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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새 책
조선영화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 한상언 한상언영화연구소 소장
『일제강점기 조선영화-동화에서 동원으로』
 

1928년 『조선일보』 신년호에 심훈의 ‘조선영화계의 현재와 장래’(1월 1일, 4일, 6일)라는 글이 실렸다. 이 글은 막 발걸음을 뗀 조선영화의 암울한 현재를 다루며 보다 나은 장래의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심훈은 1927년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연출한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적었다. 
 
1먼동이 틀때
『단성위클리』 212호의 표지를 장식한 심훈의 연출작 《먼동이 틀 때》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제작비 6,000원을 들여 만든 영화는 서울의 극장에서 상영할 시 극장과 제작자는 6:4의 비율로 이익을 나눈다. 영화는 보통 6일을 상영하는데, 상영 기간 내내 만원 관객이 들어도 하루 600원, 총 3,600원의 매출이 생길 뿐이다. 하지만 극장에 넘겨주는 비용과 선전비, 광고비를 제하고 나면 제작자에게 돌아오는 금액은 불과 1,000원 정도다. 지방의 상설관이 4, 5곳 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방 순회상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많지 않다. 이렇듯 조선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수지상 실패가 예견된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영화인들이 피땀을 흘려 만들어 놓은 회심의 장면이 당국의 검열로 인해 삭제되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심지어 불온하다고 여겨진다면 언제든 상영 금지될 수도 있었다. 조선영화는 내용과 표현에 있어서 말하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을 연출자의 마음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예술적 실패의 길 위에 서 있는 셈이었다. 
 
심훈의 글을 예로 들지 않아도 조선영화는 흥행 실패와 예술적인 실패가 예견된 상황에서 외줄을 타듯 기형적 형태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내 대부분의 극장을 일본인 흥행사들이 장악하고 있고,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영화제작비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그들의 입김에 맞는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결국 다수의 조선영화는 현실을 회피하게 만드는 철저한 흥행 목적의 영화이거나 일제의 식민정책에 동조하는 영화였다. 그 결과는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조하는 식의 반민족적 영화로 귀결되었다. 
 
산업적 종속과 정책적 동화, 침략전쟁의 동조라는 침탈적 상황으로 구조화된 조선영화는 일제강점 이후부터 산업적 실패와 예술적 실패를 반복했다. 조선영화가 일제에 의해 동화•동원의 도구로 활용될 때 조선의 영화인들은 예견된 실패에 끊임없이 도전한 시시포스처럼 침탈적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아리랑》으로 대표되는 현실 문제에 눈을 돌리게 하는 선구적 영화에서부터 《유랑》을 시작으로《암로》,《혼가》,《화륜》,《지하촌》으로 이어지는 프롤레타리아 영화, 영화 기업화에 발 벗고 나섰던 최남주와 같은 기업인 등은 예견된 실패에 도전한 조선 영화인의 헌신적 노력이 남긴 흔적이다. 
 
11 2 혼가
카프영화 《혼가》의 전단지
출처: 한상언영화연구소
 

『일제강점기 조선영화-동화에서 동원으로』는 어떤 책인가
 
한국영화사는 은근과 끈기, 저항과 도전이라는 관점에서 민족영화를 구축해 갔다. 한국영화사는 이런 식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서사로 만들어진 우리 영화사에서 조선영화인이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혹은 도전해야만 했던 대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조선영화인의 헌신적 노력을 강조하다 보니 조선에서 실제 산업을 장악했던 일본인의 활동 내역을 역사 속에서 배제해 버리고 일제의 탄압이라는 단어로 치환해 버렸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주의라는 억압 체제를 상징하는 말로 뭉뚱그려 이야기하기에는 그 구체적인 상황이, 도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대상이 명쾌하지 않다.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에게 유리하게 적용된 영화 정책, 조선인의 창작활동을 억압하는 제도, 산업을 장악한 재조일본인이라는 구체적 대상을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일제강점기 한국영화의 실패를 당대 조선 영화인의 무능과 무지 혹은 식민지 조선의 열등함으로 비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13 1 원산프로덕션
동대문운동장 옆에 있었던 원산프로덕션 경성촬영소의 개소식
출처: 『朝鮮新聞』, 1930. 12. 14.
 
