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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진왜란, 동아시아 평화의 거울
  • 윤유숙 (재단 한일관계연구소 연구위원)

올해는 임진왜란 종결 4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 방법을 모색해야 했던 한반도의 운명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조선 중기의 역사를 날카로운 시각으로 분석해 온 명지대 한명기 교수는 ‘임진왜란은 지난 역사가 아니라 현재를 보는 거울’이 되어야 하며 당시의 교훈을 되새겨 동북아 평화 정착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5월, 한 교수를 만나 임진왜란 연구의 의미를 살펴보고 현재 격동하고 있는 동아시아 정세를 역사적으로 조망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명기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광해군」,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 등이 있으며 월봉저작상, 한국출판문화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A임진왜란, 동아시아 평화의 거울Q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극적인 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4월 말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남북한 관계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 고, 향후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과의 정상회담도 예정되어 있어 우리나라 국제 관계에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A

남북정상회담은 이미 했습니다만,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다면 1994년부터 25년 가까이 이어져 온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가닥이 잡 히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구축을 위한 발걸음도 한층 빨라질 것이라고 기 대합니다. 역사 연구자의 입장에서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데요. 그런데 일단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한반도는 새로운 상승 대국 중국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미·중 패권 경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본격적으로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작년에 우리는 이미 ‘사드 문제’를 계기로 중국발 지정학과 지경학 리스크를 심각하게 경험한 바 있습니다. 복수의 강 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상대적 약소국이 모든 강대국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 하려고 노력하더라도 강대국끼리 갈등과 분쟁이 계속될 경우, 약소국은 어쩔 수 없이 선택의 기로로 내몰릴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동북아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균형자 역할을 해 야 한다는 논리을 내세웠습니다만, 이는 남북통일을 전제로 충분한 국력이 뒷받 침될 때 실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굉장히 중요한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Q

이렇게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면 경제 협력이나 문 화 교류 등에서도 새로운 환경이 전개될 텐데요, 아직 섣부르긴 하지만 남북한이 공동으로 역사를 연구하게 된 다면 가장 기대하는 바가 무엇일지요? 남북 관계가 해빙되면 임진왜란 연구에도 변화가 생길까요?

 

A

남북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왕래가 이루어지면 역사 연구의 흐름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일제 약탈 뒤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됐다 100년 만에 반환받아 다시 북한으로 인도한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등과 같이 북한 지역에 남아있는 관련 유물, 유적, 고문서 등을 우리 학자들이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있다면 넓어진 사료의 폭만큼 역사 연구도 진일보하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볼 때, 남북 관계가 원만해지면 임진왜란이라는 특정 주제뿐만 아니라 다른 주제와 관련된 역사 연구의 폭이나 질이 넓어지고 높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Q

조선에서도 한반도 주변의 국제 정세가 요새처럼 급격한 전환을 이룬 사례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조선의 대외 정책을 근래와 비교해볼 수 있을까요?

 

A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16세기 말, 병자호란이 발생하는 17세기 초, 아편전쟁부터 청일전쟁으로 이어지는 19세기 중후반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세에 급격한 전환이 이루어졌던 변혁기였습니다. 그 가운데 16세기의 동아시아 정세 격변이 한반도에 몰고 온 비극적인 사태가 바로 임진왜란입니다. 조선은 1392년 건국 이후 책봉 체제, 사대관계를 기반으로 당시 패권국인 명明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외교의 가장 큰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16세기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군사적, 사회·경제적으로 국력이 크게 신장되었던 일본이 패권국 명에게 도전하면서 조선에 ‘정명향도征明嚮導, 명을 정복하는 데 앞잡이가 되라는 뜻’를 요구합니다. 조선이 그것을 거부하며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조선은 7년 동안 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습니다. 즉, 임진왜란은, 주변에서 기존의 패권국이 쇠락하고 신흥 강국이 등장하면서 한반도가 선택의 기로로 내몰리고 끝내는 처참한 전쟁을 겪어야 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생생한 실례입니다.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약소국’이자 ‘완충 국가’는 주변에서 힘의 교체Power Shift가 발생할 조짐을 보이면 바짝 긴장하면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무렵이나 지금이나 주변 강대국의 역학관계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커다란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명기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

 

Q

동아시아 최강 대국 명과 신흥 강국 후금後金 사이에서 절묘한 외교 능력을 보여준 인물로 광해군光海君, 1575~1641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고 탁월한 감각으로 국제 정세를 이끈 지도자가 있다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A       

광해군은 임진왜란 시기 선조宣祖, 1552~1608를 보좌하며 외교 능력을 키우고, 명나라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중국과 만주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했습니다. 그가 명청 교체기에 나름대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내정內政 차원에서는 수준 높은 정치력과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하여 끝내는 대외 안보 정책의 동력까지도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거대 강국 사이에 ‘끼인 자’, 지정학적 요충에 있는 ‘상대적 약소국’은 내정과 외교 양면에서 극히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광해군은 성공한 군주라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할 수밖에 없겠지요.

