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인터뷰
능동적으로 국제 정세를 헤쳐 나갔던 고려를 기억할 때
  • 이장욱 (교류홍보실 실장)

능동적으로 국제 정세를 헤쳐 나갔던 고려를 기억할 때


2018년은 고려 건국 1,100주년인 동시에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귀주대첩 1,000주년이 되는 해다. 이에 다시금 동아시아 역사문제 연구를 생각하며 오랜 시간 고려사를 연구해 온 안병우 한신대 명예교수이자 재단 자문위원장에게 동북아 정세와 재단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조언을 들어보았다

    

대담 : 이장욱 (교류홍보실 실장)

 

 

안병우 재단 자문위원장, 한신대 명예교수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7년 퇴임했다. 최근 국가기록원 국가기록관리혁신TF 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신대 명예교수, 재단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고려 전기의 재정 구조, 북한의 한국사 인식 1, 2(공저), 14세기 고려의 정치와 사회(공저), 역대 중국의 판도 형성과 변강(공저) 등이 있다.

 

 

능동적으로 국제 정세를 헤쳐 나갔던 고려를 기억할 때


Q1. 먼저 교수님 근황이 궁금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또 최근 관심을 갖고 계신 연구나 참여하는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안병우 지난해 2월 학교에서 퇴직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33년간 재직한 학교를 나와 시간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그렇지는 못하네요. 대학원 강의도 해야 하고, 시민단체 일도 계속하고 있고요. 작년 하반기에는 국가기록관리혁신TF를 맡아서 그동안의 국가 기록관리에 나타난 폐단을 조사하고 혁신 방안을 마련하는 일을 했습니다.

 

Q2. 올해 고려 건국 1,100주년과 관련, 관련 학회에서 특별한 행사나 연구 계획이 있을까요? 주요 주제나 문제의식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안병우 현재 한국중세사학회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행사와 연구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고려사에 관한 단행본 편찬, 국제 학술회의와 남북공동학술회의, 순회 강연, 그리고 고려사 연구에 기초가 되는 사료 정리와 100년간의 고려사 연구를 집대성하는 고려사대계편찬 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이 대고려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으면서 갖게 되는 문제의식은 분열과 통일그리고 다양성과 개방성의 존중이라고 봅니다. 10세기 초 한반도가 분열된 상태에서 건국한 고려는 분열을 극복하고 통일을 달성하였고, 정치와 사회운영의 기본으로 다양성과 개방성을 존중한 나라였습니다. 936년 이래 통일국가를 유지해온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지 7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통일의 길은 요원해보이고, 오히려 전쟁의 위협이 고조된 상황에서 1,100년 전 건국된 고려가 통일을 하기 위해 폈던 정책과 노력을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남북 사이는 물론이고 개방성이 대단히 높아지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민주사회인 한국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대단히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현상이 공존하고 있으며 심지어 혐오 증상도 퍼져 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문화와 생각의 다양함을 인정하고 외국이나 다른 계층에게 개방의 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편성하고 운영한 고려에서 우리가 음미해야 할 대목이라고 봅니다.

 

Q3. 고려는 다원적 국제질서와 일원적 국제질서를 모두 경험하며 개방적·능동적으로 외교현안에 대처한 시대였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교훈은 무엇일까요?

    

