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7일, 새로운 NHK 대하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제목은 ‘세고 동(西郷どん)’. 이른바 메이지유신 3걸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가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는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맞이하는 2018년을 염두에 두고 2016년 9월부터 준비되었다. 원작은 하야시 마리코(林真理子)의 소설 《세고 동(西郷どん)》이다. NHK 대하드라마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역사학의 일반적 평가를 고수하지 않고 해당 인물의 인간적 매력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냄으로써 대중적으로 새로운 인물상을 만들어내는 NHK의 대표적 문화콘텐츠이다. 마치 한국의 KBS 대하드라마가 그러한 것처럼.
근대 일본 최초의 육군대장 사이고 다카모리
그렇다면 NHK 대하드라마 ‘세고 동’이 그려낼 새로운 사이고의 모습은 무엇일까. 드라마 홈페이지에 따르면 사이고 다카모리는 “‘모든 민(民)이 행복하게 살아야 일본국은 강해진다’고 믿고, 사람을・고향을・나라를・민을 사랑하며 보답을 바라지 않고 사랑을 주기만 한 남자.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친근함을 담아 ‘세고 동’이라 불렀던 인물”로 그려질 예정이다. 이는 평상복 차림에 애견을 데리고 걷는 우에노공원의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을 연상시킨다. 여기에는 1873년 정한론 정변 당시 앞장서서 조선 침략을 주장하였던 근대 일본 최초의 육군원수이자 육군대장이었던 사이고의 모습은 없다. 그러나 1898년 우에노공원에 평상복 차림의 사이고 동상이 세워진 이유는 비록 ‘대일본제국헌법’ 발포에 따른 사면 조치로 ‘역도(逆徒)’라는 오명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천황에게 반기를 든 세이난(西南) 전쟁을 일으킨 자에게 당시의 정장인 군복을 입힐 수 없다는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 ‘평상복’의 사이고는 다른 메이지유신 관련 인물과 달리 근대 일본을 상징하는 ‘군복’이 주는 권위적이거나 국가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서민적 이미지를 전유하게 되었다. 이제 그렇게 만들어진 ‘평상복’의 사이고가 홈페이지의 메인을 장식하는 NHK 대하드라마 ‘세고 동’은 사이고가 ‘서민’을 위해 꿈꾼 ‘강한 일본국’이 무엇인지 그려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에도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초기 일본에서 등장한 조선 침략론이었던 정한론을, 다시 말해서 ‘군복’의 사이고를 기억하는 한국인에게는 사이고를 통해서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기억’하려는 NHK 대하드라마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마치 ‘강한 일본’을 내세우며 전쟁을 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려는 양복 차림의 아베 총리를 보는 듯하기에.
메이지유신과 사이고를 기억하려는 가고시마시
현재 NHK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사이고가 선택된 것을 가장 반기는 곳은 그의 고향인 가고시마시(鹿児島市)일 것이다. 일찍부터 적극적으로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가고시마시가 제시하는 ‘메이지유신 150주년’의 의미는 시내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JR 가고시마 중앙역을 나오면 중앙 광장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젊은 사쓰마의 군상(1982년 제작)’ 동상 뒤쪽으로 “사쓰마가 근대 일본을 만들었다”는 슬로건을 적은 시내버스를 볼 수 있다. 역에서 왼쪽으로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보이는 고쓰키(甲突) 강변에 조성된 역사거리 ‘유신 후루사토[고향]의 길’에는 “유신과 마주하는 시간 여행”을 내건 ‘유신후루사토관(維新ふるさと館)’의 위치를 알리는 현수막도 줄지어 걸려있다. 참고로 유신후루사토관에서 5분 거리에는 사이고 다카모리 탄생지가 보존되어 있다.
가고시마시가 제시하는 ‘메이지유신 150주년’의 백미는 국도 교차로마다 설치된 조형물이다. 이것은 에도 막부 말기부터 가고시마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설명하는 안내문과 관계 인물 동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시작은 1863년 사쓰마・영국 전쟁이다. 이 전쟁은 사이고를 비롯한 사쓰마의 하급무사들이 기존의 ‘양이’를 철회하고 ‘개국’으로 정치적 노선을 전환한 계기로 평가받는다. 다시 말해서 근대 일본은 1853년 페리가 내항한 이후가 아니라 1853년 사쓰마・영국 전쟁에서 패배한 후 사쓰마의 하급무사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메이지유신 150주년’ 기억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야마구치현(山口県) 하기시(萩市, 과거 조슈번[長州藩])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근대 일본의 완성을 서양에게 패배하지 않는 ‘강한 일본국’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1937년에 가고시마시립미술관 옆 교차로에 조성된 자그마한 동산에 세워진 또 하나의 사이고 동상이다. 여기에서 사이고는 우에노공원의 동상과 달리 육군대장의 군복 차림에 완고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차렷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마치 동상이 세워진 해에 시작된 중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확신하는 듯. 현재 가고시마시는 이곳에 ‘사이고 동상 촬영 광장’을 조성하여 이른바 ‘사이고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2018년 현재 일본은, 아베 정권이 준비하는 ‘메이지유신 150주년’ 기념행사 그리고 이에 대응하여 근대 일본의 명암을 객관적으로 재고하려는 역사학계의 움직임들이 준비되고 있다. 하지만 점차 ‘강한 일본국’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고 있는 ‘일상의 보수화’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학계의 공식적인 움직임 못지않게 대중매체와 지역사회에서 나타나는 메이지유신의 기억 방식도 검토해야만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중심에 불러 세워진 사이고 다카모리가 과연 평상복 차림일지 아니면 군복 차림일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은 우리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