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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일본 지진과 메기 그리고 소사
  • 김민규 역사연구실 연구위원

지진 뉴스라면 이제 하도 많이 접해 모두들 식상해 있으리라. 3월 11일의 동일본대진재(東日本大震災)가 발생한지 꼭 한 달이 되는 시점인 4월 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전국 각지에선 사이렌소리와 함께 희생자를 위한 묵도가 올려졌다. 그로부터 두 시간 반이 지난 오후 5시 16분, 한국으로 보낼 우편물이 있어 학교 건너편 우체국에 들렀는데 갑자기 큰 건물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진앙지인 도쿄 근처로부터 진도 7의 강진이 전달됐다. 2층 창밖에 보이는 모든 건물과 나무들이 일제히 '사시나무'로 돌변했다. 웬만해선 안 하는 멀미가 나면서 모골 또한 송연해졌다. 대체 언제쯤이나 멈추려는가! 모두들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매일매일 아니 매 시각이 불안의 연속!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아~ 우리 대한민국'으로의 '피난 이주'도 불사하리라는 생각을 분명하고 있으리라!

[그림1] 지진예방 위해 메기 혼내줌

일본에는 예로부터 땅속 깊은 곳에 '거대메기'가 살고 있는데 그 큰 메기가 화가나 요동을 치면 대지진이 일어난다는 속설이 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직후 숨어 지내기 위해 성을 지을 것을 명했는데, 그 때 "메기에 의한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성을 지으라"고 했을 정도였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오늘날에도 실제로 메기가 요동치면 지진이 발생한다고 믿고 있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림2] 지진예방 퍼포먼스

토쿠가와(德川)말기에는 우키요에(浮世繪)나 민화(民畵)를 패러디해 이 거대메기를 달래거나 혹은 혼내는[그림1] 또는 지진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위에서 꼼짝 못하게 누르고 있는[그림2] 나마즈에(鯰繪)라 불리는 그림이 대유행이었다. 특히 1855년 11월 11일(아~ 또 11일!) 진도 7의 강진으로 대도시 에도(江戶=도쿄)에서는 4300여 명이 죽고 1만 여 채의 가옥이 파괴되는 피해 발생, 이후 나마즈에는 날개를 단 듯 팔렸다. 이어 이 나마즈에는 당시 빈번하게 발생했던 요나오시잇키(世直し一揆)로 피해를 입은 민서(民庶)들을 위해 의인화시킨 메기가 도와주는 그림 또는 지진 복구를 위한 경기 진작으로 일확천금을 거머쥔 상인들과 메기가 함께 어우러져 기쁨을 나누는 그림 등으로 그 버전을 다양화해 간다. 심지어는 미 해군 페리 제독이 흑선(黑船)을 이끌고 두 번째 내항해 화친조약을 체결(1854년)할 즈음, 페리 제독과 메기가 서로의 목에 끈을 걸고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을 풍자한 [그림3]도 있다.

[그림3] 페리 제독과 메기의 힘겨루기

이렇듯 일본인들은 거대메기와 그 삶의 궤적을 함께 한다. 지구가 갑자기 조로(早老)증에 걸리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그런데 이번 지진과 쓰나미가 보여준 괴력의 여파로 원자력발전소가 절단이 나 방사능이 풍비박산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앞으로 일본인들은 이 거대메기를 훌쩍 뛰어넘는'미래판 상상의 동물'을 하나 더 만들어내야 할 절박한 형국에 처하게 되었다. 허나 지진과 달리 분초를 다투어 해결해야 하는 불가시(不可視)한 방사능 재해를 당해놓고도 우왕좌왕·좌고우면·진퇴유곡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면면을 보면 비록 상상의 동물일지언정 그것을 만들어 내는 데는 아마도 수백 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하긴 '(일본정부가 원전사고 등급을 4에서 7로 재조정한 것과 관련하여) 방사성 물질이 이처럼 대량으로 방출됐다고 공식인정하기까지 무려 1개월이나 걸렸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그것도 딱히 불가사의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사진1] 상춘객

