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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메이지 세계유산과 메이지의 기억
  • 남상구 (한일관계연구소 근현대연구실장)

일본 정부는 기술적전문적 견지에서 내려진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를 존중합니다. 특히 그 해석 전략(interpretive strategy)’을 발전시킬 때 일본은 동 전략이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는 권고를 충실히 반영할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일본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하였으며(forced to work),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하였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일본은 인포메이션 센터 설치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석 전략에 포함시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201575일 독일 본에서 개최된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의 메이지시기 산업시설 등이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때 사토 구니(佐藤地) 일본 측 수석대표가 한 발언이다. 그로부터 2년이 넘게 지났다. 일본이 세계유산센터에 경과 보고서를 제출하기로 된 121일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동안 일본은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메이지 세계유산과 메이지의 기억강제 동원 역사가 사라진 유산들

지난 91일부터 5일까지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시설 가운데 한국인이 강제로 동원되었던 야하타제철소, 미이케탄광의 만다갱과 미하라갱, 나가사키조선소, 하시마탄광(일명 군함도), 다카시마탄광 등을 둘러보았다. 모든 시설에는 통일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이런 문구가 기술되어 있었다.

“19세기 중반 서양에 문호를 닫고 있던 동양의 한 국가는 해안 방비의 위기감으로부터 서양 과학에 도전을 하고, 공업을 발전시키는 것을 국가의 커다란 목표로 삼아, 서양의 산업혁명 물결을 수용하고 공업입국(工業立國)의 토대를 쌓았다.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은 1850년대부터 1910년까지 일본 중공업(제철제강, 조선, 석탄산업)의 커다란 변화, 국가의 질()을 변화시킨 반세기의 산업화를 증언하고 있다.”

일본의 공업입국이 만들어 낸 철은 대포가 되고 선박은 군함이 되어 석탄을 연료로 이웃나라를 침략했다는 사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그 시설에서 많은 한국인과 중국인, 연합국 포로가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미하라갱에서는 1931년까지 일본인 죄수가 동원되어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지만 이러한 사실도 기록되지 않았다.

일본어로 제작된 만다갱 안내 팸플릿에 “1930년대 이후 일본은 중국 및 구미와 전쟁을 했기 때문에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어, 당시 식민지 조선의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 연합군 포로 등을 강제 노동 시키는 등 불행한 일이 발생했습니다.”라고 기술한 것이 강제동원의 역사를 언급한 유일한 자료였고, 그나마 한국어/중국어/영어 팸플릿에는 이러한 내용도 없었다. 만다갱을 설명하는 안내원도 한국인이 강제 노동한 사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답변했고, 나머지 시설에서도 똑같은 답변이 되풀이되었다.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메이지 세계유산과 메이지의 기억


메이지 세계유산과 메이지의 기억메이지를 자랑스럽게 인식하는 아베 정부

이러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베 정부가 메이지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작년 107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메이지 150년은 우리나라에게 하나의 커다란 기념비적인 해로, 메이지 정신을 배우고 일본의 강점을 재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아사히신문2016.10.7.) 일본 정부는 같은 해 11월 내각관방에 <‘메이지 150관련 시책 추진실>을 설치하고 정부 부처 간 연락회의를 개최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150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158월 발표한 담화에서 메이지 시대를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배경으로 식민지 지배의 물결은 19세기 아시아에도 밀려왔습니다. 그 위기감이 일본 근대화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틀림이 없습니다. 아시아 최초로 입헌정치를 내세우며 독립을 지켜냈습니다라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아베 정부의 메이지에 대한 인식은 성공한 역사,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것이니, 세계유산에 등재된 메이지 산업유산 설명에도 이러한 아베 정부의 역사인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약속한 시간이 세 달도 남지 않았는데, 일본이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어떻게 이행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