조선영화를 더딘 성장의 늪에 빠트렸던 일본 제국주의의 권력기관과 조선영화계의 핵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조선영화를 일본영화산업에 종속되게 만든 조선 거주 일본인, 조선총독부와 조선군보도부라는 식민지 지배기구가 조선영화에 드리운 흐릿한 그림자가 더욱 또렷해질 때, 이러한 침탈적 상황과 조선영화의 실패를 더욱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영화: 동화에서 동원으로』는 실재했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거된 조선 거주 일본인의 자리를 찾아 주어 일제강점기 조선영화를 보다 명징하게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몇 가지 중요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 
 
첫 번째, 일제의 조선 강점과 함께 조선의 영화산업을 장악한 일본인 흥행사에 관한 관심이다. 닛카쓰 영화의 대리점을 운영한 대정관의 닛다 고이치(新田耕市), 텐카츠 조선대리점을 운영한 황금관의 하야가와 마쓰타로(早川增太郞), 중앙관과 경성극장을 배경으로 1930년대 조선의 흥행계를 장악한 와케지마 슈지로(分度周次郞), 명치좌와 우미관을 운영하던 이시바시 료스케(石橋良介) 등 재조선일본인 흥행사를 통해 조선의 극장 흥행계가 어떻게 일본의 영화산업의 소비지로 전락했는지를 살피고 있다.  
 
두 번째, 3.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의 외곽기관인 경성일보사에서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킬 목적으로 만든 《생익》, 《애의 극》, 《사의 휘》와 같은 내선동화 영화를 비롯해 재조일본인의 삶을 그린 《누의 가》, 《아, 스즈키교장》, 그 외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인을 계몽하기 위해 만든 《월하의 맹세》 같은 저축계몽영화, 《생의 과》와 같은 위생영화에 대해 주목했다. 
세 번째, 중일전쟁 이후 조선의 영화산업을 일제가 어떻게 통제해 갔는지를 조선군보도부와 조선총독부의 정책적 움직임과 여기에 통제된 조선의 영화산업을 장악한 다나카 사부로(田中三郞)와 같은 일본인 실업가, 허영(許泳)을 비롯해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참한 조선영화인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침탈에 대한 조선영화인의 저항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에서 원주민 조선인은 ‘2등 국민’일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에 이주한 내지인과 그들을 위한 식민당국의 정책적 배려를 제대로 이해할 때 바로 식민지 원주민인 조선인의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영화의 침탈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10 아리랑
영화 <아리랑>의 신문 광고
출처: 『每日申報』, 1926. 10. 3.
 
 
이 책에서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영화인의 저항을 또렷이 그려낸다. 일본인 흥행사가 장악한 조선의 흥행계에서 조선인 스스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극장 운영을 통해 번 돈을 쾌척한 단성사 운영주 박승필의 선구적 노력은 당시의 흥행 상황을 이해할 때 더욱 감동스러울 수 있다. 고소설을 바탕으로 한 옛이야기 혹은 일본의 신파소설을 토대로 한 남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던 시절에 우리의 현실 문제를 다룬 <아리랑>이 일본인 제작자의 자본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점은 나운규로 대표되는 조선영화인의 현실에 대한 자각과 예술적 성취에 대한 욕구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된다. 
 
또한 제국주의라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노동자, 농민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과 현실에 대한 투쟁을 바탕으로 한 영화 역시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조선 영화인의 거친 투쟁의 목소리를 보다 크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파시즘 체제가 공고해졌을 때, 침략전쟁의 도구로 활용된 조선영화인의 모습은 그 체제에 저항하여 영화계를 등진 영화인의 행적을 더욱 아름답게 바라보게 만든다. 
 
일제강점기 조선영화의 반복된 실패는 우리가 일제의 기반에서 해방되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꽃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보면 우리 스스로 주인이 될 때 그 능력을 얼마나 잘 발휘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문화강국으로 세계인이 즐기는 K-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지금, 이 책을 통해 과거 영화계의 침탈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이를 극복해 보려는 조선영화인의 노력을 돌아보는 것은 현재의 찬란한 영광이 어디에 빚지고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책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