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正史)에서 ‘중국’과 구별하고 타자(他者)로 인식해온 다른 지역, 종족, 국가와 관련된 열전(列傳)을 추려 ‘외국전(外國傳)’으로 정의하고, 이 외국전들이 기술하는 ‘세계’의 모습을 드러내 그 전체상을 그려보고자 기획하였다. 여기에서 세계란 ‘지구상의 모든 나라 또는 인류 사회 전체’라는 일반적 의미가 아니라 중국의 각 왕조가 시대에 따라 관계를 맺어온 지역, 종족, 국가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로서의 세계다.
중국 정사 외국전 이해에 필요한 지침서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를 저술한 이래 중국의 역대 왕조는 기전체(紀傳體) 형식으로 이전 왕조에 대한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이 가운데 국가 권력으로부터 공인받은 사서를 특별히 ‘정사’로 분류하고 모든 종류의 사서 중 첫째 또는 최고라는 권위를 부여하였다. 시대가 바뀌고 왕조가 교체되어 정사 편찬이 거듭되면서 청대(淸代)에 이르러서는 《사기》부터 《명사(明史)》까지 ‘24사(史)’가 공인되었다. 일반적으로 오늘날 이 24사를 중국 정사의 총칭으로 인정하고 있다.
《사기》를 비롯한 이들 정사에는 기전체의 형식에 따라 열전(列傳)이라는 항목을 두었고 여기에 외국전을 배열하였다. 중국 정사 24사 가운데 《진서(陳書)》와 《북제서(北齊書)》를 제외한 22개 정사에는 모두 외국전이 편제되어 있다. 외국전의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한대(漢代)부터 명대(明代)까지 중국의 왕조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인지하고 관계를 맺어온 다른 나라와 지역 및 종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따라서 외국전은 전근대 한중관계를 포함하여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더없이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문제는 외국전 자체의 방대한 분량과 원문 해독의 난해함 때문에 일반 시민은 물론 전문 연구자도 외국전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재단은 외국전 전체에 대한 역주를 기획하고 2007 ~2014년까지 8년간 두 단계로 나누어 작업을 진행하였다. 1차 단계에서는 《사기》부터 《신오대사(新五代史)》까지 17개 정사의 외국전을, 2차 단계에서는 《송사(宋史)》부터 《명사》까지 5개 정사의 외국전을 역주하였다. 그 결과는 총 29권으로 완간되었다. 그리고 외국전 역주서의 완간과 더불어 이 책이 기획되었는데 중국 정사 외국전은 역주서라 할지라도 그 내용이 시공간적으로 광범위하고 방대할 뿐만 아니라 29권의 책으로 나뉘어 있어 이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외국전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든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외국전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들 내용과 의미를 종합적으로 설명해주는 지침서가 있으면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 책이 기획되고 집필되었다.
각 시대별 집필진과 서술 내용 및 범위
이 책은 그동안 중국 정사 외국전 역주 작업에 참여한 연구자들이 집필하였다. 그것은 그간 역주를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을 잘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 시대 정사는 외국전마다 특징을 보이면서도 계기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시기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나름 큰 틀에서 보이는 특징을 기준으로 몇 개의 장으로 나누어 집필하였다.
먼저 외국전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돕는 서문 격의 도론 <중국 정사 외국전에 대한 이해>는 명청사를 전공하면서 2차 단계 《명사》 외국전의 역주 책임을 맡은 전북대 역사교육과 송정수 교수가 집필하였다. 다음으로 사관(史館)을 설치하여 정사를 찬수하게 된 당대(唐代)를 기준으로 그 이전 사찬(私撰)으로 이루어진 《사기》,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의 외국전을 1장 <《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외국전이 그리는 세계>로 묶었고, 이에 대한 집필은 중국 고대 소수민족을 전공하면서 1차 단계 외국전 역주에 참여한 서강대 디지털역사연구소 정면 연구교수가 담당하였다.
당대 이후 관찬(官撰)으로 이루어진 정사 가운데 한족과 이민족 정권이 병립하면서 나름의 특징을 보이는 《진서(晉書)》 및 남북조시대의 여러 정사와 《수서(隋書)》의 외국전은 2장 <양진남북조·수대의 정사 외국전과 그 세계>로 묶었는데, 이는 남북조시대를 전공하고 1차 단계 외국전 역주의 책임을 맡은 전 연세대 사학과 김유철 교수가 집필하였다. 세계 제국을 형성한 당의 천하 관념을 뚜렷이 반영하면서 아울러 현실 국제관계의 실상도 배제하지 않은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의 외국전을 《구오대사(舊五代史)》, 《신오대사》의 외국전과 함께 3장 <당·오대의 정사 외국전과 그 세계>로 묶었다. 이 부분은 당대사를 전공하면서 1·2차 단계 외국전 역주 작업을 주관한 김정희가 담당하였다.
북방민족이 세운 국가와 병존하면서 다원화된 국제질서가 형성되어 ‘외국전’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사용되고, 현실적인 상태에 적응한 새로운 서술방식으로 변화가 이루어진 《송사(宋史)》 이하 《요사(遼史)》, 《금사(金史)》, 《원사(元史)》의 외국전은 4장 <《송사》·《요사》·《금사》·《원사》 외국전이 그리는 세계>로 묶고, 송대사를 전공하면서 2차 단계 이들 정사 외국전의 역주 책임을 맡은 경기대 사학과 박지훈 교수가 집필하였다. 마지막으로 《송사》 외국전의 서술방식을 이어받으면서도 방대한 지역의 나라와 종족을 서술하고 새롭게 〈서역전(西域傳)〉과 〈토사전(土司傳)〉을 두어 서술하는 《명사》 외국전은 5장 <《명사》 외국전이 그리는 세계>로 묶고, 명청사를 전공하면서 2차 단계 《명사》 외국전 역주에 참여한 전북대 사학과 송미령 부교수가 집필하였다.
이처럼 장을 나누어 각 집필자들이 독자적인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지만 이들 내용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기에 서술 내용의 범위나 체제의 일관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각 장 1절에서는 각 정사의 편찬 과정 및 외국전의 구성과 특징을 서술하고, 2절에서는 각 정사 외국전이 그린 여러 지역과 종족, 국가에 대해 소개하였으며, 3절에서는 각 정사 외국전의 서술상 인식의 차이나 특징을 기술하였다. 다만 2절의 서술 체제와 방식은 각 장에서 다루는 정사 외국전의 지역적 범위와 서술 특성상 편의를 위해 정사별 혹은 국가·종족·지역별로 분류하여 각기 달리 서술하는 것을 허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