한편, 외교와 관련해서 저평가된 인물이 있다면 바로 세종世宗, 1397~1450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반포하고, 문화와 과학 기술 분야에서 커다란 업적을 남긴 임금, 이상적인 유교정치를 구현한 조선 전기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세종이 남긴 커다란 외교적 업적 가운데 하나는 4군四郡 6진六鎭을 개척하여 평안도와 함경도의 광대한 땅을 온전히 우리 영토로 확보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명은 영락제가 북경으로 천도했던 이래 만주와 연해주 지역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여진족들을 아우르고자 한창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세종은 그런 강대국 명을 맞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면서도 4군 6진 개척에 성공함으로써 사실상 오늘날의 국경선을 확보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영토 문제는 ‘제로섬 게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자칫 여진족에게 원한을 살 수 있고, 여진을 자신들의 신민으로 여기고 있던 명과의 관계까지도 악화시킬 수 있는 사안인 4군 6진 개척에 성공한 것은 대단한 업적입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대외적 환경 속에서도 오늘날 한민족의 영역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던 세종의 외교적 수완과 능력, 4군 6진 개척의 역사적, 외교사적 의미는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Q

평소 교수님께서는 역량을 강화하지 않으면 국가의 운명이 강대국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과거 임진왜란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미래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우리나라 외교 정책이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A         

오늘날 GNP로 보면 우리는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냉철함이 매우 중요합니다. 조선 시대 지식인들도 중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한반도의 상황을 복배수적腹背受敵이라 표현했습니다. 정면과 배후에 적이 있다는 뜻이지요. 임진왜란도 이런 조건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초기 일본은 한반도를 분할하자고 명에 제의했고, 명은 곧이어 조선을 배제시킨 상황에서 일본과 강화 협상을 추진했습니다. 조선은 전쟁의 당사자이자 최대 피해자이면서도 명·일 두 강대국에 의해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셈이지요.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반도에서 또 전쟁이 일어나면 남북이 공멸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운명이 다시 주변 열강에 의해 결정되는 비극이 벌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외교가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Q

일본은 임진왜란을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征伐’, 혹은 ‘조선으로의 출병出兵’이라고 부르거나 ‘대군을 파견派遣했다’는 등의 표현을 써서 이 전쟁이 침략 전쟁이라는 본질을 회피해 왔습니다. 동일한 과거를 부르는 역사 용어조차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A         

임진왜란 무렵 도요토미 히데요시臣秀吉는 일본을 신국神國으로 인식하며 조선에 대한 멸시와 우월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7세기 이래 일본은 임진왜란을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 ‘삼한三韓 정벌’ 등으로 부르며 침략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런데 1910년 조선을 강제 병합한 뒤에는 ‘분로쿠게이초노에키文祿慶長の役’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굳이 번역하면 ‘분로쿠-게이초 시대의 전쟁’ 정도의 의미입니다. 한반도가 ‘일본의 영토’가 되었으니 ‘정벌’이라는 표현을 계속 쓰기가 곤란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용어는 일견 중립적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침략의 속성을 은폐하고 있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한편, 중국은 ‘일본에 대항하여 조선을 도운 전쟁’이라는 뜻을 담아 임진왜란을 ‘항왜원조抗倭援朝’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이 전쟁을 둘러싼 한·중·일 삼국의 인식과 명칭은 전혀 다릅니다. 물론 ‘임진왜란’이란 용어도 문제가 있지요. 역사교육의 보편성을 확보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향하는 차원에서 한·중·일이 공통의 명칭을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는 치밀하고 폭넓은 연구를 통해 학문적인 기반을 탄탄하게 다진 다음, 중·일 양국의 용어의 한계점이나 논리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Q

최근 중국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임진왜란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이 임진왜란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는 현상을 어떻게 분석하고 계신지요?

 

A 

중국은 한반도가 자신들의 권역이었다는 입장을 강조할 수 있는 좋은 테마로서 임진왜란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항왜원조’라는 용어만 보더라도 대국의식과 한반도에 대한 개입 의지가 담겨 있지요.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중국이 임진왜란을, 조선을 배제하고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점입니다. 특히 중국 학자들은 ‘1차 중일전쟁’인 임진왜란 때는 일본의 도발을 저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2차 중일전쟁’인 청일전쟁 때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라는 반성 차원에서 이 전쟁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자신들이 침략자 일본을 격퇴하여 조선을 구원해주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오늘날 한창 굴기하고 있는 중국이 지향해야 할 역사적 전범으로 부각하려는 의도가 엿보이기도 합니다. 이것도 크게 보면 대국주의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 입장에서는 지난 500년 동안 주변에서 패권이 교체될 때마다 한반도가 위기에 처했던 역사적 상황을 성찰하면서 임진왜란 등의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영을 견인할 수 있는 교훈과 방략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Q

중국을 비롯한 세계 학계의 이러한 움직임을 고려할 경우, 임진왜란 연구에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점, 지향해야 할 점과 관련하여 동북아역사재단에 제언 부탁드립니다.

 

A 

연구자들이 전근대사와 관련한 중국과 일본 등의 1차 사료들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한 데 모으고, 최신 연구 경향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또 전근대사와 관련된 심포지엄이나 학술회의에 가능하면 많은 연구자들을 참여시켜 세계 학계의 연구 동향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대응 논리를 만들어 가는 노력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주제는 과거의 어느 한 단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과도 상당히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난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과거 한반도와 동아시아사의 어느 한 시대도 소홀히 하지 않고 모든 시대를 균형감각을 갖고 다룰 수 있도록 재단이 필요한 역할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