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통합에 따른 역사교육을 위해 유럽회의의 요청으로 설립된 단체인 유로클리오EUROCLIO는 매년 연례대회와 워크숍을 개최한다. 올해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4월 21~26일까지 ‘지중해의 대화: 자국 중심의 시각을 넘은 역사교육’이라는 주제 하에 지중해의 역사를 유럽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북아프리카 및 중동 국가와의 공동 역사로서 이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모색했다. 이 주제는 시선의 다각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편견 없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키우게 하고 싶었던 필자도 ‘지중해의 역사는 곧 유럽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무지와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유럽과 지중해 문명 박물관MuCEM 오디토리움에 앉아 발표를 들었다. 발제를 맡은 모로코의 모스타파 하사니아이리시는 아랍과 프랑스의 지중해 역사 공유 프로젝트2013년부터 진행의 일환으로 출간된 도서를 소개하였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서로가 가진 편견과 오해와 싸우는 과정’이라는 말에서 그동안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대 구분에 대한 의견이 달라 중세 이후에는 지중해 북부의 역사와 남부의 역사로 나누어 병렬 서술하는 방법을 택하고, 가급적 많은 사례를 연구하여 공통점을 찾으려 했다고 한다. 이는 두 개의 문화권을 하나의 지중해 문화권으로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이 프랑스어와 아랍어판으로만 출간되었고 번역도 이탈리아어로만 진행중이라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앞으로 영어나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향후 우리 역사교육에도 참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대회에서는 공동 프로젝트 및 공동의 역사 교과서에 대한 발표가 잇따랐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대학교 교수인 에알 나베가 ‘상호 관점에 대한 연구’라는 소주제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동 역사 교재를 출판하는 과정을 발표하였다.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역사 서술의 방법을 달리하여 이를 극복하려 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또한, 역사적으로 숙적관계였던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 개선 및 과거사 재정립을 위한 독일-프랑스 공동 교과서 발간 과정에서도 양국의 역사교육 방법이 달라 서술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특히 다른 부분은 ‘교육적 판단’에 대한 양쪽의 태도였다. 독일은 학생들이 바람직한 역사의식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교수-학습 상황에서 일정한 의도와 교육적 판단하에 토론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프랑스는 역사나 사료에 대한 비평과 판단은 학생의 몫이며 교사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두 나라의 역사적 경험이 달라 생긴 교육 방법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사이프러스의 로이저스 루카이디스는 ‘다중 정체성을 가진 유로메드 지역사이프러스, 레바논, 요르단, 터키 학생들에게 어떻게 역사를 가르칠 것인가?’에 관한 해당 국가 교사의 공동 노력을 발표하였다. 미국의 조앤 브로드스키슈처 교수의 발표에서는, 미국의 역사교육에서 지중해와 관련된 부분을 조사하고 ‘지중해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과거’라는 제목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하여 수업에 적용함으로써 현재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시도가 엿보였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다양한 역사교육 방법을 통해 효율적인 지식 전달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핵심 역량을 신장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우리나라 역사교육에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그 외에도 브루노 보이어는 중동 지역 국가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에 관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주제 발표를 했다. 홀로코스트 교육에 가장 협조적이고 적극적인 중동 국가인 터키는 막상 자신들이 저지른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하지만 터키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가르치면서 자신들이 저지른 대학살을 언제까지나 부정하거나 침묵할 수만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홀로코스트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유럽의 난민 문제에 대한 발표가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현재 유럽에서 이들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곤경에 처해 목숨을 걸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리비아에서 탈출한 한 아이는 리비아 해양경찰에게 넘겨지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했습니다. 역사 속에서도 지중해를 넘어 유럽으로 이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타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난민들의 역사와, 그들의 삶과, 그들이 처한 문제점을 가르친다면 지금의 좋지 않은 인식이 미래에는 좋게 바뀔 수 있을 겁니다. 역사교사 여러분의 노력을 부탁드립니다.” 이 마지막 한 마디는 역사교사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다문화 시대, 우리는 역사교육 측면에서 난민 혹은 이주민에 대해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24일에는 재단이 주관한 한국 역사교원 세션에서 세 명의 현직 고교 교사가 발표자로 참여하였다. 고려대사범대부속고 방대광 교사는 동아시아사 수능 기출 문제 중 동아시아 국가의 화해를 주제로 한 문제를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등 한국 교과서의 서술 및 집필 방향을 다루었고, 가재울고 권오청 교사는 아시아역사평화연대에서 한·중·일 3국 학생을 대상으로 개최한 평화캠프를 예로 들며 과외 활동 사례를 소개했다. 필자는 한국 역사교육 현장 수업 사례로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적용한 토론 수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합의는 1976년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교육학자들이 모여 만든 교육 지침으로 민감하고 논쟁적인 주제를 다룰 때 사용한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은 교육 현장을 통해 학생들이 폭넓은 시각을 접하도록 이러한 방식의 수업을 시도하고 있다. 참고로, 유럽 지역 교사들은 한·중·일 3국이 함께 만든 공동 교과서 ‘미래를 여는 역사’의 영문 번역본에 큰 관심을 보였다. 워크숍에 참석한 모든 교사들이 이 교과서를 어디서 구할 수 있냐며 물어왔을 정도였다.
한국 교사들과 유로클리오 회원 간 만남의 시간도 있었다. 초등 역사교육 전문가 마리안 그룻트 레우베캄프, 헤이그 국제학교 교사 앤 타백, 일본 교사 가츠야 아사가와 등이 한 데 모여 한국, 유럽, 일본의 역사교육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ICT 강국 한국에서는 첨단 기기를 활용한 역사교육을 어떻게 실시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했고, 필자는 ‘유럽에서는 민감하고 논쟁적인 주제에 관해서는 어떻게 교육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며 우리 모두 교육적인 이상향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번 대회를 통해 유럽의 역사교육은 특정한 두 나라의 공동 교과서 제작을 넘어, 유럽 공동의 역사를 서술하고 교육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양한 관점으로 공동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역사교육을 위해 서술 방식이나 교수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려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4박 5일의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역사교육자들의 잔치에서 소위 ‘덕후’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즐거운 이야기들을 하고 왔다는 기쁨에 피곤함도 느끼지 못했다. 단지 서로가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역사교육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유럽 방문 기간이 너무 짧아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만, 오는 7월 유로클리오 소속 유럽 교사들의 한국 방문으로 달래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