세계 유일의 핵 피폭국 일본! 그 일본이 이번에는 스스로가 방사능에 '피폭'당하면서 그 오염수를 인접국 한국에게조차 통보하지 않은 채 그냥 바다로 흘려보냈다. 아예 '해양오염 테러국가'가 되겠다고 자청한 것이다. 과거 콜로니얼리즘·임페리얼리즘의 '테러국가'였던 일본이 강제병합의 불법성과 식민지배의 잘못에 대한 '공식인정'을 마치 '핵 무장된' 오수 바다에 쏟아붓 듯, 그저 무책임하게 유야무야 흘려버릴 것인가! 영토 야욕에 대한 칼은 결단코 버리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화사하게 핀 벚꽃을 즐기는 저 우에노(上野) 공원의 뭇 상춘객들[사진1]! 그러한 류(流)의 테러야말로 생물학적 반감기(半減期)가 훨씬 더 긴 정신적 테러임을 저네들은 과연 알기나 하는 걸까? 아~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여~ 무심도 하구나!

".... 하지만 '핵공기'나 '핵물'보다도 더 무섭고 혐오스러운 건 한·일 양국 간에 아직도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보이는 편견과 차별, 우월의식으로 무장된 바로 그 '장벽'의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양국민이 힘을 합쳐 그 단단한 벽을 부수는 그날이 하루라도 빨리 올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다 같이 열심히 노력해 나아갑시다~~~!!!" 
[도쿄에서 4월 13일 탈고]

① 일본 전설상의 동물로 오오나마즈(大)라 함. 메기를 뜻하는 한자는 염(鯰: 념 또는 점으로도 읽음)과 점(鮎 : 염 혹은 념 또는 점으로도 읽음)이 있는데 이형동의자다. 후자가 점(占)자를 품고 있는 것이 제법 그럴싸하다
② 교토(京都) 소재의 후시미(伏見)성. 모모야마(桃山)성이라고도 함. 축성 개시 2년 후인 1594년 토요토미가 입성해 1596년 완성을 보았으나, 그 직후 지진을 맞아 무너짐. 개축해 1597년 완성되었지만 토요토미는 1년 후에 병사
③ 토쿠가와시대에 성행했던 목판 풍속화. 우키요(浮世)는 '고달파 덧없는 세상'이라는 뜻
④ 우리에게 익숙한 예의 그 관동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에 발생
⑤ '안세이(安政, 1855년)의 대지진'으로 불린다. 당시 친(親)막부 다이묘(大名)였던 미토(水戶)번주 토쿠가와 나리아키(徳川済昭, 1800~1860, 막부 최후의 쇼군 토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 1837~1913]의 아버지)의 심복이었던 미토가쿠(水戶學)의 대가 후지타 토오고(藤田東湖, 1806~1855)가 이때 죽음. 지진으로 일단 집밖으로 피한 어머니가 화롯불을 걱정해 집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뒤따라 들어가 어머니 쪽으로 쓰러지는 기둥을 자신의 어깨로 받아내어 구하고 자신은 압사했음
⑥ 바쿠후(幕府) 말기와 메이지(明治) 초기에 빈농층이 구태·구습에 찌든 봉건 바쿠한(幕藩)체제 하에서 살기 힘들게 되자 빈번히 일으켰던 반란
⑦ 쿠로후네. 우리말로 이양선(異樣船)
⑧ 그림의 제목은 "安政二年十月二日夜大地震鯰問答"으로, 안세이(安政) 2년 10월 2일은 서력으로 1855년 11월 11일에 해당하며, 이날의 대지진을 페리 제독의 내항과 조약체결 강요에 빗대어 그린 그림으로 보임
⑨ "Japan Nuclear Disaster Put on Par With Chernobyl," The New York Times(Tuesday, April 12, 2011)
⑩ 4월 7일 밤, 동경대학 대학원 문학부 한국조선문화연구실 신입생환영회에 초대받아 행한 김민규의 자기소개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