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정답을 다시 검증하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가 ‘공생과 번영을 향한 여정’을 주제로 지난 11월 5~6일 이틀에 걸쳐 재단과 현대일본학회 공동주최로 개최되었다.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의 기조 강연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붕괴와 한일관계」를 시작으로 총 14개의 세션이 진행되었으며, 한일 양국에서 105명의 연구자가 발표와 토론에 참여하였다.
냉전과 탈냉전의 자유주의 확산기, 그리고 미중 경쟁이 격화하는 오늘날의 신냉전 국면까지한일 협력체제의 구축과 유지는 언제나 ‘필수적’인 과제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1965년 국교정상화는 역사인식의 간극을 온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이 요구한 조건 속에서 양국 정부가 도출한 외교적 합의였다. 이후 한국 민주화라는 정치적 전환기를 거쳐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 새로운 협력의 이정표로 자리했지만, 이 역시 핵무장을 서두르던 북한의 위협과 주한·주일미군 재조정 가능성을 둘러싼 미국의 전략적 공백하에 양국 정부가 협력의 필요성을 더욱 강화하고자 했던 흐름 속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이렇듯 한일 협력은 오랫동안 ‘필수적’이라는 외교적 언어 속에서 정답처럼 자리해 왔다. 그러나 정답은 언제나 검증과 설득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 정당성을 설명하고 제도화하며 지속시키는 일에는 많은 조율과 시간, 그리고 시행착오가 뒤따른다.
변화한 균형 속에서 다시 보는 협력
1965년 이후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뒷받침해 온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말할 것도 없이 동북아의 안보환경이었다. 플래너리 세션에서 발표를 맡은 이원덕 국민대학교 교수와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학교 명예교수는 지난 60년간 국제·지역 질서가 한일 관계에 부여해 온 역할과 제약을 되돌아보았다. 군사적 역할이 제한된 채 스스로를 ‘평화국가’로 규정해 온 일본, 그리고 북한과의 경쟁조차 외부 지원이 필요했던 한국은 오랫동안 주어진 ‘지역질서’에 적응하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대외정책의 자율성은 제한되었고, 국가적 목표는 경제성장에 집중되었으며 미국이라는 압도적인 힘 앞에서 두 나라는 손을 잡는 법을 학습해 왔다.
이 균형을 흔든 것은 기미야 교수가 말한 한일 간 국력의 균형화, 비대칭 관계에서 대칭 관계로의 구조적 전환이었다. 한국의 민주화와 일본 보수정치의 변화는 2000년대 이후 양국 관계의 유동성과 불안정성을 확대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 변화 속에서 새로 떠오른 안보과제와 글로벌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사인식 문제를 포함한 난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병행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과거가 현재 속에 살아 있는 이상, 그것은 다가오는 경쟁과 위협 속에서 미래를 여는 발판이 될 수도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이번 회의의 14개 세션은 바로 이 물음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 연구자의 발표와 토론
과거를 둘러싼 대화는 계속된다
지역안보체제의 구축, 경제안보 협력, 기후변화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공동 대응방안을 포함해 다양한 정책적 제안이 논의되었다. 여기에서는 재단이 구성한 3개의 분과 세션에 초점을 맞춰 그 논점을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한일회담 연구의 새로운 모색> 세션에서 1910년 한일병합은 ‘불법’이었느냐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그간 막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음에도, 병합의 합법성에 대한 양국의 해석은 좁혀지지 않은 채 차이만 재확인했다. 일본 정부가 “불법은 아니지만 부당한 것이었다”고 인정하게 한 국내·외교적 과정까지 고려하면, 공식적 입장에서 더 큰 변화가 도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입장이 유지되는지를 지속해서 지켜보는 일이며, 정치적 결론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료에 기반한 역사연구라는 점이다. 재단이 일관되게 추진해 온 한일회담 관련 사료 편찬과 연구자의 비공개 자료에 대한 공개 요구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한일 관계와 역사인식> 세션에서는 복잡해지고 분화되는 역사 문제에 대해 연구자와 시민사회가 함께 장기적·자율적으로 대화해 나가는 과정의 중요성이 제기되었다.
그 구체적 사례로 소개된 것이 <한일 지역교류·지방외교> 분과에서 박재홍 교사가 발표한 ‘한일 공통 역사 부교재 만들기’ 프로젝트다. 2001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와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이 체결한 교류협약에서 출발한 이 시도는 잘못된 역사서술에 맞서 정직한 역사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양측 교사들이 함께 부교재를 집필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토론자로 등단한 히로다 가츠에 전 교사와 함께, 이 과정에서 마주한 수많은 난관을 담담하게 그러나 깊은 울림을 가지고 공유했다. 일제강점기라는 큰 쟁점뿐 아니라, 조선통신사가 ‘파견된’ 것인지, 일본을 ‘방문한’ 것인지와 같은 세부 표현까지 서로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심하게 되짚은 이 발표는, 한 개인의 신념과 실천이 국가 간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한일 사이의 역사 문제에 과연 해법이 있는가. 민주주의가 비민주국가뿐 아니라 민주국가 내부에서도 위협받는 오늘날, 국가협력의 '필요조건'은 정치지도자나 전문가만이 아니라 민주적 시민의 공동의지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재단 박지향 이사장 폐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