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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역사도시 이야기
2천년 한・일 교류의 빛과 그림자, 후쿠오카
  • 박삼헌 (건국대 일어교육과 교수)

후쿠오카(福岡県)는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때문에 점심으로 하카타(博多, 후쿠오카시의 동쪽 지명) 라멘 먹으러 갔다 와도 될 정도라는 농담이 있을 만큼 한반도와 매우 가깝고, 그래서 한일관계의 중요한 장면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 장소들을 하나 둘 방문해 보도록 하자.

 

2천년 한・일 교류의 빛과 그림자, 후쿠오카굴곡진 한일 관계를 품고 있는 구시다(櫛田) 신사

후쿠오카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JR하카타역에서 빠른 걸음으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구시다 신사가 있다. 이곳은 후쿠오카 최대 여름축제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祇園山笠)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초대형 가마인 오이야마()가 출발하는 곳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대형 쇼핑몰 캐널시티 하카타로 이어지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후쿠오카를 찾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로 꼽힌다. 하지만 이곳만큼 2천년 한일관계의 어두운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긴 곳도 없다.


구시다 신사의 도리이(鳥居)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데, 그 옆으로 커다란 돌 비석 같은 것이 있다. 여기에는 천년 이상의 하카타 최고(最古) 은행나무라는 설명과 함께 몽고군의 닻이라 추정되는 돌에 대한 설명을 적은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것은 “128110만 대군으로 하카타 항에 침공해 온 몽고군이 패전했을 때 버리고 간 닻으로 사용되었던 돌이고 전라남도 장흥 남쪽 천관산 부근에서 몽고군이 갖고 온 것이라 한다. 지금까지도 공포심을 뜻하는 무쿠리고쿠리(몽골고려)’, 여몽연합군에게 큰 피해를 입혀서 퇴각하게 만든 태풍을 가리키는 가미카제(神風)’ 등의 언어로 몽골 침입에 대한 일본의 기억과는 결을 달리하는, 일본 침략에 강제 동원된 고려인의 말 못할 고통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은행나무를 지나 본전 왼쪽으로 50m 정도 걸어가면 하카타역사관이 보이는데, 입구에 히젠도(肥前刀)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향후에도 공개할 예정은 없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인 푯말이 세워져 있다. ‘히젠도는 명성황후 시해에 참가했던 도오 가쓰아키(藤勝顯)가 사용한 칼이다. 히젠도의 칼집에는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 도오 가쓰아키가 사건 당일 작전명 여우사냥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하카타역사관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인형이 보인다. 공교롭게도 전국시대 이래 쇠퇴했던 하카타를 재건하도록 명했던 것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였기 때문이다.


하카타박물관에서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 등의 역사를 보고 나와 다시 본전을 왼쪽으로 끼고 돌면 도리이 왼쪽으로 길쭉한 기념비가 보인다. 그 명칭은 메이지 28년 정청기념비(征淸記念碑)’, 즉 청일전쟁 승리 기념비이다. 왜 이 곳에 이러한 기념비가 세워졌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다만 몽고군의 닻히젠도그리고 한반도가 위치한 서쪽을 바라보는 긴시(金鵄)로 장식된 기념비가 공존하는 구시다 신사는 700여 년간 이어진 굴곡진 한일관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아닐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그리고 후쿠오카 구치소

지하철 공항선을 타고 후지사키 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20분 정도 걸어가면 후쿠오카 구치소가 보인다.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경성의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릿교대학과 도시샤 대학을 다니다가 체포된 시인 윤동주는 광복을 몇 달 앞둔 1945216, 이곳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쳤다. 때문에 이곳은 만주-한반도-일본 열도로 이어진 그의 길고 긴 행로와 서글픈 식민 조선의 청춘이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명란젓과 멘타이코(明太子)

부산에서 페리를 타고 출발할 수 있는 후쿠오카는 최근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 이상민의 왕복 59천 원 궁셔리 초저가 투어로 유명세를 탔다. 늦은 밤 나카스(中洲) 강변 포장마차에서 후쿠오카 명물로 소개되는 명란젓 구이 등을 먹으며 만족해하는 연예인의 모습은 어떤 형태로든 여행이란 참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가 만족하며 먹었던 명란젓은 일본어로 멘타이코라 부른다. 그런데 그 멘타이코가 본래 한국의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13년 부산에서 출생한 가와하라 도시오(川原俊夫)라는 일본인이, 1945년 패전 이후 하카타로 귀국한 뒤에 부산에서 먹던 매콤한 명란젓이 그리워 만들어 낸 것이 하카타의 명물로 전국에 알려지고, 이제는 오히려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특산물로 역수입되고 있는 것이다. 명란젓과 멘타이코 사이에는 부산과 후쿠오카의 거리만큼이나 친밀한, 그러나 굴곡진 사연을 품은 재조일본인의 시간도 흐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