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818년 무술년, 제10대 선왕(宣王) 재위 후 해동성국으로 융숭한 발전을 이루었다. 염주성은 신라와 일본 등으로 통하는 발해의 동쪽 출입구였으니 자연히 이 곳에 다양한 동아시아 문화가 집결하여 발해를 더욱 역동적으로 발전시키는 창구로 기능했다. 염주성에 서면 한민족사의 어제와 오늘, 내일이 보이는 듯하다. 이제 염주성은 흩어진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가녀린 산실이 되어 있다. 발해 멸망 이후 또 몇 겁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 발해 유적은 중국, 러시아, 북한 3국의 영역에서 관리되고 있다. 발해인들이 직접 남긴 발해의 기록은 아직 없기 때문에 유적 발굴 조사는 그 한계를 비보(裨補)해 준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발굴할 수 있는 지역은 오직 러시아의 영토인 연해주만 가능한 상태여서 염주성의 발굴은 새삼 발해사 연구에 보배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염주성이 문헌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1980년 러시아 학자들의 발굴 이후였다. 그래서 이 책은 러시아 학자들의 염주성 초기 발굴 성과부터 최근까지의 성과를 종합하여 다양한 사진 등 시각 자료를 포함하여 염주성의 역사고고학적 발전 과정을 소개하였다. 본문에서 다루는 염주성의 이야기는 재단과 러시아과학원 극동역사고고민족학연구소 크라스키노성 발굴단원들이 함께 엮은 것이다. 집필에는 필자 외에 러시아 극동역사고고민족학연구소의 E.I.겔만, A.L.이블리에프, E.V.아스타셴코바, Ya.E.삐스까료바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필자와 1992년 이래 줄곧 발굴과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 러시아 학자들이다. 책의 서두에는 지난 20여 년간 양측 공동발굴의 진행과 의의를 다루고, 주제별로는 염주성의 고고학적 구조와 성격, 세부적으로는 그동안 발굴 성과를 소주제로 나누어 소개하였다.
염주성 발굴의 회고와 전망
제1장 염주성의 역사고고학 개관은 발해 염주성 발굴의 전개와 방향, 역사적 관점에서 본 연해주 크라스키노성, 크라스키노성의 축성 등으로 구성했다. 이 장을 통해 염주성이 언제 재발견되었으며 그동안 발굴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를 엿볼 수 있다. 먼저 ‘염주성 발굴의 전개와 방향’에서는 염주성의 발굴 성격을 1980년대 이후 1990년대까지 제1기, 2000년대까지 제2기, 그리고 현재까지를 제3기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이어 ‘역사적 관점에서 본 연해주의 크라스키노성’은 염주성이 문헌에 남아 있는 동경용원부 산하의 주라는 점과, 이후 이 성의 재발견과 발굴 조사의 역사를 개괄하였다. ‘크라스키노성의 축성’은 치와 옹성들의 축조와 증축 등이 고구려인들의 경험과 전통을 이어받은 건축방식임을 설명한다.
2장부터는 염주성 발굴 성과를 세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먼저 제2장 ‘염주성 발굴의 여명’은 성내 절터, 주거지와 건축물, 그리고 염주성 발해인의 수공업을 살펴보았다. ‘크라스키노 절터’에서는 러시아 학자들의 1980년 발굴 성과를 시작으로 절터와 관련 유물들을 정리하였고, ‘주거지와 건축물’에서는 성내 주거지를 통해 발해의 온돌문화를 상세히 설명하여 주었다. ‘수공업’은 염주성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주변 지역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였음을 정리하여 주었다.
염주성 발해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제1장과 제2장이 염주성 발굴의 여명기라면 제3장과 제4장은 염주성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였는지를 이야기한다. 먼저 제3장은 놀이문화를 표제로 들었는데 ‘발해 표현 및 장식예술’은 발해인이 어떻게 생각을 표현하고 그것을 유물에 반영하였는가를 본 것이다. 염주성에서 전개한 동서 문물의 조화는 유물에 대한 다양한 표현과 장식으로 당시 해동성국 발해 문화의 융숭을 설명해 준다. 이어서 ‘말갈요소’를 설정하였는데 이는 발해 유적에서 보이는 말갈의 전통을 염주성에서 찾아 정리한 것이다. 염주성의 고고발굴을 통해 보면 발해가 이들 말갈문화를 수용하여 중층적 발전을 이루어 갔음을 알 수 있다. ‘발해의 놀이문화’는 2004년 기와벽실 유구에서 출토한 고누판과 고누알, 축국와 격구 등을 통해 발해인의 놀이문화를 추적하여 보았다. 제4장은 염주성의 생활과 교역으로, 해동성국 발해의 동쪽 관문인 염주성은 그야말로 동서 문물 교류의 허브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먼저 ‘크라스키노성 주민들의 생활’은 염주성 출토 유물들을 고생태학적 분석을 통해 살펴본 것이다. 이어 ‘염주성의 농기구 등’은 염주성에서 출토된 보습, 낫, 삽 등의 농기구, 낚시 바늘, 작살, 어망추 등의 어구, 창, 창고달이, 화살촉, 찰갑 등의 사냥도구 혹은 무기, 도끼, 톱, 정, 끌 혹은 자귀, 손칼 등의 연장, 차관과 비녀못 등의 수레부속품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염주성의 대외 교류’는 염주성 출토 유물들 자체가 발해의 활발했던 대외교류를 증명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서역-북방, 당, 통일신라 관련 유물들은 염주성이 육로와 해로의 연결거점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산실, 발해 염주성
필자들이 재구성한 염주성의 발굴 성과는 염주성 뿐만 아니라 발해인의 생활과 문화 복원에 대한 최초의 공동 집필로서 발해사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염주성 발굴을 통해 다양하게 출토한 유물들은 성 존속 기간 동안 주민들의 염주성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이루었으며 동아시아 문화 허브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음을 보여준다. 이 기획물은 발해 염주성에 대한 역사와 고고학적 이해를 넓혀가는 첫 걸음이다. 이를 계기로 부족한 발해사 연구를 보완하고 동아시아에서 염주성의 위상을 높여가는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