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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새로운 자료와 시각으로 무장한 다음 세대 연구자들에게 지원과 관심을
  • 김형종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새로운 자료와 시각으로 무장한 다음 세대 연구자들에게 지원과 관심을


이제 막 출범한 새 정부의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안보 문제가 거론될 만큼 사드와 북핵을 비롯한 동북아 외교 문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얼마 전에는 미·중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SNS에 남긴 발언 내용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오랜 시간 중국 근현대사를 연구해 온 서울대 동양사학과 김형종 교수를 만나 한·중 관계와 재단의 역할에 관한 조언을 들어보았다.

     

대담 : 김정현 동북아역사독도교육연수원 교수실장

     

     

김형종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국 근대사를 연구해왔다. 20072011년 동아문화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2016년부터 중국근현대사학회장을 맡아 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아틀라스 중국사(中國史)(공저), 중국의 청사공정 연구(공저), 중국의 청사 편찬과 청사 연구(공저) 등과 역서 1880년대 조선-청 국경회담관련자료선역, 국역청계중일한관계사료(淸季中日韓關係史料)》》1, 2, 3(공역) 등이 있다.

     

     

Q1. 일찍부터 중국 근현대사를 연구해 오셨는데 특별히 중국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가 있을까요? 또 오랜 시간 중국 근현대사 연구를 통해 가장 흥미롭게 본 중국의 역사인물이 있다면 누구일지도 궁금합니다.

     

김형종 제가 대학원에 진학할 무렵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이 이제 막 출범하던 시기였습니다. 20세기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빈번하게 혁명이란 격동을 겪었고, 그 시기도 여전히 그러한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정치적 현실을 바라보던 한국의 역사 연구자들도 당연히 역동적인 근현대 중국의 역사에 끌리지 않을 수 없었죠. 당시 세계 학계의 흐름도 중국혁명사나 공산당사, 민중운동사에 쏠리고 있었기 때문에 근현대사 분야는 자연스럽게 가장 많은 연구 지망자가 몰렸습니다. 1980년대 초반 크게 증가한 근현대사 연구자의 대오는 사실 오늘날까지 학계의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중국 근현대사 연구를 통해 가장 크게 흥미를 가진 사람은 당연히 혁명가 쑨원(孫文)과 마오쩌둥(毛澤東)이지만 제 전업으로 이들에 대한 연구를 진척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에는 이 두 사람에 대한 전업 연구자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점이 참 아쉽습니다.

     

Q2. 중국 근현대사 중에서도 청대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 오셨습니다. 청나라 시기는 중국사 전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시기인가요?

     

