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한국 근현대사를 둘러싼 지난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지난 3월 23일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교과서포럼이 출간한'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이하 대안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그것이다. 이 논쟁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05년 일반 고등학교에서 가장 많이 채택한 금성출판사의'한국근현대사'를 둘러싼 정치권의 문제제기가 논쟁으로 촉발되었고, 2006년'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판적으로 겨냥한 단행본'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둘러싼 역사인식 논쟁, 2008년'대안'교과서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출판된 교과서 형식의 부교재인 대안교과서가 논쟁의 주인공이다. 꽤나 시간이흘렀으나 이 논쟁의 흐름은 일맥상통하다.
우선, 지면을 통해 출간도 되기 전에 관심을 불러일으킨 대안교과서는 교과서포럼 측의 의도대로'반응'을 얻는데 성공한 것 같다. 대표집필자인 이영훈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대담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교과서 포럼은 2002년 만들어졌던 근현대사 교과서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비판하는 모임으로 결성되었다. 2005~2006년 공청회를 열고 결과물을 냈는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대안교과서를 만들어 대안교과서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사실 이영훈 교수가 말한'반응이 없었다'는 평가는 앞서 말한 논쟁의 역사를 고려할 때 너무 겸손하거나 자기중심적 평가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교과서포럼측이 내놓은 결과물에 대해 일간지들은 상당한 반응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안교과서는 비록 정식 교과서는 아니지만 일반 학교에서 부교재로 채택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서 교과서 시장에 진입했고'폭발적 반응'으로 인해 판매를 통한 대중확보가 훨씬 쉬워진 것도 사실이다.
대안교과서는 역사학계가 역사를 좌편향으로 해석한 결과,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역사서술이 지나치게 건국과 근대화의 의미를 평가절하 했다고 비판한다. 기존교과서들이 과도하게 분단 지향적이고 통일지상 주의적 사관에 있기 때문에, 우리민족에게 자유 민주체제를 갖게 한 대한민국 건국은 부차적으로 처리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실증적 사료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간혹 우리가 듣기에 불편한 사실들도 그대로 담담하게 기술했다는 것이다.
대안교과서 논쟁에 투영된 한국사회의 다양성
이러한 대안교과서에 대해, 기존 학계와 단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대안교과서가 지나치게 민주화와 근대화라는 이분법으로 한국 근대사의 주체를 나누고, 이 둘 사이를 근본적 대립관계로 설정한다는 지적이다. 근대화의 측면을 부각함으로써 인권이나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관점을 결여하였다는 비판이다. 또한 한국판 후소샤 교과서라는 매서운 비판도 이어진다. 한국사 전공자가 하나도 없는 집필진 구성이라든가, 전체적으로 민족적 자긍심을 강조하는 역사인식에 대한 비판이 그 내용이다.
대안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의 양상은 좌우 이데올로기적인 대립구도처럼 비춰진다. 이 같은 역사논쟁의 배경에는 최근 한국사회를 둘러싼 경제적 양극화와 가치관의 양극화 현상이 있다. 2008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70년대 독재정권 시대처럼 역사인식을 단일하게 형성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이 역사논쟁은 한국 내에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있다는것을 실감하게 한다. 이것은 한국사회가 다원화되고 있다는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역사를 깊이있게 이해하고 인식하는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이것이 교과서라는 형식을 둘러싸고 이루어진다는점이다. 교과서는 미래세대를 책임지는 중요한 기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스러울 것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많은 부분에서 사회적 공감과 합의를 이루어야 하고, 보편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기 위한토론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대안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2001년과 2005년 한ㆍ일간 외교적 쟁점으로 부각된 일본교과서 논쟁을 떠올렸다. 한ㆍ일 간에 불붙었던 교과서논쟁이 한국교과서로 옮겨온 것같다. 일본교과서 논쟁을 통해서 한가지 배운 점이 있다면, 논쟁이 논쟁으로 끝나지 않고 역사대화로 이어졌다는 점에 있다. 한ㆍ일 양국정부는 한ㆍ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만들어 정부차원의 역사대화를 진행 했고, 시민사회는 시민사회 차원에서 한ㆍ중ㆍ일, 한ㆍ일 공동교과서를 만들어 역사대화를 적극적으로 이끌고 있다. 일본 교과서 논쟁을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한ㆍ일 두 나라 시민사회가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함께 만들어가는 계기를 만들었고, 문제가 된 교과서는일본의 학교현장에서 채택되지 못하고 퇴출된 것이다.
일본과 역사적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언급되는 독일은 어떠한가? 독일 역시 지난한 역사적 논쟁이 있었다. 그중 주목할 점은 1980년대 이루어진 역사가논쟁이다. 이 논쟁은 80년대 중반독일의 보수적인 정치세력의 등장과 보수주의적인 역사해석으로의 회귀 등 독일의 정치적 상황이 그 배경에 있었다. 그동안 독일사회에서 꾸준히 논란이 되었던 독일의 전쟁책임에 대해 그 종지부를 찍고, 독일의 민족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에서 역사가 논쟁이 비롯된 것이다. 이 논쟁은 독일사회가 집단적 정체성 형성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상이한 질문과 대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논쟁의 과정은 적어도 90년대이후 독일의 과거청산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는데 밑 걸음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교과서 논쟁에서 배우는'역사대화'의 필요성
문제는 논쟁 자체에 있지 않다. 다원화된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이 논쟁을 우리의 자양분으로 만들 것인가에 있다. 지루하고 소모적이지 않은 논쟁을 통해 한국사회가 역사인식에 깊이생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점에서 이 논쟁은 좀 더 세련되고 적극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응대할 가치가 없다고 무시하거나, 일방적 편들기를 통한 찬양일변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논쟁을 연구자의 몫으로 돌려서도 안 될 것이다. 물론 역사논쟁은 사료해석을 통한 전문적인 영역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이 몇몇 연구자의 논쟁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우리사회의 역사인식을 심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놓칠 수도 있다. 좀 더 대중적 참여를 이끌어낼 방안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균형잡힌 언론 보도는 매우 필요하다. 또한 열린 마음으로 진지하게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방어적 자세가 아닌 수용적 자세를 통해 애정 어린 비판과 충고가 가능하도록 토론문화를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럴 때만이 우리가 이 논쟁을 디딤돌로 삼아 한국인의 깊이 있는 역사인식과 한국사회를 성숙시키는 계기를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