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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보고
文을 품은 史, 지리산 문화권 일대
  • 윤지영(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3)

文을 품은 史, 지리산 문화권 일대


지난 5월 떠났던 답사는 여느 때와 조금 달랐다. 보통 답사 장소는 경상북도 일대나 전라남도 일대처럼 지리적 위치를 기준으로 정하는데, 이번에는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지역적 공간을 기준으로 정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개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이 호기심은 이번 답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지리산 문화권은 지리산을 둘러싼 영·호남 지역을 일컫는 말로, 경상남도 산청군, 함양군, 하동군,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이 여기에 속한다. 이 지역들은 예로부터 지리산으로 인한 구심력에 의해 동질의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건 지리산 양쪽으로 흐르는 강줄기 덕분인데, 동쪽에는 남강과 경호강, 서쪽에는 섬진강과 보성강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강들은 지리산 내에서 동서 간의 교통을 담당했고, 문화 교류의 활로가 되었다. 이를 통해 지리산 자락을 바탕으로 종교와 사상이 발전하여 사람들의 생활 속에 녹아들었고, 외세의 침략과 역사적 변혁 시기에 지리산을 중심으로 영·호남이 연대하게 된 것이다.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

지리산 문화권의 많은 특색 중 돋보이는 것은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들의 폭넓은 매력이다. 이번 답사는 지리산 문학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많았는데, 무엇보다 입시 이후로 잊고 지냈던 문학 작품들을 생생히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먼저 찾아간 곳은 평사리 토지무대이다. 이곳은 소설 토지의 주인공 최치수 및 최서희 일가를 중심으로 한 최참판 댁과, 그 주변 인물들의 생활 공간을 재현한 곳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한 가문의 몰락과 재건 과정을 그린 소설로, 우리 민족이 겪은 고된 아픔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러한 소설 속 무대를 실제 공간에 재현한 이곳은, 굉장히 실감나게 꾸며져서 마치 소설 속에 들어와 있는 듯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다음으로 간 곳은 소설 역마의 배경인 쌍계사와 화개장터다. 역마는 역마살을 가진 성기와 계연의 운명, 그리고 비운의 사랑을 담은 문학작품인데, 역마에서 역마살을 가진 성기가 자란 곳으로 등장하는 쌍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며 723(성덕왕 23)에 의상(義湘)의 제자인 삼법(義湘)이 창건하였다. 우리는 성기가 자란 쌍계사를 지나, 성기의 성장 과정과 더불어 그의 여정을 따라 화개장터로 이동하였다. 리모델링을 거쳐 활성화 된 화개장터를 보니 옥화와 성기가 장날 일하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였고, 그 옛날 객주의 오고감이 끊이지 않았을 화개장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쌍계사와 화개장터의 길을 걸으며 여행길에 올랐던 역마속 주인공들의 심정과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았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간 곳은 만복사지이다. 만복사란 누구나 부처님에게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을 갖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만복사지는 고려 문종(1046~1083) 때 기린산을 북쪽에 두고 남쪽으로 넓은 평야를 둔 야산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만복사지는 당시 많은 건물들과 수백 명의 승려들이 머무는 곳으로 남원 8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큰 절이었다. 비록 정유재란(1597) 당시 남원성으로 침입한 왜적에 의해 불타버리면서 지금은 그 과거를 볼 수 없지만, 조선 세조 때 김시습이 만복사지의 아름다운 장관을 배경으로 쓴 불교소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를 통해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만복사저포기는 노총각 양생이 만복사에서 만난 영혼과 사랑을 나누고 부부의 연을 맺는 이야기이다. 지금은 터만 남아 양생의 신비한 사랑이 비극으로 끝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만복사지는 터만 남아있더라도 우리나라의 종교적 특성이나 문화, 문학적 가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개장터 / 평사리 <토지>무대


을 품은

우리는 언젠가부터 문학의 중요성을 잊고 살았는지 모른다. 역사를 잊지 말라고 하면서 문학은 잊고 있었다. 역사 공부가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과거·현재·미래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적이며, 과거는 단순히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 살아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은 어떠한가? 문학은 살아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문학도 과거의 것으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나 역시 역사문화학과에 진학했으면서도 문학은 지나가 버린 것으로 여겨왔다. 마치 역사와는 아무 관련도 없다는 듯이. 하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 문학 또한 역사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문학을 통해 우리는 민족의 삶과 얼을 알아갈 수 있고, 그렇기에 이 또한 살아서 의미가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지리산 문화권은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지역이라는 사실만으로 역사가 되며, 그 역사 안에는 문학, 종교, 사상과 같은 여러 문화적 가치들이 존재한다. 그동안 답사를 다니며 역사 안에 문화적 가치들이 존재하고, 또 살아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역사적 사실관계를 따지는 데 급급했을 뿐이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가 그런 태도를 갖길 바라지 않는다. 아마도 역사적 사실 안에 살아 숨 쉬는 우리의 문화를 바라보길 원할 것이다. 앞으로의 답사도 을 품은 를 느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