안병우 고려 건국 1,100주년이 갖는 의미는 몇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먼저 고려라는 나라가 당시의 환경에서 보면 변방에서 귀족이 아닌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건국한 나라였습니다. 지방의 촌놈들이 나라를 세우고 새로운 지배층으로 부상함으로써 지배층의 교체를 가져온 것이죠. 고려는 분열된 한반도를 무력과 외교력을 적절히 활용하여 다시 통일하는 능력을 보여주었고, 통일 후에는 후백제와 신라의 지배층과 백성을 차별하지 않고 포섭·등용하여 한 단계 진전된 사회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역사상 처음으로 과거제를 도입하여 능력 중심의 관료 등용제도를 정착시켰고, 지방 유력층의 자제들에게 과거를 통해 중앙 관료로 진출하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개방적인 태도는 불교와 유학, 도교 등 다양한 사상과 문화가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며 공존하는 현상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내적인 개방성과 외국인·외국의 선진문물을 과감하게 등용하고 수용하는 대외적 개방성을 동시에 발휘하여 오랫동안 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토대로 삼았습니다. 외교적으로도 고려는 자신이 동아시아의 중심의 하나라는 의식을 갖고 외국을 대하였고, 침략전쟁에는 과감하게 항전하면서도 가능하면 전쟁을 피하려는 정책을 실행하였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Q4. 근래 한국은 북핵문제 대응을 둘러싼 관점과 해법의 차이로 다방면에 걸쳐 한·중 관계 발전이 순조롭지 못한 현상에 직면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1,000여 년 전 고려가 요와 북송, 금과 남송 사이에서 곤란을 겪었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안병우 고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된 것은 거란이나 여진, 몽골 같은 북방지역의 종족이나 국가들이었습니다. 다행이랄까 당시 중국은 분열되어 있었고, 고려는 이러한 국제정세를 잘 활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거란은 송 정복을 앞두고 고려를 침략하였고, 몽골과 홍건적도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고려는 침략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늘 교섭을 통해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회복하려는 방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국제질서 속에서 거란이나 금의 책봉을 받고 조공을 하면서도 능동적으로 과감하게 송과 교류하면서 필요한 문화를 수용하였고요.


지금 우리의 사정은 고려 때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합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운신의 폭이 좁아진데다 4대 강국의 이익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봐야겠지요. 주변 강국들의 입장과 이익을 적절히 고려하면서 우리의 외교적 목표, 나아가 민족사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고려가 다른 나라보다 국력이 강해서 위기를 극복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무력으로 보면 거란이나 여진이 더 강했지요. 고려는 거란이나 여진의 위협이 노골화되면 이를 피하기 위해 송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였고, 국제 정세가 전환기에 접어들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실리를 취하였습니다. 어느 한 나라에 완전히 의지하지 않는 태도, 정확하고 신속한 정세 판단과 과감한 행동, 무엇보다도 국제 정세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능동적으로 헤쳐 나가는 자세를 견지하였던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Q5. 최근 중국과 일본 학계에서 자국의 이익과 연계하여 동북유라시아이론이나 해양사같이 동아시아 공간을 다루는 역사 연구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 고려시대가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활발히 해양과 북방에 대한 정책을 취했는데 우리 학계 역시 이러한 연구가 필요할까요?

    

안병우 한 나라나 민족의 역사는 그 자체만으로 완결적이지 못합니다. 어느 시기든 다른 나라와 교류하며 살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지요. 그래서 역사를 보거나 가르칠 때도 일국사의 관점에만 매몰되지 말고 인근 지역의 역사와 연관시켜 살펴봐야 합니다. ‘교류와 연관의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보는 동아시아적 관점이 요청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한 지향은 재단에서 잘 알고 실천하려는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지향을 좀 더 구체화하는 것이 재단의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방향으로 연구를 전환하려면 차분히 연구자를 양성해야 할 것인데, 우리의 연구자 양성 구조에서는 쉽지 않은 한계가 있을 겁니다. 이를 돌파하는 일에도 재단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리라고 봅니다.

 

Q6. 오랫동안 남북 학술교류에 적극 참여해오셨는데 기존의 남북 학술교류 성과 중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안병우 안타깝게도 지금은 중단되어 있지만 남북 간 다양한 학술교류가 있었지요.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 편찬사업과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조사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만월대 발굴은 2007년부터 201511월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서부건축군 1만 평을 대상으로 하였는데, 고려시대의 궁궐 유구를 확인하고 2만여 점 이상의 유물을 발굴하는 성과를 거두었어요. 금속활자도 찾았지요.

 

Q7. 최근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분위기에서 향후 학술교류의 방향과 전망은 어떠할 거라고 보시는지요? 개성과 강화도 관련 학술교류도 궁금합니다.

