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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해, 전염병, 기근은 역사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코로나, 대전환의 시대
  • 김문기,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

김문기,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


부산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부경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주제는 소빙기(Little Ice Age)의 기후 변동이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이다. 현재는 동아시아의 박물학 및 어류 지식 교류에 관심을 쏟고 있다. 부경대학교 박물관장을 거쳐, 한국해양수산아카이브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바다, 물고기, 지식: 근세 동아시아의 어류 박물학』이 있다. 공저로는 『해양사의 명장면』, 『동북아 바다, 인문학으로 항해하다』, 『바다를 읽다: 바다와 인류 문화의 관계사』, 『19세기 동북아 4개국의 도서 분쟁과 해양 경계』, 『한국 지식 지형도: 동양사1』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에는 「17세기 중국과 조선의 소빙기 기후 변동」, 「17세기 중국과 조선의 재해와 기근」 등이 있다.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와 지구 온난화는 이 시대가 위기에 봉착했음을 보여준다. 역사 속에서도 기후 변동, 재해, 전염병, 기근이 인류를 전 지구적 위기로 내몰았던 시기가 있었다. 오늘날보다 평균 기온이 1~1.5정도 한랭했던 17세기의 소빙기(Little Ice Age)가 바로 그때다. 중국에서는 명청 교체가 일어났고, 조선에서는 1백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사망하는 대기근이 두 차례나 있었다. 소빙기의 기후 변동이 동아시아의 역사에 끼친 영향을 연구해 온 김문기 부경대 교수를 만나 당시의 재해와 전염병, 기근이 오늘날에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대담 | 윤유숙, 재단 한국고중세사연구소 연구위원

정리 | 김지현          사진 | 김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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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생님께서는 17세기 동아시아 지역의 기후 변동과 그에 따른 재해, 농업 환경의 변화를 동아시아 3국을 중심으로 비교사적 관점에서 연구해 오셨습니다. 현재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가 완전히 바뀌게 될 거라는 전망이 큽니다. 기존 연구에서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역병 등 재해·재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A. 기후와 재해를 연구한 것이 20년이 넘는 듯합니다. 역사와 기후에 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했던 말들이 생생합니다. “언제부터 기후가 역사의 대상이었나?” “역사 전공자가 기후를 연구한다고?” 사실 저는 이런 말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자랐던 저는 날씨와 자연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생생하게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역사 기록을 펼쳐보면 재해와 기근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군주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라는 말이 상징하듯, 재해와 기근은 개인의 생존은 물론 국가의 존립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연구자들이 재해와 기근 연구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의문을 가졌습니다. 역사의 서술 대상인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만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Q.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준 교훈은 세계 공동의 위기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대응하고 협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염병의 확산이라는 특수한 위기상황에 대한 나라별 대응 양상, 의료 시스템, 정부의 관리 체계, 경제적 지원을 포함한 물자의 분배 시스템 등이 얼마나 원활하게 작동하는지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큰 재해·재난을 겪으며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발전을 한 사례가 있을까요?


A. 재해와 기근이 역사의 발전에 끼치는 영향은 대단히 역설적입니다. 한편으로는 문명을 파괴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게 합니다. 대표적으로 14세기 중반 유럽을 강타했던 페스트는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인구 증가로 파괴되고 있던 산림을 보호하여 경제력을 회복케 하고, 동시에 노예와 금과 향료를 찾아 외부로 눈을 돌리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에는 한랭한 날씨와 기상 이변으로 기근과 전염병이 이어져 마녀사냥이 극에 달했지만, 동시에 이런 기상 현상을 정확하게 해석하려는 시도도 함께 이루어져 갈릴레오와 뉴턴으로 상징되는 과학 혁명의 시대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또한, 1783년에는 일본의 아사마 화산과 아이슬란드의 라키 화산이 폭발하여 몇 년 동안 이상 저온과 기상 이변이 계속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텐메이 대기근(1783~1787)이 발생하여 수십만 명이 아사하고, 전국적인 폭동과 식인 행위가 만연했습니다. 이때의 대기근은 예정되었던 통신사의 일본 방문을 취소하게 하기도 했지요. 흉작이 계속되던 프랑스에서는 굶주림에 시달리던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폭발했습니다. 인류에게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이상을 제시했던 프랑스 대혁명 또한 기상 이변으로 인한 흉작과 기근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Q. 농사가 삶이 근본이었던 과거에는 역병과 천재지변이 큰 재난이었을 것 같습니다. 17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소빙기의 기후 변동이 현저한 시기였는데, 소빙기는 인류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간략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소빙기의 기후 한랭화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난 17세기는 잦은 자연재해로 흉작과 기근, 전염병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인류 역사에서 인구 감소가 전 지구적으로 나타났던 거의 유일한 시기였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폭동과 반란, 전쟁이 발생하여 사회를 위태롭게 했습니다. 예컨대 유럽은 30년 전쟁을 시작으로 영국에서는 청교도 혁명, 프랑스에서는 프롱드의 난, 스페인에서는 카탈루냐의 난 등 곳곳에서 반란과 혁명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스텐카 라진의 난이 발생했고, 오스만 제국 또한 심각한 재정 위기로 폭동과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위기는 ‘신대륙’ 아메리카에서도 발견됩니다. 유럽의 역사학자들은 일찍부터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여 ‘17세기 위기론’을 제기했습니다. 최근 지오프리 파커는 소빙기의 영향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면서 이 시기를 ‘지구적 위기(Global Crisis)’로 표현했습니다. 오늘날 지구가 온난화로 인해 생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처럼, 17세기 역시 지구적 생태 위기의 시대였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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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빙기의 기후 변동에 따라 동아시아도 기근을 겪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17세기에 발생한 기근에 대한 동아시아 3국의 대응 양상은 어떠했는지요?