김형종 20세기 후반 근현대사가 뜨거운 분야였다면 21세기에는 청대사가 세계 중국사학계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분야로 부상하였습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영토와 다수의 이민족을 포괄하는 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한 청조의 경험이 중국 정통왕조를 모방한 한화(漢化) 덕분인가아니면 만주족의 정체성을 제대로 지키면서 독특한 제국을 건설한 것 때문인가 하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뜨거운 논쟁거리입니다. 이것은 중국사 전반(또는 그 이상)의 해석에 대한 수정과 재평가로 이어질 뿐 아니라 청대에 확보한 영토와 다수의 이민족(소수민족)을 이어받은 현대 중국의 정당성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저를 포함한 연구자들이 재단과 공동으로 현대 중국의 청사 편찬공정에 관한 세 권의 책을 펴낸 것도 이러한 청대사의 의미에 대한 평가를 검토해 보려는 시도였습니다. 2003년에 시작된 이 편찬공정이 조만간 완결되어 약 3천만 자, 100권 정도의 분량으로 새로운 청사가 출간된다면 이를 통해 현대 중국의 청대에 대한 이해가 어떤 것인가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 정사인 24사가 모두 합해 35백만 자 분량이기 때문에 새로 출간될 청사의 분량을 보면 현대 중국이 보이는 관심의 정도를 알 수 있죠. 오늘날 중국을 이루는 거대한 영토와 다수의 민족을 확보해준 청조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잘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조를 중국 정통왕조의 하나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중화민족론으로 잘 알려진 현대 중국 내셔널리즘의 토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북공정과 비교해도 청사 편찬공정이 훨씬 더 거대한 프로젝트인 만큼 그 현실적·학문적 의미도 훨씬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3. 현재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교육되는 동아시아사교과서 집필위원이시고 재단 교육연수원의 동아시아사 교원연수강의를 맡고 계십니다. 우리나라 동아시아사 교육과 재단의 동아시아사 교원연수 프로그램의 발전을 위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김형종 동아시아사교과서는 일본에서도 번역되어 소개될 만큼 주목을 받는 새로운 교과목입니다만 잦은 교과 과정의 개편 때문에 오히려 갈수록 예전보다 못한 내용으로 채워지는 게 아닌가 염려가 됩니다. 이를테면 동아시아 교과목의 개설로 학생들에게 큰 흥미를 유발한 부분은 기존 세계사 과목 등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베트남사 관련 부분인데 새로 만들어진 교과과정에서는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을 들여 점검한 다음 보완·개편을 해야 보다 나은 교과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사 교원연수 프로그램에는 두 차례 정도 참가한 적이 있어 크게 말씀드릴 것은 없지만 강의하면서 느낀 바로는 연수 내용의 전문성이 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강의 내용을 개설적인 것으로 잡아 이야기하다 보면 교과서 복습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기 어려우니 차라리 제목과 주제를 좁혀서 깊이를 강조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연수를 받는 사람에게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Q4. 최근 미·중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SNS에 올린 내용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한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중국의 일부였다고 발언했다는 것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만약 발언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할까요?

     

새로운 자료와 시각으로 무장한 다음 세대 연구자들에게 지원과 관심을김형종 19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청과 조선의 조공·책봉 질서 속에서 중국은 천조상국(天朝上國)을 자처하고 조선은 속방(屬邦)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통 중국의 자기중심적 세계관에 따르면 조선은 천자가 지배하는 천하라는 세계의 일부에 속하는 제후 국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념적 차원이었고 현실적으로 조선은 내정·외교 모두 자주적으로 결정해 온 오랜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근대적 의미에서의 종속국·식민지와는 전혀 다른 조공국의 위치였습니다. 양국관계도 대체로 무력에 의한 지배와 굴복이 아니라 도덕적 이념 아래 상호 인정과 배려라는 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서구적 국제법 질서가 도입되면서 이러한 속방 개념이 은연중에 왜곡되어 조선을 근대적 의미의 속국으로 간주하는 관념이 형성되었습니다. 1928년 마무리된 청사고(淸史稿)에서 조선을 속국열전에 넣어 서술한 것은 이러한 19세기말 중국인의 조선관이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은 청대임에도 전기에 완성된 명사(明史)에서는 조선을 외국으로 분류하여 서술하였다는 점은 그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한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중국의 일부였다는 식의 논리는 한국 역사에 약간의 지식이라도 있다면 누구도 하지 못할 발언입니다.

     

Q5. 지난해부터 한국 중국근현대사학회장을 맡고 계신데 특별히 학회 활동에서 역점을 두고 계신 부분이 있을까요? 또 중국 근현대사 연구와 관련해 향후 재단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할 주제는 무엇일까요?

     

김형종 한국 중국근현대사학회는 출범 이래 중국 근현대사 연구와 한·중관계사 연구에 중점을 두어 왔습니다.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이 가져온 충격이후 연구자의 관심이 한·중 관계와 그 역사에 크게 집중되는 현상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 점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충격이 한국인으로서 왜 중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가 하는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지게 만든 결과라고 할까요. 더구나 중국에서도 경제 규모의 급속한 확대에 수반하여 중국사 연구자의 대오나 자료·연구서의 출판이 크게 확대된 만큼 외국인으로서 중국사 연구는 종전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한·중관계사 연구는 우리 학계에서 보다 더 큰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분야입니다.

