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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는 메이지 유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대담 이원우(재단 국제관계와 역사대화연구소 소장)

동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는 나폴리의 현인

 

박 훈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국민대 일본학과를 거쳐 현재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메이지 유신의 기원, 정치 변혁과 공론(公論), 일본인의 대외 인식 등과 관련해 논문을 써 왔다. 논문으로 「메이지 유신과 ‘사대부적 정치 문화’의 도전」, 저서로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근대화와 동서양》(공저) 등이 있다.


1868년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린 뒤 성립된 유신 정부는 정치적 결정은 공론에 의하여 결정하며, 구습을 타파하고 서양 문물을 도입한다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하는 5개조 서문을 선포했다. 이어서 중앙집권제 확립, 토지·조세 제도 개혁, 징병제·신식 교육 실시 등을 급속히 추진하여 메이지 일본은 근대적 통일국가로 변모한다.

메이지 유신과 그 이후의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메이지 유신 1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다방면으로 진행 중이다. 오랜 기간 메이지 유신과 일본 근대사를 연구해 온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를 만나 메이지 유신과 한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학기 중인데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최근 관심을 갖고 계신 연구 주제나 참여 중이신 활동도 궁금합니다.

 

A

지난 2월 일본 교토의 리츠메칸대학(立命館大學) 공론 연구회에 초청 강연을 다녀왔고, 이후 연구회 팀과 동아시아 공론 및 민주주의와 관련한 새로운 연구 주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근대 일본 경제의 선구자인 시부사와 에이이치(澁鐸榮一)의 자서전 『아마요가타리(雨夜譚)』 역주 작업을 거의 마무리하여 연내에 출간할 예정입니다. 또 2014년에 출간한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가 주로 메이지 유신의 원인과 배경에 대한 것이어서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정작 다루지 못했는데, 1853년 페리 출현에서부터 1868년 왕정복고까지를 다룬 메이지 유신사를 써볼 계획입니다.

 

Q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오랜 시간 일본 근대사를 연구해 오셨습니다. 특별히 일본 근대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 복잡 미묘한 이중적 태도를 갖고 있는데, 그런 감정들에 얽매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일본사를 밝혀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동양사학과 대학원 재학 시절에는 학생 대부분이 중국사를 전공 분야로 택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일본 연구에 너무 소홀하지 않은가 하는 고민이 있었고요. 또 졸업 후 신문사 기자로 약 3년 일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 편집국에서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자들의 태도와 기사로 나오는 일본에 대한 논조가 너무 달라 다소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된 거죠. 그런데 일본사를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한 당시에 비하면 일본에 대한 정보의 양도 많아지고, 연구 주제가 깊어지고, 연구자도 확산되었습니다만, 여전히 일본을 대하는 공격적인 감정이랄까 기본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Q

올해 메이지 유신 15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는 여러 기념행사를 기획하는 모습입니다. 교수님의 저서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도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요,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A

새삼 주목받는다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만 꾸준히 판수를 거듭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제가 20년 동안 공부한 것들의 결실인데, 따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기획한 책은 아닙니다. 다만 지난 시기 일본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적개심 아니면 콤플렉스였는데, 이젠 우리의 국력도 많이 성장했으니 여유를 가지고 일본을 객관적 연구 대상으로 삼을 때도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에서 일본의 역사를 냉정하게 들여다보려고 했습니다.


이 책의 특징은 어떤 사회에 위기가 닥쳤을 때 각각의 주체가 필사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다룬 것인데, 사실 이런 것들은 2천 년 일본 역사에서도 아주 드문 현상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게 주는 교훈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메이지 유신을 일방적인 서구화 과정으로만 알고 있는데, 사실은 동아시아화 과정과 병행하며 이루어졌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동아시아적 언어로 이해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실험적으로 시도해보았다고 할까요. 그런 부분들이 학계로부터 인정받았던 것 같고, 일본 학계도 그 부분에 주목한 것 같습니다.

 

Q

메이지 유신은 모든 동아시아 국가에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성공적인 근대화를 이루었지만,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희생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메이지 유신이 아니었다면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A

메이지 유신에 대해 ‘일본 제국주의의 시발점’ 혹은 ‘한국 병합의 출발’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죠. 그런데 메이지 유신은 사실 한일병합으로부터 4~50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이는 결과를 기준으로 역사적 사건의 인과 관계를 설정하는, 이른바 목적론적 시각입니다. 목적론적 시각으로 과거를 보게 되면 과거가 있는 그대로의 실체로 보이지 않고 목적에 맞게 재편되어 보이지요. 때문에 그러한 태도는 어떤 대상을 비난하기는 쉬워도, 역사학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학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재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적 사건을 통해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움직임을 배우는 것인데, 이를 놓쳐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이나 한일병합이 마치 메이지 유신 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는 시각은,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피해야 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Q

일본은 메이지 유신 150년을 기념하여 NHK에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를 주인공으로 한 대하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각 국가마다 전환기 인물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일본이 이 시점에서 사이고 다카모리를 부각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A

사이고 다카모리는 일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 인물 중 하나라서 아마 여러 차례 드라마나 영화로 다루었을 겁니다. 게다가 메이지 유신 150년을 기념하는 대하 드라마라고 하니, 그를 재조명하는 것에 대해 새삼 문제 삼을 것은 없어 보입니다.


