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말 터키 이스탄불을 다녀왔다. 짬을 내 이스탄불 시내 곳곳을 둘러보는 행운을 누렸다. 마치 세계사 책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느낌? 콘스탄티노플 성, 성소피아 성당, 블루 모스크, 돌마바흐체, 지하물궁전, 토프카프 궁전, 보스포러스 해협, 히타이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거대한 석상들까지 하나같이 역사책에서나 들어봤던 지명과 건물들이 내 눈앞에 그냥 서 있었다!
우와... 세계 제국이란 이런 것이구나... 어디 가서 5천 년 역사 자랑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덩달아 들었다. 우리가 못나서는 아니다. 그보다는 동서양의 문화와 역사가 직접 맞부딪쳐 만들어진 것들은 상상 이상으로 역동적이었고 장쾌했다. 극동의 한쪽 끝에서 아련하게 느끼는 먼 서역의 흔적과는 질이 다른 것이었다.
이상도 하지. 제국이라면 바로 가까이에 중국도 있고, 여러 차례 천안문과 만리장성을 보기도 했지만 별 감흥이 없었는데 왜 이스탄불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일까? 어떤 이는 중국의 유적들은 익숙하기 때문 아니겠냐고 했지만 터키라는 나라가, 혹은 이곳에서 일어난 역사가 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어서는 아닐까? 우리랑 엉켜 싸운 적 없고, 그들의 영광이 내 좌절인 적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리스 로마 땅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숱한 부조물과 제우스와 아프로디테와 아폴로의 멋진 조각 석상들이, 그리스와 로마인들한테 훔친 것이든, 조공 받은 것이든, 심지어 그리스와 로마서는 신탁을 위해 세워졌을 아름다운 신전의 기둥들이 고작 이슬람 사람들이 먹을 물을 저장하는 물 저장고의 기둥으로 쓰였다고 해도 그게 뭐 별로 가슴 아프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실낱같은 인연을 따지자면 수∙당과 싸움을 앞두고 고구려가 기꺼이 사신을 보내 동맹을 맺은 것으로 추정되고, 우랄알타이어를 함께 쓰는 돌궐의 후예라는 인연이 주는 호감 때문일수도 있다. 그래서, 중국과는 좋았던 때마져도 대부분 사대와 굴종을 전제로 하고, 나빴을 때는 그야말로 죽고 죽이는 관계일 수밖에 없었기에, 편하게 유적 자체로 즐길 수가 없어 나도 모르게 낮춰 보려는 편견이 작동하지만 이스탄불의 유적들은 아무런 걸림 장치 없이 있는 그대로 가슴에 와 닿기에 더 대단해 보이는 것일까?
1천7백년 된 도시가 주는 교훈
그러나 중국이든 투르크든 제국이었던 시절에는 공통점이 있다. 다양성과 포용이다. 옛 동로마 제국의 영광이 새겨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던 마호메트 2세는 점령한 후 이슬람 전통대로 3일간의 약탈을 허용했다가 곧 후회했다. 이 멋진 도시를 파괴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후 오스만 제국은 남의 종교나 인종, 민족을 배척하지 않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심지어 기독교조차도. 그러니까 오스만의 포용 덕에 1천7백년 된 이 도시가 지금도'도시'로 살아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최대 제국을 이뤘던 당이나, 몽골의 원 제국도 마찬가지다. 이민족 이문화에 대한 포용은 제국을 유지하는 최고의 통치술이자 제국에 영화를 가져다 준 원동력이다.
오스만이든 중국의 어느 왕조에게서든 세계 제국을 이뤘던 땅에서 배울 것은 유적의 크기나 아름다움이 아니라, 다른 민족 다른 종교 다른 문화를 아우르는 배려와 포용일 것이다. 그것은 이미 다양한 사람, 다양한 생각을 품고 있는 우리 사회 안에서도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터키 사람들은 한국을 되게 좋아한다. 이 험한 세상에서 순수하게 우리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놀랍고 기분 좋은 일이기는 하다. 혹시 우리와 터키의 호감은 잊어버리고 살지만 같은 유목민의 피가 흐르기 때문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