하지만 그간 왕성한 성과를 보여준 1세대 연구자들이 모두 은퇴하였고 다음 세대 연구자들이 한참 뜸을 두었다가 이제 다시 등장하는 과도기에 있는데 아직 충분히 활성화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자료와 시각으로 무장한 다음 세대의 진출이 무엇보다 기대되는 상황에서 학계뿐만 아니라 재단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연행록(燕行錄)같은 방대한 자료는 한·중관계사 연구에서도 아주 큰 의미를 지니고 또한 우리가 학계에 내놓을 수 있는 자료인데 최근에는 중국이나 일본 쪽에서 오히려 큰 관심을 보이고 한국 역사학계의 관심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의 기본은 자료이고 새로운 역사적 시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자료에 크게 기댈 수밖에 없기에 이러한 대형 자료 발굴과 이용에 대한 보다 큰 관심과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 인력의 투입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매우 큰 성과로 남을 것입니다.

     

Q6. 현재 관심을 갖고 계신 연구 주제는 무엇이며 향후 계획하고 계신 연구 혹은 꼭 해보고 싶은 연구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형종 최근 출간된 1880년대 조선-청 국경회담 자료선역(서울대출판문화원, 2014)은 현재의 제 관심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국경문제에 관한 프로젝트에 가담하면서 생긴 흥미 때문에 이른바 간도문제의 전사(前史)를 이루는 조선과 청의 국경·영토회담1885년의 을유감계(乙酉勘界)1887년의 정해감계(丁亥勘界)을 공부하다가 이 방면의 연구가 기초적인 사실 구축의 토대인 것에 비해 너무 허술하여 사료의 발굴과 정리가 필요하고, 국내 연구자들이 중국 측 자료를 거의 이용하지 않아 공백이 크다는 점을 메우기 위해 착안한 작업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고구려연구재단·동북아역사재단에서도 많은 원문 자료를 출간하였지만 여전히 자료에 대한 접근 장벽이 높아 모두 우리말로 번역하여 정확한 사료의 해독을 통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자료집의 분량이 1,000 페이지가 넘어서 다시 그 내용을 정리하여 한 권의 연구서로 정리하였습니다. 원고는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에 아마 내년 중 출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원래의 제 본업인 청말 신해혁명기 연구로 돌아가 자료만 읽어두고 논문으로 옮기지 못한 입헌운동사 연구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과제가 되는 중국의 민주주의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역사적 관점으로 검토하려는 시도인데 잠시 샛길로 빠져 한·중관계사 분야에 매달리다 보니동북아재단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도 그 원인이 되었습니다만-중단하였던 것이기도 합니다.

     

Q7. 현재 재단 자문위원으로 계신데 재단이 지난 10년간 한·중 역사문제와 관련해 가장 잘한 것은 무엇이고 보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중 역사문제 갈등해소와 평화공존을 위해 재단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한 당부나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김형종 동북아역사재단은 그 출범이 한··일 간의 역사 분쟁에 힘입은 바 컸고 그에 따라 우리 역사학계의 대응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온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국사 분야뿐만 아니라 동양(동아시아)사 학계 전체가 이러한 분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중국 근현대사 분야에서도 그에 따라 많은 연구 성과를 내놓았는데 이에 대한 재단의 기여 또한 부정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 연구자로서는 거의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많은 연구 결과물들이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한숨 고르고 정리하는 작업을 한 뒤 다음 단계로의 진전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동아시아라는 각도에서 한국사, 중국사, 일본사 연구자들이 모여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새롭게 정리해 보고 잘 된 점과 부족한 점을 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지요. 중국은 청사공정을 통해 자기들의 역사 인식을 새롭게 만들고 있는데 우리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인들에게 그러한 시각을 갖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보다는 우리는 이렇게 보고 있다는 우리의 시각을 보여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동북공정이나 청사공정에 대응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어쩌면 조선사공정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장기적 목표를 세워 진행해야 하는 연구이니 재단이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