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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장소의 역사성과 기억, 그리고 역사 만들기
  • 박정애 (재단 일본군‘위안부’연구센터 연구위원)

일본 오키나와 미야코지마  일본군‘위안부’ 추모비 건립 10주년 행사 참관기 장소의 역사성과 기억, 그리고 역사 만들기‘위안부’에 대한 기억, 미야코지마 사람들이 섬을 사랑하는 방식

미야코지마에 건립된 일본군위안부 추모비가 올해 10돌을 맞았다. 미야코지마는 일본 오키나와의 본섬에서도 남단으로 300㎞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섬이다. 높은 산이 없이 완만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변이 아름다워 관광지로 이름 높다. 섬사람들은 미야코지마를 사랑한다고 자랑스레 그 아름다움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다. 태평양전쟁기의 전쟁 상흔과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기억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미야코지마 사람들이 섬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공간의 기억을 사람이 잇다

1990년대 김학순의 등장 이후, 오키나와 여성사 연구 집단은 1970년대부터 오키나와의 조선인위안부 피해자 배봉기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성찰을 하고 오키나와의 위안소 피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위안부보다 위안소에 조사의 방점이 찍힌 이유는, 당시에도 오키나와 어디엔가에서 살고 있을지 모르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입장을 존중한 것이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전쟁 당시 마을의 풍경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위안소의 옥호(屋號)를 기억해내며 150여 개에 달하는 위안소 지도를 만들어나갔다.


이때 미야코지마에 관한 조사가 소홀했던 이유는 본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전쟁 당시 미군 상륙이 없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민 52,000명이 사는 미야코지마에 일본군 30,000명이 들어온 이후 섬 전체는 일본군의 요새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군은 주둔지 주변에 17개의 위안소를 설치했다.


미야코지마 주민들은 위안소에 가까이 갈 수는 없었지만 일상 속에서 위안부들과 자주 부딪쳤다. 위안소 앞에 줄 서 있는 병사들을 멀리서 보았고, 병사가 없을 때는 위안소 주변에서 풀베기를 하거나 아이들을 돌보며 위안부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천이 없어 물이 귀했던 미야코지마에서 우물에 물을 길으러 다니며 위안부 여성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풍경은 흔한 것이었다.


미야코지마에 살고 있는 요나하 히로토시(那覇博敏) 씨는 소년 시절 집 근처 커다란 바위 근처에서 자주 봤던 조선인 누나들을 기억했다. 위안소에서 지내면서 빨래를 하기 위해 우물을 왕복했던 위안부 여성들은 그늘이 있는 커다란 바위에 기대어 쉬곤 했다. 미야코지마 사람들은 우물까지 가는 것이 허용된 위안부들의 잠깐의 자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었다. 2006년 요나하 씨는 앗바라기(アッパラギ) 여성들을 떠올리며 바위 사이에 돋아난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앗바라기는 미야코지마 사투리로 아름답다는 의미인데, 미야코지마 사람들은 위안부앗바라기 여성으로 기억했다. 마침 오키나와 위안소를 조사하기 위해 미야코지마를 방문한 한국인 유학생 홍윤신 씨가 그곳을 지나다 요나하 씨와 인사를 했고, 그 바위의 의미를 알게 된 후 한국과 도쿄의 활동가·연구자에게 이 사실을 전하였다. 그리고 힘 모아 <한국·오키나와·미야코지마 위안소 조사단>을 결성하고 피해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여 2008년 9월 7일 결실을 보았다.



미야코지마의 일본군위안부 추모비, ‘아리랑비’와 여성들에게

요나하 씨의 기억의 바위는 그대로 추모비가 되었다. 건립에 참여한 이들은 아리랑비라고 이름을 붙였다. 아리랑비 뒤에는 다시 여성들에게한국말로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라고 이름을 붙인 세 개의 추모비를 세웠다. 이 비에는 위안부 피해자가 나온 11개 지역의 언어에, 베트남 전쟁 당시 성폭력 피해를 입은 베트남 여성들에게 보내는 애도의 의미로 베트남어를 더해 12가지 언어로 추모글을 새겼다. 이후 매년 9월 둘째 주 주말에 미야코지마 사람들과 각국의 활동가·시민들이 모여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올해는 건립 10주년을 기리는 의미로 9월 8일과 9일, 오키나와의 나하와 미야코지마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시 묻는다: 미야코지마 아리랑비, 여성들에게 건립 10주년의 의미와 과제>라는 국제 심포지움도 열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후원을 받아 심포지움 개최와 더 많은 사람들의 참가가 가능했다. 미야코지마 사람들이 기억하는 위안부에 관해 이야기하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선인위안부에게 배웠다는 노래 아리랑을 한국말로 부르며 이 모든 기억들이 역사가 되기를 소원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미야코지마의 기억을 공유하고 이어가기를 다시금 소원했다. 내년 9월 둘째 주 주말에는 건립 11주년 추모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이 글은 미야코지마 일본군위안부추모비 건립 10주년 심포지움(2018.9.8./오키나와 대학 개최)에서 발표된 다카자토 스즈요(오키나와위안부문제의 개요), 홍윤신(오키나와 전쟁의 기억과 위안소), 우에자토 키요미(미야코지마 일본군위안부를 위한 비아리랑비의 건립 과정과 군사화의 현재)의 글을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기억을 이어가며 여성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이분들의 노력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