의 안위는 늘 요동의 넓은 들에 달렸다”는 화두를 던진다.
연암은열하일기에서 역사, 지리 뿐아니라 인물, 풍속, 종교, 국제정치, 경제, 건설, 문학등을 종횡무진이야기한다. 그것은연행의 여정을기록한 단순한기행록이 아니다. 오히려 18세기중국과 동아시아에대한 종합적인인문학 보고서라고해야 옳다. 역사학자가 읽으면우리 고대사에대해 새롭게눈뜰 수있다. 복식연구자에게는 열하일기에묘사된 한족과만주족의 의복, 머리 장식묘사가 흥미있을수 있다. 온돌에 관심이있는 사람이라면, 중국의 구들장문화인 ‘캉炕’에대한 박지원의상세한 설명에귀 기울일만하다.
연암이걸었던 열하일기의노정은 본디조선의 연행사들이왕래했던 외교의사행길이었다. 또연암이 간길은 고조선과고구려 사람들이누볐던 역사의길이었고, 한반도에새로운 지식을댔던 문명의길이었다. 그런가하면 병자호란등 전란으로수많은 유이민이지나간 피의길이었고, 중국인민의 삶과정치를 살피는탐정의 길이기도했다.
두해 전에읽은 「사행의국제정치」라는 책이생각난다. 한국외교사전공자들이 16~19세기조천록과 연행록을분석한 연구서로, 국제정치 분야에서사행 기록을다룬 최초의단행본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열하일기의 국제정치학’이라는논문은 건륭제, 판첸라마의 만남과이를 지켜보는조선의 시선을분석하였다. 열하일기가국제정치 연구의훌륭한 텍스트임을증명해 주는글이었다. 200년전 동아시아정치 질서를오늘의 시각으로진단하려는 시도가이채로웠다. 이책은 ‘연행록연구회’를 만들어오랫동안 열하일기를비롯한 연행록을독해해온 사회과학연구자들이 일궈낸성과라는 점에서주목할만하다.
이제열하일기는 고전문학연구자의 ‘독점’에서풀려나야 할때가 되었다. 분야와 장르를가릴 것없이 누구든열하일기를 읽으면된다. 길에주인이 없는것처럼 누구든열하일기를 잡으면책의 주인이될 수있다. 문제는있다. 아직신뢰할만한 번역서가없다는 점이다. 시중에는 최근에출간된 김혈조번역본을 비롯해리상호본, 이가원본등 몇종의 열하일기번역서가 나와있다. 시간이흐르면서 번역의품질이 나아지고있지만, 내세울만한 번역의정본은 없는 것 같다. 번역에 공을 더 들여야 할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한문본 열하일기의 정전正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하일기를붙든지 두달이 되었지만, 절반도 채읽지 못한것은 번역본은물론 한문본에도문제가 있기때문일 것이다. 김혈조 번역본열하일기에 이런대목이 있다. “우리나라는 집안이가난해도 글읽기를 좋아하지만, 수많은 형제들의코끝에는 오뉴월에도항상 고드름을달고 있으니원컨대 이법중국의 구들 제도을배워 겨울의괴로움이나 면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는 연암이 중국의 구들인 ‘캉’의 우월함을 적은 글이다. 그런데 ‘코 끝에는 오뉴월에도 항상 고드름이 달고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완전한 오역이다.
‘겨울’을 ‘오뉴월’로 잘못 옮긴 것이다. 왜 그럴까. 1932년 박영철이 열하일기를 간행하며 필사본의 ‘冬月’을 ‘六月’로 오식한 것을 바로잡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앞서 리상호본도 그렇고, 이가원본을 뺀 대부분의 번역서도 오역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처럼 원문 교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오역한 사례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열하일기 ‘정전’을 만드는 일이 시급한 이유다.
열하일기는 500년 가까이지속된 조선연행사절 전통의산물이다. 학계는조선시대에 1,000회이상 연행사가중국으로 갔으며, 그들이 남긴연행록만 400여종에 달할것으로 추산한다. 이토록 많은연행과 그에대한 기록이전하고 있지만, 주목하는 사람은많지 않다. 조선 후기 200여 년동안 불과열 두차례 일본을방문했던 조선통신사의행적과 기록에환호하는 모습과는크게 대비된다. 한국과 일본은 2002년부터 매년조선통신사 재현행사를 개최하고있다. 지난해에는통신사 기록물 333점을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올렸다. 그런데 통신사기록물의 수백배에 달하는‘콘텐츠의 보고’연행록은 홀대받고있다. 이제부터라도한·중 양국이협력해 연행로를부활시키고, 관광상품으로 연행사절단을재현하는 것은어떨까. 남북한의화해 교류논의가 활발해지는요즘, 연행로가다시 닦인다면남북한, 중국을아우르는 동아시아우호의 길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