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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새 책
전후 일본 패러다임의 연속과 단절
  • 최운도 (재단 미국 파견 연구위원)

전후 일본 패러다임의 연속과 단절패전 후의 일본은 미군 점령정치의 유산과 요시다 독트린의 제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 평화헌법과 미군 주도의 사회개혁들, 안보 분야에서의 미국 의존과 경제발전 우선 정책들, 그리고 55년 체제라 불리는 정치 구도 등, 그렇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어 온 일본 사회의 구성과 틀을 전후라 부른다 (히라노 외 2004). 1990년대, 일본의 경제력이 정점에 달하고, 냉전이 붕괴하는 국제 질서의 변화 속에서 일본인들은 그 전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본격적인 움직임은 2000년대, 전쟁을 겪지 않은 전후 세대가 일본정치의 중앙 무대로 진출하면서 시작된다.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을 외치며 그러한 움직임을 주도한 정치가가 바로 아베 신조이다. 그는 그 구호를 내세우며 2006년 총리에 취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와 정치적 악재로 1년 만에 총리직에서 내려왔다. 201212월 건강 문제뿐 아니라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무장하고 다시 총리가 되었을 때는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을 본인의 정치적 사명으로 삼았다. 그의 탈각노력은 크게 세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역사 분야로, 아베는 말로는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 동경 재판 검증, 고노 담화 검증,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부정,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통해 역사 인식의 전환을 추진해 왔다. 둘째는 외교 안보 분야로,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내세우면서 집단적 자위권의 법제화에 성공함으로써, 평화주의라는 일본의 전후 방위 정책을 적극적 평화주의로 전환하였다. 셋째는 경제 분야로,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의 장기 불황에서 탈출하고 일본의 경제 체질 개선을 도모하는 아베노믹스의 추진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전후로부터 벗어나는 데 성공하였는가? 아베는 본인의 정치적 사명을 달성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한 것이 바로 이 책 전후 일본 패러다임의 연속과 단절을 기획하게 된 출발점이다.

패전과 복구의 과정에서 일본의 전후는 사회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 만큼 전후 패러다임이란 전후로 대표되는 사회 전체의 구성을 의미한다. 그런 만큼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은 어느 한 분야에서의 변화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한 분야의 변화는 다른 분야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변화가 있다 한들 모든 분야가 한꺼번에 변화해 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외교,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전후로부터의 연속과 단절을 알아보기 위해 11명의 전문가가 참가하고 있다.

전후를 구성해온 일본 정치 체제의 핵심이 바로 ‘55년 체제이다. 이는 자민당과 사회당을 중심으로 이념 갈등을 벌이는 보수와 혁신의 대립 구도와 자민당의 일당 우위 체제를 말한다. 일본에서 전후로부터의 변화를 위한 노력의 시작은 일본의 정당정치에서 일어났다. 1994년 국회의원 선거에 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를 도입하면서 다당제와 일당 우위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였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일본의 정당 정치는 55년 체제와 유사하다. 자민당 일당 우위의 다당제 양상을 보이지만 과거 보혁 대립의 시대와 같은 강력한 혁신 야당이 존재하지 않으며 여전히 다수의 소규모 정당들이 난립하는 다당제 모습을 띠고 있다. 변화라고 한다면 정치인들이 과거보다 더욱 보수화되고 있으며, 선거에서 정당 리더십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점 등이 있다(1. 한의석). 자민당 지도부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강한 만큼 파벌의 기능은 약화되었지만 파벌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기능 약화와 파벌 유지 사이의 모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과거 실질적인 공천권, 정치 자금, 선거 운동 시의 인적 지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파벌의 강력했던 영향력은 선거 제도 등의 변화로 인해 상당 부분 감소하였지만, 의원 내각제의 특성상 지도부의 정책 결정 과정과 내각 주요 요직의 교환 관계로 인해 파벌 유지는 의원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2. 경제희).

·일 관계에서 전후 패러다임은 우호적 한·일 관계, 정경 분리 원칙, 그리고 역사 관련 일본의 기본적 입장(식민 지배 합법성, 독도 영유권 등) 고수로 정리된다. 2000년대 이후에는 우호적 한·일 관계원칙이 흔들렸다는 점이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둘러싼 갈등,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문제, 교과서 문제 등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은 한·일 관계가 이전의 특수 관계에서 보통 관계로 변화해 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4. 이면우).

1990년대 이후 일본 정치·경제 시스템 변화를 위한 논의는 그 방법에 있어서 구조개혁론과 점진개선론의 대립 구도 속에서 진행되었다. 일본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구조개혁론이 부각되었던 것도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정치경제 시스템은 여전히 고도 성장 시절 구축된 제도들과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아베노믹스라는 정책들을 동원하여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로 그 변화를 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성패는 불분명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7. 이정환).

외교안보 분야의 분석을 위해 아베 내각의 국가 전략을 분석한다. 이 분야에서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이라면 첫째는 일본인의 손으로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자위대의 존재를 명시하는 것이며, 둘째는 요시다 독트린의 토대 역할을 한 안보 분야의 대미 의존을 벗어나는 것이다. 안보 분야의 대미의존은 아베 정권하에서도 숙명과 같이 수용되고 있다. 대신 헌법 개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중참의원에서의 여당 의석 2/3이상을 확보하고 있으며, 자민당의 개헌안 준비도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해석개헌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 허용이 치밀하게 계획된 일련의 법 제도와 국가 전략 속에서 이루어진 만큼 쉽게 되돌릴 수도 없게 되었다. ·일 동맹은 계속되지만 이제 전후 체제의 제약으로부터는 상당 부분 벗어난 셈이다(10. 최운도).

이상은 이 책에 수록된 논문 중에서 일부분만을 소개하였다. 11개 논문의 저자들은 모두 일본 정치 전공자들일 뿐 아니라,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인 만큼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에 대해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과 일반인이라면 꼭 한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