사이고 다카모리가 여러 가지로 평가받을 점이 많은 인물이지만, 결국 일본 사람들은 그를 ‘일본 사무라이 정신의 체현자(體現者)’로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메이지 유신의 주역 중 한 명이고 특히나 군사 부문을 총괄했던 사람인데, 그런 그의 사무라이 정신을 드라마에서 부각시켜 일본 국민들에게 특정한 영향을 주려는 것은 아닌가 우려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동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는 나폴리의 현인


Q

올해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를 저술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목민심서》 등이 저술된 19세기 중후반은 한국 역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A

19세기 중후반 조선은 멀쩡한 사회가 어떻게 순식간에 쇠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케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8세기 말까지만 해도 조선은 세계사적으로 비교했을 때 그리 크게 뒤지는 나라가 아니었거든요. 정치·사회, 인구, 농업 수준 등을 후진적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선의 사회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환곡제도가 망가지면서 사회가 크게 흔들렸고, 세도 정치로 엘리트의 경쟁과 통합도 약화되었던 것 같아요. 이로 인해 특히 서울과 지방 엘리트 간의 정치적 컨센서스가 크게 후퇴한 듯합니다. 또 사회 엘리트의 심각한 부정부패는 민란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당시 쓰인 《여유당전서》도 20세기 이후에나 출간되어 읽히고 주목받았으니 안타까운 일이죠. 19세기 중후반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판받아야 할 시기입니다.

 

Q

최근 몇 년간 일본 도쿄대(東京大), 와세다대(田大), 중국 푸단대(復旦大)와 공동으로··일 청년 역사가 세미나를 개최해오셨는데, 이를 통해 거둔 성과나 소회가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A

이 세미나는 언어 장벽 때문에 해외 교류에 한계를 느끼는 각국의 자국사 연구자를 모으자는 것과, 40세 전후 젊은 학자들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두 가지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한·중·일에서 한 차례씩 세미나를 개최했고, 이와 관련하여 제출된 70여 편의 논문 중 나라마다 8편씩 총 24편을 선정하여 도쿄대 출판부에서 일본판, 서울대 출판부에서 한국판 논문집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 집권 이래 대외 교류를 제한하는 분위기라 진행이 조금 더디기는 하지만, 중국 학자들께서 노력하고 계시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미나 진행은 재정적인 문제로 잠정 중단된 상황인데, 재단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Q

최근 언론 칼럼 등을 통해일본에 관한 우리 사회의 공부와 식견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에서 하신 말씀인지요?

 

A

우리는 일본에 대한 관심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데, 일본에 대한 공부는 지나치게 적습니다. 원래 관심이 많으면 공부와 시간을 많이 투자하기 마련인데,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은 그 관심과 노력 사이의 간극이 크죠. 영어가 중시되면서 일본어는 변방의 언어로 밀려난 지 오래고, 일본은 그저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으로 접하는 나라가 되었어요. 그중에서도 일본에 대해 가장 모르는 것은 역사 분야인 것 같습니다. 공부하지 않으니까 점점 더 생경한 분야가 되어가고 있어요. 하지만 일본이 두려워하는 것은 목소리 큰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나 높은 식견을 가진 한국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Q

지금 한·· 3국은 과거 역사를 각국의신新민족주의와 연계하여 배타적이고 자국 중심적인 역사 서술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일이 불행한 과거의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인 동북아 평화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A

역사 문제는 첫째 정치화되어서는 안 되고, 둘째 대중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나 다 알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전문적인 영역에 속하는 문제들이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양국의 집단이 모여서 현명한 결론을 내고, 그것을 책임 있는 정치가들이 실현하는 프로세스를 거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일차적인 책임은 일본의 자세에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국내에서도 표밭에 신경 쓰는 정치인과 높은 시청률이 필요한 언론의 포로가 되었다고 할까요? 해결이 안 될수록 양국 정치 지도자의 지지율과 언론사 시청률이 올라가는 구조가 되어 버렸으니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겠습니까? 그만큼 굉장히 어려운 국면에 진입했고,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는 사실상 학자들이 해야 할, 혹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학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조사·연구해서 정확한 이야기를 해도, 그 결과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정치인도 언론도 받아들이지를 않거든요. 관련 정책을 입안할 때도 학자와 같은 전문가의 의견을 묻기보다는 여론조사나 몇몇 비전문가 측근의 이야기만으로 결정하니까요. 현재 한국의 대일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 중 일본어를 하거나, 일본 경험이 많은 전문가가 드물다는 점도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Q

한·일 간 역사 갈등은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까요? 재단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도 당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전문가와 관련 정보를 가진 곳이 동북아역사재단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보다 더 정통한 연구자와 책임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엄선하여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결론이 혹 대중의 입맛에 흡족하지 않더라도 이를 밀고 나갈 수 있도록 재단이 막아주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재단이 해야 할 일이 많겠죠. 국회나 정부의 영향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재단은 기본적으로 연구자가 모인 곳이니만큼 대중의 바람, 정치가의 의도에 흔들리지 않고 해법을 모색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끝으로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고, 어떤 시각으로 일본을 바라보면 좋을지 이야기해 주십시오.

 

A

일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무시해도 우리는 일본을 무시하면 안 되고,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존경해도 우리가 존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본은 우리에게 그런 양면성이 있는 존재죠.


우리 국력이 조금 신장했다고 일본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과거 조선 제일의 일본통이었던 신숙주 선생이 《해동제국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본과 우호 관계를 잃지 말라, 그러나 일본을 경계해야 한다.” 저는 이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중국을 상대할 때도 일본을 지렛대로 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굉장히 다를 겁니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를 새로 모색해가야 할 위치에 있는데, 그러려면 일본과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본도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이고, 몇 차례 행해진 일본의 사과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드는 망언들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해주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