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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억 전쟁과 식민지 범죄
  • 아르노 난타(Arnaud Nanta)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원(조교수)

1980년대 초 이래로 일본의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기억이 반복되는 논쟁을 야기하는 상황에 직면하여, 오늘날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기억을 구성하는 일반적인 틀과 주요 기준 즉 한편으로는 전쟁과 탈식민화 이후 이와 관련된 기억의 역사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기억의 전제들을 분석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일본의 전쟁과 식민지 지배는 이미 60년 전에 종식되었다. 일본은 유럽, 특히 1945년 말부터 1962년까지 식민지 전쟁(인도차이나에서의 '재식민화' 전쟁, 그리고 1954년부터 1962년부터 알제리에서 '평정' 전쟁)을 벌인 프랑스와 수많은 비교를 가능하게 한다. 이 기억들을 세계의 지정학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않는다면, 동아시아와 서유럽 간의, 특히 일본과 독일 간의 성급한 비교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게다가 아시아에서 생각하는 바와 달리 유럽에서도 기억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열강들 사이에서 '기억의 작업'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유럽 사회 내부에서는 식민지 문제에 대한 거의 전적인 무관심이 존재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일본의 역사학자와 지식인들은 전쟁을 도발한 '천황체제'를 비난하였다. 그리하여 자유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한편으로, 자민당 중심의 보수주의자들을 다른 한 편으로 하는 논쟁이 시작되었다. 일본의 역사학자와 지식인들은 만장일치로 1945년 이전 시기를 '군국주의'로 해석했으며,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1950년대의 주장들은 첫째, 군부의 '음모' 이론처럼 일본인들을 전쟁에 휩쓸리게 한 일본 정부의 책임에 관한 것이었지, 동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국가적 책임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둘째, 일본의 전쟁 책임 문제에 대해서만 검토가 이루어졌을 뿐 식민지 지배 문제는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

식민지배의 책임을 묻지 않는 열강들

그런데 식민지 문제는 일본에서도, 다른 어떤 국가들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의사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역사적 요구와 기억의 작업은 모호했었다. 이때부터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일본과의 기억에 관한 논쟁은 흔히 일본과 자민당의 보수주의자들의 태도에 따른 고질적인 문제로, 혹은 일본의 지속적인 완강함에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세계적 맥락 속에서 보면 이러한 논쟁은 다른 방식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우리는 식민지 지배의 기억을 문제 삼아야 하며 특히 옛 식민 열강들의 오늘날의 태도를 문제삼아야한다.
1945년 이전 시기로 돌아가 보자. 1931년부터 중국 대륙에서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명백히 '군사적 분쟁'이다. 하지만 그것이 열강들 간의 전쟁이었는가? 혹은 식민지화나 식민화를 위한 시도의 지속에서 기인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중요치 않지만, 실제로는 역사적 관점에 대한 중요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현재의 인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들에 대한 당시의 인식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에서, 기억의 긴장 관계에서 기인하는 옛 식민 열강들과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는 식민시기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에 일본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재판이나 다양한 단체들의 주장, 예를 들어 '참회', '사죄' 등을 요구하는 것들에서 논의되고 판결이 이루어진 것은 기본적으로 열강들 사이의 전쟁이었다. 따라서 프랑스와 독일 간의 사례는 독일과 폴란드 또는 프랑스와 알제리 간의 긴장과 대비된다.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는 한 번도 재검토나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2000년부터 식민지 지배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이에 관한 기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1931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중국 침략 원인은 '1930년대의 악순환'에 있지 않고 그것은 1895년부터 시작되어 이후 계속된 일본의 팽창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일본의 중국·한국 진출은 19세기에 있었던 거대한 세계적인 제국주의적 움직임의 일부였다.
20세기 초에 중국과 한국에서 제국주의의 거대한 움직임에 참여했던 일본이 1931년 이후 중국에서 벌인 일들을 우리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분석할 수 있을까? 동아시아의 지배를 위한 이 동일한 움직임을 유럽 열강들의 경우에는 '식민화'로, 일본의 경우에는 '군국주의'로 간주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계제국주의의 일부로서 일본의 아시아침략

물론 여기서 일본의 중국 침략이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떼어놓을 수 있는 과거 사건들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오늘날의 '기억 전쟁'에서 혹은 한국과 중국이 재판을 바라는 책임성의 문제에서 중심적 역할을 차지하는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전쟁'인가 '식민화'인가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의 명칭에 관한 논쟁은 기억 전쟁에서 중심적 위치에 놓여있다. 그것이 '강대국들' 간의 '전쟁'이라면 책임의 소재가 인정되어져야 하고, 나치즘에 대한 '독일식 모델'을 따라 공적인 사과와 '기억의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식민화'라면, 옛 식민 본국들은 일본의 위안부 여성 문제나 1937년의 난징 대학살, 프랑스의 1948년 세티프 학살, 1947년 마다가스카르 학살 또는 1957년 알제리에서의 고문 등과 관련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망각'하거나, '식민 지배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자유롭게 유통시킬 것이다.
옛 열강들이 그들의 옛 식민지에 대해 취하는 거만한 자세도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의 태도나, 알제리·인도차이나에 대한 프랑스의 태도뿐만 아니라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결국 강대국들 간의 전쟁에 관한 기억이 아니라면 오늘날 어떤 국가도 진실로 식민화에 대해 사죄하려 하지 않으며, 식민지 범죄자에 대한 재판을 수용하려 하지 않으며, 피해 보상금을 지불하려 하지도 않는다.
오늘날 옛 열강들의 식민 지배의 과거에 대한 문제는 예전의 어느 때보다 자주 제기되고 있다. 2005년 한·중·일의 공동 교과서 집필 시도는 동아시아의 '미래를 열기' 위해 추구해야 할 또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과거 식민지 국가들과 함께하는 이와 유사한 어떠한 노력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 특별기고는 재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