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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를 기리며
  • 남상구 교육홍보실장
전쟁을 체험하고 평화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닫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가 지난 10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1세. 그는 1924년 규슈 오이타현 어촌에서 태어났다. 11남매 중 여덟째였다. 1938년 도쿄로 가서 낮에는 공장 등에서 일하면서 야간에 시립 상업학교에 다녔다. 1943년 메이지대학에 입학했다. 1944년 징병 당해 규슈 미야기현으로 동원되었다. 그가 체험한 일본 군대는 허기와 상관의 명령이라면 말이 안 돼도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부조리 자체였다. 미군의 폭격으로 생사를 넘나들 때 그가 들고 있던 것은 대나무로 만든 총이었다. 무모한 전쟁이었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학교로 돌아왔지만, 그러지 못한 동급생도 많았다. 평화와 민주주의,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안 된다는 신념은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정한 현실 정치를 꿈꾸다
 
무라야마는 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사회당에 들어가 오이타 시의원과 현의원을 거쳐 1972년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93년에는 사회당 대표가 되었다. 1993년 7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223석을 얻어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자민당을 대신한 호소가와 모리히로 내각, 하타 쓰도무 내각을 거처, 1994년 6월 사회당·자민당·신당 사키가케 연립정부가 구성되었다. 사회당 대표인 무라야마가 제 81대 총리로 취임했다. 사회당의 의석은 70석으로 자민당의 1/3에 불과했다. 자민당과 줄다리기하면서 정권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무라야마는 국민을 중심에 둔 다정한 정치를 강조했는데, 1994년 7월 18일 소신 표명 연설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치는 먼저 국가가 있고 산업이 있다는 발상이 아니라, 이마에 땀방울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평화롭게, 안심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를 사고의 중심에 두는 정치, 즉 ‘사람에게 다정한 정치’, ‘안심할 수 있는 정치’입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관해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다
 
3당은 연립정부를 논의할 때 종전 50년을 맞아 과거 전쟁을 반성하고 평화에 대한 의지를 밝히는 국회 결의를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의원에서 1995년 6월 9일 채택된 ‘역사를 교훈으로 평화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결의’는 반성과 사죄를 명확하게 담아내지 못했다. 참의원에서는 결의가 채택조차 되지 못했다. 이에 무라야마는, 8월 15일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총리 담화를 발표했다(*담화 전문은 아래 담화문 참조).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무라야마 담화는 모든 각료의 동의를 받아 발표되었는데, 당시 각료 중 자민당 소속은 하시모토 류타로 장관을 비롯해 전부 8명이었다. 이후 모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밝혔다. 무라야마 담화는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관한 사죄와 반성을 일본 정부 공식 견해로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매우 크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보수세력 반대로 차선책을 선택하다
 
1995년 7월에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이하,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보상 사업을 시행했다.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담화를 발표해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소 설치와 관리, ‘위안부’ 모집과 이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다. 그 후속 조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조치는 국내외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라야마전총리
2024년 8월 22일 동북아역사재단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발표하는 무라야마 전 총리
 

무라야마는 2000년 정계를 은퇴한 후에도 2007년 아시아여성기금 해산 때까지 이사장직을 맡아 수행했다. 그만큼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2014년 8월 22일 동북아역사재단이 개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무라야마는 아시아여성기금에 관한 생각을 밝혔다. 국내외에서 많은 반대가 있었고 100% 만족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기금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를 위해 성의를 갖고 최선을 다했다는 점은 이해해 달라고 했다. 사회당은 국가가 책임을 지고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보수세력이 다 끝난 문제를 왜 다시 끄집어내냐고 반대하는 상황에서 의석이 70석밖에 안 되었기에 현실적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2015년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후에는 아베 총리가 피해자에게 직접 사죄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를 직시할 때 밝은 미래가 열린다
 
무라야마는 과거를 직시할 때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무라야마 담화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사죄와 반성의 대상으로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공동의 평화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무라야마 전 총리의 명복과 안식을 기원한다.
 
방명록
2014년 8월 22일 재단을 방문한 무라야마 총리는 방명록에 “한일 우호를 위하여”라고 남겼다.

[담화문]
 
무라야마 내각 총리대신 담화 ‘전후 50주년 종전 기념일을 맞이하여’
 
지난 대전이 종말을 고한 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시금 그 전쟁으로 인하여 희생되신 내외의 많은 분들을 상기하면 만감에 가슴이 저미는 바입니다. 패전 후 일본은 불타버린 폐허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의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 왔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자랑이며 그것을 위하여 기울인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영지(英知)와 꾸준한 노력에 대하여 저는 진심으로 경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내진 지원과 협력에 대하여 다시 한번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또 아시아·태평양 근린제국, 미국, 구주제국과의 사이에 오늘날과 같은 우호 관계를 구축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본은 평화롭고 풍요로워졌지만 우리는 자칫하면 이 평화의 존귀함과 고마움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근린제국의 국민들과 협조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확고히 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를 키워나가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특히 근현대에 있어서 일본과 근린 아시아제국과의 관계에 관한 역사 연구를 지원하고 각국과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하여 이 두 가지를 축으로 하는 평화 우호 교류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전후 처리 문제에 대하여도 일본과 이들 나라와의 신뢰 관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하여 저는 앞으로도 성실히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지금 전후 50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에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패전의 날로부터 50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나라는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독선적인 내셔널리즘을 배척하고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협조를 촉진하고 그것을 통하여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나라는 유한일 피폭국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핵무기의 궁극적인 폐기를 지향하여 핵 확산 금지 체제의 강화 등 국제적인 군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간요(肝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속죄이며 희생되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길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의지하는 데는 신의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 기념할 만한 때에 즈음하여 신의를 시책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내외에 표명하며 저의 다짐의 말씀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1995년 8월 15일
내각총리대신 무라야마 도미이치

※출처: 주 대한민국 일본국 대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