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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북아시아의역사논쟁과 제3자의 관점
  •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윤병남(서강대 사학과 교수)

지난 7월 30일 미국 하원 본회의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비록 법률적인 구속력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역할과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관한 국제적 논쟁에서 제3국국가기관의 공식적 입장 표명이 지니는 의미와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간의 논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역사교과서 문제, 일본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 문제 등 한·일관계의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동시에 불거져서 양국 간에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이 고조되었된 2005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 정부의 강경한 입장에 이어서 국민들의 반일감정도 최고조에 달하였다. 중국이 한국에 동조하여 일본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였고 중국 국민의 반일감정이 대규모 시위로 비화됨에 따라 동북아시아에는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한국·중국 대 일본의 첨예한 대립구도가 등장하였다. 세계의 주요 언론들이 해묵은 논쟁의 새로운 전개를 연일 대서특필하였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대립구도에 미국은 제3자로서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였지만, 6자회담이라는 다자간 협의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최대 현안인 북핵문제의 해결에 부심하고 있던 미국에게 회담의 주요 구성원들이 역사문제로 인해 대립과 갈등 속에 놓이게 된 것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었다. 2005년 6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이 문제가 주요 관심사로 논의되었던 것도 이러한 미국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갈등을 보는 미국의 우려

이 시기를 전후하여 미국의 전현직 고위 관리들이 전에 없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미온적 태도를 비판하는 견해를 표명하는 일이 잦아졌다.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구축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고이즈미 정권 기간 동안 균열을 봉합할 수 있었지만, 민주당의 의회 장악과 미국의 대북정책의 전환이라는 정치적 지형의 변화 속에서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금년 4월 아베 일본수상의 방미를 앞두고 벌였던 위안부 결의안 통과 반대 로비가 미국 정치 지도자들의 지지를 얻기는커녕 많은 반발과 분노를 불러일으킨 점도 이러한 미국 내 분위기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 한인 커뮤니티의 지속적인 노력, 의회조사국의 치밀한 연구조사 등이 결의안 통과에 큰 역할을 수행했지만, 결의안의 압도적 통과의 밑바탕에는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의 다수가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견해와 태도에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는 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정치적 외교적 고려를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었겠지만, 바뀐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덜 부담을 가지고 그들의 견해를 결의안에 표명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채 고식적인 관점과 방법에 의존했던 일본의 결의안 철회 로비는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했을 뿐이었다.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미국 하원의 결의안 통과는 우리가 직면한 역사논쟁의 전개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주요 쟁점들에 대한 우리의 논리와 근거를 강화하고 가다듬는 일이 우선이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제3자의 이해와 동조를 확보하는 일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함을 깨닫게 해준다.
역사교과서나 위안부 문제를 서구 언론이 다루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일본 지도자의 전쟁책임 의식의 부재와 극우세력의 역사 왜곡 노력 등과 이에 대한 한국이나 중국의 비판적 반응이 단골 내용을 이루고 있었다.
대중매체의 성격상 논쟁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측면보다는 한국과 중국에서의 대중의 반일감정 분출과 같은 감정적 측면에 관한 보도가 주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감정적 반응을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교과서의 감정적 기술과 연결시켜서 이해하는 보도도 있었다. 아울러 이러한 반응이 지니는 한국과 중국의 국내 정치적 측면에 관한 언급도 드물지 않게 보이고 있다.

공동연구·국제회의 통한 공감대 형성을

지난 10여 년 동안에 이 문제는 마침내 저널리즘적 관심사에서 학문적 관심사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의 논의가 일본 역사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 집중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서구의 연구는 역사 교과서 문제 자체에 대한 논의에 더하여 전쟁과 기억 그리고 전쟁에 대한 기념이라는 보다 큰 틀 속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점에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논의에서도 이제는 일반화된 것이지만, 자신의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느슨한 인식과 책임의식을 독일의 경우와 대비하여 제시하려는 시도도 흔히 보인다.
동북아시아의 역사논쟁에 관한 서구의 연구가 양과 질에 있어서 아직 흡족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중·일의 연구자들 뿐 아니라 제3국의 학자들이 공동연구나 국제회의 등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심화된 이해에 도달하고 그것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넓혀가는 노력을 전개해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역사문제에 관한 자료와 연구들을 외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일도 매우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3자의 견해에서 비단 제3국만이 아니라 일본 내의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학자와 시민세력의 견해와 관점을 포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극우 보수주의단체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집필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우선 전후 일본 사회에서 널리 수용되었던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한 일본의 전후 역사학을 비판하고 부정하기 위한 시도였다.
극우적 역사관의 대두와 그에 따른 새 교과서의 집필은 1990년대 이후 두드러진 일본사회의 우경화에 토대를 두고 있지만, 그러한 시도가 교육현장에서 외면받았다는 사실은 보다 반성적인 전후 역사학의 유산이 일본의 교육계와 시민운동 그룹에서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연구가 자명의 진리의 주장을 통해 자기만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3자들의 이해를 구하고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되도록 힘쓸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