    

안병우  남북 정세의 변화에 따라 학술교류도 차츰 풀릴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사실 인도적 지원과 학술교류 특히 역사학과 고고학 분야의 교류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분야예요. 중단된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과 만월대 공동발굴조사가 우선 재개될 수 있을 것이고, 마침 올해가 고려 건국 1,100주년이니까 남북이 공동행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희망해봅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만월대 발굴 성과를 보여주는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북한에도 공동으로 하자는 제안을 한 상태입니다. 공동전시회가 되면 첫 교류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현재 인천시에서도 강화도를 중심으로 남북 교류를 추진하고 있는데, 개성과 연결하여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화도에 있는 고려시기의 성터와 고분 등은 개성역사지구와 함께 묶여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가 등재하는 방법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Q8. 과거 독일의 전례를 참고하자면, 향후 우리나라가 평화적인 남북통일을 위해 북한과 문화적·학술적 교류로 차이점을 극복하고 상호 이해하는 풍토가 이루어져야 할텐데 이와 관련해 재단이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안병우 재단의 이름이 동북아역사재단이잖아요? 당연히 동북아의 일부인 북한의 역사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남북 학술교류, 특히 역사학 교류를 추진해야 합니다. 북한을 빼놓고 동북아 역사를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사실 요즘 북한의 역사학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어요. 아마 특출한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은데, 북한 역사와 역사학, 역사교육은 전문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존이구동(存異求同)의 자세로 차이는 밝히면서도 교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교류를 시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차이를 반드시, 빨리 극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차이를 인정하는 자세도 필요하고요. 다만 학술적으로 열어놓고 논의하는 광장이 필요하고, 재단이 그러한 광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서로를 용인할 수 있는 수준으로 차이를 좁히는 게 좋지 않을까요.

 

Q9. 재단은 우리의 입장에서 한국 외교를 이해하고, 역사적 전환기에 국민들이 진취적 역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한국 외교사 연구, 발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고려가 국가 이익의 입장에서 다원적 외교를 전개할 수 있었던 바탕은 무엇이고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일까요?

    

안병우 어느 나라나 국익을 앞세우고 외교를 합니다. 그런데 정작 국익이라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국익은 결국 국민의 이익 아니겠어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고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 민족공동체의 자존과 자결권, 고유한 문화를 지켜나가는 것이 국민 이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국익은 때로 특정한 세력의 이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외교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만 할 수 없고, 때로는 힘에 의해 강요당하거나 무력으로 침략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도 고려는왕실뿐 아니라 국민을 지키면서 문화를 발전시키려는 자세로 외교를 하려고 했고, 그러한 자세가 필요한 나라와 두루 교류하는 다원적 외교를 추진하는 바탕이 되었다고 봅니다.


지금도 한반도는 어려운 사정에 놓여 있습니다.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가진 나라가 많고, 각자의 국익에 따라 한반도정책을 수립·추진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운신의 폭이 넓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개척해나가야 합니다. 주변 열강의 지지를 얻으면서 한반도 정세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며 마침내 통일에 이르는 장기적인 통일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이것은 정파를 떠나 국민적 동의에 기초해야 합니다. 고려가 거란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서희나 강감찬 같은 뛰어난 인물의 활약 때문이기도 하지만 백성들의 강력한 항전 의지가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몽골과의 전쟁에서는 백성과 무인정권의 지배층이 분열된 상태에서 싸웠고, 결국 승리하지 못했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국익이라고 판단하는 외교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Q10. 마지막으로 재단 자문위원장으로서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재단이 그동안 해온 역할에 대한 평가와 제언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병우 재단은 설립할 때부터 고유한 목적과 미션이 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역사 문제에 관한 연구와 정책의 수립이 핵심이겠지요. 재단은 그동안 해야 할 일을 많이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마다 지향하는 외교 방향이 있기 때문에 일정하게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연구와 정책 형성도 해야겠지만 기본적인 방향은 재단이 확립해야 하는데, 그러한 면에서는 다소 아쉬움도 있습니다. 현존하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역사 갈등 본질에 접근하는 연구 수행과 이에 바탕하여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장기 로드맵의 수립, 실천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