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관계 자료 현황 세미나-
일본군‘위안부’ 관계 자료의 의미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명분으로 일본 군‧정부 등 정치 권력이 식민지, 일본 본국, 점령지 등에서 여성을 대량 동원하고 배치한 사건이다. 그 가해 책임에 대한 논의는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한국, 미국, 일본에서 역사부정론이 확산되고 최근 생존자들의 사망이 이어지면서, ‘재발 방지’라는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동력도 이전만 같지 못하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공론장에 올라온 이후 지난 35년간, 관련 ‘자료 발굴’은 3‧1절이나 광복절 같은 국가기념일에 미디어 등이 즐겨 주목하는 주제이다. 애초 일본이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관여를 일관되게 부인할 때 그 태도를 바꾸게 한 것은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가 『아사히신문』에 공개한 공문서였다. 피해 생존자 증언과 공문서 공개, 그리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합쳐져 1993년 8월 ‘고노 담화’와 1995년 8월 ‘무라야마 담화’가 나올 수 있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자료와 증언에 근거하여 일본 군과 정부의 관여를 인정하고 지속적인 자료 발굴과 추모사업,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으로 ‘재발 방지’에 힘쓸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책임 부인은 더 강경해지면서, 일본 정부가 부정할 수 없는 ‘자료 발굴’이 주요한 현안 과제가 되었다.
한국 정부와 학계에서는 ‘자료 발굴’에 힘써 왔다. 여러 연구팀이 결성되어 일본 자료와 연합군 자료, 구술 자료 등을 발굴‧정리하는 한편,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등 공공기관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그사이 사업이 중복되거나 이미 발굴된 자료를 ‘최초 발굴’했다고 보도하는 등의 해프닝도 있었으나 그만큼 많은 전문가와 시민들이 일본군‘위안부’ 관계 자료에 관심을 갖고 ‘자료 발굴’ 소식에 큰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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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9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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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9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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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9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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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과 정부의 가해 책임을 확인한 자료 발굴 뉴스
일본군‘위안부’ 관계 자료 현황 점검을 위한 전문가 세미나 개최
2025년 새 정부가 시작되고 나서도 국정과제 중 하나로 일본군‘위안부’ 관련 자료의 수집‧정리‧확산이 제시되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 근거를 공유하고 역사부정론에 맞서며 문제 해결을 도모해 나가는 일은 ‘재발 방지’라는 본래의 목표를 향해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자료’에 주목하는 것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의 ‘원칙’을 상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재단 한일연구소는 지난 10월 2일 일본군‘위안부’ 관계 자료의 현황을 점검하는 전문가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자료 관련 새로운 사업들이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지난 성과와 과제를 확인하고 이후 관련 사업의 생산적 방향을 논의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군‘위안부’ 관계 자료는 피해 실태 자료, 생존자 및 목격자 구술 자료, 단체 활동 자료, 국제법 관계 자료 등 여러 갈래가 있다. 지속적인 세미나로 모든 현황을 점검할 것을 계획하면서, 이번에는 피해 실태를 드러내는 역사적 자료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필자가 관련 자료집의 발간 현황을 설명하고, 역사 전공자인 장원아(서울대학교)가 자료 활용 연구 사례를 발표하였다. 역사 자료 독해에 경험이 있는 심아정(독립연구자), 장수희(동아대학교), 조민지(가톨릭대학교)와 일본군‘위안부’ 주제의 박물관에서 아키비스트로 일하고 있는 고나경(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김서연(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토론자로 참석하였다. 그 외 한일연구소 소속 연구위원들이 참석하여 평소 일본군‘위안부’ 관련 사업과 자료 현황에 대해 품고 있던 문제의식을 공유해 주었다.
필자가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지난 자료의 수집‧정리‧활용 작업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사업 과제를 설정하는 일이었다. 일본군‘위안부’ 자료 관계 사업과 관련해서 생각해야 할 것은, 지난 30여 년간 사업의 성과들을 쌓아 왔는데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역사부정론자들의 ‘위안부’ 피해 부인이 더욱 세를 넓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1938년 3월에 발령된 육군성 부관 통첩 ‘군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과 같이 일본군‘위안부’ 피해 입증에 널리 활용되어 온 자료까지 ‘위안부’ 피해를 부인하는 자료로 활용했다.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공공연한 시행과 실태 은폐라는 이중 전략 속에서 시행되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자료 자체가 아니라 맥락적으로 자료를 엮어 피해 실상을 구성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관점과 역사적 정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피해자 중심 접근의 자료 활용이 가능하다. 자료 발굴‧정리에 비해 역사 연구 성과가 부족하고 전문 인력 인프라가 두텁지 않은 현실은 앞으로 자료 관련 사업을 수립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장원아는 재단이 지난 5년간 발간한 『식민지 조선과 일본군‘위안부’ 문제 자료집』 시리즈의 활용 사례로서 1930년대 한국 사회의 인신매매 비판 담론 연구를 공유하였다. 일본군‘위안부’ 관련 사업으로서 자료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료집 발간의 성과를 넘어 진상규명의 일환이 되는 주제 연구로 발전해야 한다.
재단의 자료집 발간은 군사주의와 식민주의, 그리고 가부장주의를 발판으로 ‘제국’을 지배했던 일제 권력이 어떠한 지배구조를 만들어 내고, 또 이를 어떻게 차별적으로 운용했는지 점검하면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이후의 과제는 발간된 자료집을 발판으로 수많은 주제를 새롭게 제시하면서 ‘연구 위에 분투를 더하며 분투 위에 연구를 더할 것’을 무겁게 요청하고 있다.
재단에서 2020~2025년 발간한 『식민지 조선과 일본군‘위안부’문제 자료집 Ⅰ~Ⅵ』
자료 간 미싱 링크를 넘어 피해자 중심 접근 역사 이해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일본군‘위안부’ 제도 시행기에 생산된 관련 자료들은 피해자 입장보다 일본 군‧정부나 업자 또는 목격자 입장에서 나온 것들이 많다. 공인과 은폐라는 이중 태도 속에서 시행 주체와 목적, 피해자 통제를 둘러싼 전말을 밝힌 채 작성된 독립적인 자료군도 없다. 따라서 관점과 역사적 배경을 모른 채, 자료 한 건 한 건에만 집중하다가는 피해자를 대상화했던 가해자 측의 관점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군사주의를 앞세우고 식민지와 점령지의 희생을 지렛대로 하여 제국을 확장해 갔던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병사의 ‘위안’을 위해 동원되고 이송되고 배치된 여성들은 인권을 박탈당한 피해자였다. 이는 새로운 자료로서 증명할 필요도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후 일본군‘위안부’ 자료 관련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선행 작업에 대한 꼼꼼한 점검과 전문 인력 인프라 구축,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생산적인 논의와 연구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재확인하며, 재단의 일본군‘위안부’ 전문가 세미나는 다음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