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사로 근무해 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가 무겁게 느껴지고 전문성 신장에 대한 욕구도 커져갔다. 그러다 알게 된 동북아역사재단의 동아시아사 교원연수는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교과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교수방법을 고민하게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2017년 하반기 동아시아사 교원 연수는 11월 4일부터 12월 2일까지 5주간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었다. 제1강 ‘동아시아사를 통한 역사 인식의 확장’에서 제10강 ‘동아시아 시각으로 접근하는 역사수업’까지 총 30차시로 구성되었으며, 3주째 토요일에는 역사 유적지 현장 답사를 진행하였다. 이번 연수에서는 ‘중국 정사의 편찬과 외국전의 이해’, ‘중국 교과서를 통해 본 중국 근대사’ 등 중국사에 대한 내용 구성의 확대, ‘일본 근대사와 한·일 관계 - 동아시아 해역을 중심으로’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세부 영역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통한 시대사 접근 등이 눈에 띄었다.
동북아 평화 실현을 위한 역사 수업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 있게 들었던 강의는 ‘동아시아사를 통한 역사 인식의 확장’과 ‘고대사를 보는 시각과 쟁점’, ‘동아시아 시각으로 접근하는 역사수업’이었다. 자국가·자민족 중심의 역사서술 및 역사교육에 대한 한계의 인식과 성찰이 이미 많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대부분 근대 이후의 역사에 머물러 있고, 전근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강한 제국에 대한 미련을 감추지 못하는 이중적 잣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역학의 변동 속에서 세력 확장을 위한 전쟁은 필연적인가? 침략 전쟁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군비확장을 통한 무장평화론에 기반하여 강대국의 대열에 속하는 것인가?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 전쟁을 막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책임져 나갈 학생들에게 어떤 역사교육이 진행되어야 하며, 그 속에서 역사교사로서 역사인식의 확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등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는 계기를 던져주었다.
파주에서 동북 9성을 다시 보다
식민지 시기 근대 문화유산, 종묘를 통한 한국의 유교 문화 등 이전의 역사 유적지 현장 답사가 서울 중심으로 이뤄진 반면, 이번 연수는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파주에서 진행되었다. 임진강 하나를 두고 서로에게 총을 겨눈 분단의 역사가 뼈저리게 느껴졌던 오두산 통일전망대, 문학·예술을 매개로 공동체 구현을 실현해가고 있는 헤이리 출판마을의 이상과 현실, 율곡을 통해 조선의 유교문화를 살필 수 있었던 자운서원, 윤관 묘에서 살펴본 200년 넘게 지속된 산송 등 모두가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되지만, 개인적으로는 특히 역사교과서 속 윤관 장군에 의해 개척된 동북 9성을 재인식하게 된 윤관 묘 방문이 인상적이었다. 동북 9성을 점령하기 이전 여진족 세력의 실상, 국력이 총동원된 약 17만 명 규모의 별무반 편성 및 기습적 공격 단행, 9성 유지를 위해 진행된 6만 9천 호의 사민 정책 등은 아직도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승자의 관점을 극복하지 못한 채 전근대를 인식하는 스스로의 한계를 일깨워주었다. 이번 현장 답사와 연수 자료를 통해 주변국의 침략만 받던 고려의 성공적인 정복 정책으로 평가된 동북 9성을 다시 보게 되었으며, 사민 정책이 미쳤을 영향에 대해 정책을 설계·집행한 지배층이 아닌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었다.
역사교사들의 토론과 공감의 장으로 더욱 확대되어야
‘2009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동아시아사’가 역사과의 선택 교과로 채택되면서 동아시아사 교육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해 새로운 길을 제시한 재단의 동아시아사 교원연수는 끊임없이 역사교사로서의 성찰을 자극하며 교과 내용에 대한 전문성을 신장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많은 역사교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수업방법을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는 장이 되어왔다. 앞으로도 계속 재단의 지원과 관심 속에 동아시아사 교원연수가 확대되기를 바라며 한두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우선, 동아시아사를 주제로 한 교원연수임에도 여전히 동북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 역사에 한정되어 내용이 구성되고 있어 아쉽다. 이미 세계화·다문화 현상은 우리 사회 곳곳을 파고들었으며 교육 현장에서는 다양한 국가·민족 출신의 학생들을 마주하게 된다. 동아시아사라는 교과의 출발이 유럽사 중심의 세계사, 중국사 중심의 아시아사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면, 몽골사, 베트남사, 필리핀사 등 아시아의 다양한 국가·민족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구성이 포함되면 좋겠다. 더불어 한·중·일 공동역사교과서 편찬의 역사적 경험을 넘어 평화로운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위한 미래 세대의 교육을 생각한다면 왜구·임진왜란으로부터 출발하여 식민지배로 완성되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 역사를 평화적 관점에서 어떻게 역사교육의 현실로 녹여낼 수 있을지 정면으로 다뤄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제안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이번 연수가 서울에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산, 광주, 대구 등에서 빠짐없이 참여한 선생님들, 학계의 연구 성과를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문제의식을 던져주며 함께하고자 한 강사님들의 열정이 더해져 이번 2017년 하반기 동아시아 교원연수가 빛났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연수의 전 일정에서 구성원들을 배려해 준 동북아역사재단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재단의 동아시아사 교원연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관심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