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본의 양심 아라이 신이치 선생을 기리며
지난 10월 11일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 이바라키(茨城)대, 스루가다이(駿河台)대 명예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아라이 신이치 교수는 1926년 도쿄에서 출생하여 1949년 도쿄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이바라키대와 스루가다이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징병검사를 받고 학도병으로 참전한 마지막 세대 역사학자로서 일본의 전쟁책임과 전후화해 문제에 몰두했다. 1993년 ‘일본의 전쟁책임 자료 센터’ 설립과 동시에 대표를 맡았고, 2010년부터는 ‘한국 ‧ 조선 문화재 반환문제 연락회의’ 대표, ‘전쟁과 공중폭격문제연구회’ 등의 대표로 활약했다. 《일본의 패전》(1988), 《전쟁책임론》(1995), 《역사화해는 가능한가》(2006), 《폭격의 역사》(2008), 《식민주의와 문화재》(2012)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뒤의 세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아라이 신이치 교수는 같은 과거를 반복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면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것에서 화해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오랫동안 일본의 전쟁책임 규명과 전후보상 운동을 이끌었다. 한 ‧ 일 국교정상화 이후 무라야마 담화(1995)와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한 ‧ 일 파트너십 공동선언(1998)으로 수사적으로는 식민지 지배의 가해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지만, 일본 정부가 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주장하는 구조약 무효 주장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실질적인 사죄와 보상, 그리고 진상 규명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한일협정 40년에 즈음한 한일평화심포지엄, 2005, 서울)
역사 문제가 외교적 대립으로까지 나아간 동아시아의 상황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응시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동시에 한 ‧ 중 ‧ 일 3국의 역사 ‧ 문화 차이가 사실 확정, 사실 해석에 대해 많은 차이를 낳고 있는 것도 틀림없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이로부터 눈을 돌리지 말고 직시해야 하며, 차이의 역사적 유래에 대해 냉정하게 탐구하여 쌍방이 공통의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도 역설했다.(제2회 역사NGO대회, 2008, 서울)
2006년 동북아역사재단 출범 후 강연과 발표 등으로 인연을 맺은 아라이 신이치 교수는 2009년 7월부터 2011년 2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소장 자료 3,556책을 재단에 기증하여 향후 연구의 밑거름이 되게 하였다. 재단에서는 이 책들을 ‘아라이문고’로 명명하여 관리하면서 연구자들에게 열람, 대출해주고 있다.
일본의 전쟁책임 규명과 한 ‧ 일 평화, 우호 촉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아라이 신이치 교수의 명복과 안식을 기원한다.
서현주 (한일관계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