 
A. 17세기의 소빙기 기후 변동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세계적인 ‘동시성’입니다. 예컨대, 제주에 표류했던 하멜 일행이 한양으로 옮겨 온 1654년 겨울은 매우 추워 동해가 얼었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도 아열대인 절강의 바다가 얼었고, 영국의 템스강이 결빙하는 등 당시의 한랭화는 동시적 현상이었습니다. 17세기 동아시아에서는 크고 작은 기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대기근은 1640년대 초반, 1670년대, 1690년대 후반에 발생했습니다. 1640년대 중국에서는 숭정 13~15년(1640~1642)에 대기근이 발생하여 명조를 멸망으로 이끌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칸에이 대기근이 발생했습니다. 1670년대 조선에는 경신대기근(1670~1672)이 발생했는데,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엔포 대기근(1674~1677)이 있었습니다. 1690년대 조선에서는 을병대기근(1695~1699)이 발생하여 수백만 명이 사망했고, 일본에서는 겐로쿠 대기근이 일어났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대기근에 대한 동아시아 3국의 대응은 각기 달랐습니다. 중국은 1640년대 대기 근으로 왕조 교체가 이루어졌지만, 17세기 후반에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조선은 17세기 전반보다 후반에 훨씬 심한 기근을 겪습니다. 한편, 일본은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에 더욱 극심한 기근이 덮칩니다. 텐메이 대기근(1783~1787)과 텐포 대기근(1833~1837)이 바로 그것입니다.

 

 


Q. 17세기는 국제관계 측면에서도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명·청 교체, 두 번의 호란이 발생했는데 기근이 이러한 동아시아의 격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시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요?

 

A. 17세기 인류는 문명이 시작된 이후 가장 추운 시기를 경험했습니다. 소빙기의 기후 변동으로 인한 기근은 17세기 동아시아의 격변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명조를 멸망으로 이끌었던 농민 반란은 1620년대의 계속적인 가뭄과 기근으로 발생했습니다. ‘도적은 기근으로 인하여 일어나고, 기근은 도적으로 인해 심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숭정 13~15년(1640~1642)에 발생한 대기근은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워 ‘기황(奇荒, 대단히 드문 대기근)’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였습니다. 이상 저온, 극심한 가뭄, 메뚜기 떼의 습격, 그리고 전염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기록적이었습니다. 이때의 대기근은 소멸 직전까지 몰렸던 농민 반란군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어, 불과 3년 만에 명조를 멸망으로 내몰았습니다.
한편, 조선의 경우 17세기 후반에 극심한 기근을 겪었습니다. 한여름에 눈과 서리가 내리고, 기근과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백만에 육박했습니다. 특히 숙종 을해년과 병자년을 휩쓴 을병대기근(1695~1699) 때에는 기근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끝내 청조로부터 5만 석의 쌀을 지원받아야 했습니다. 이때의 ‘청곡(請穀, 청에 곡식을 요청함)’은 청과 맺은 항복 약조인 정축화약(丁丑和約) 체결 및 명조 멸망 60주기와 겹쳐 청에 대한 원수를 갚고 치욕을 씻자며 ‘복수설치(復讎雪恥)’를 외치던 조선 사대부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고, 결국 대보단(大報壇) 건립의 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대기근은 조선 후기의 지배 이데올로기 형성에도 깊이 연관되었던 것입니다.

 

 

<바다,물고기,지식: 근세 동아시아의 어류박물학> 도서

 

 


Q. 2019년에 발표하신 ‘근세 일본의 동의보감 어류 지식 연구’는 조선통신사를 매개로 조선과 일본의 지식인 간의 어류 정보 및 지식 교환을 검토한 연구입니다. 최근 연구에서 ‘어류(魚類)’에 중점을 두신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A. 소빙기 기후 변동을 연구했던 제가 최근 동아시아 3국의 어류 지식 교류를 살펴보고 있는 것이 다소 의아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 둘 사이를 연결해준 것은 ‘청어’라는 물고기였습니다. 기후 변동을 연구하면서 제가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역사의 배경이 되는 ‘자연’의 변화입니다. 기후 변동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식물과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기후가 한랭해지면 작물의 생방북방한계는 남쪽으로 이동합니다. 강남의 ‘동정감귤’을 연구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고, 실제로 당시 기러기가 훨씬 남쪽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다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이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청어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17세기를 전후하여 한류성 어종인 청어가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대거 출현하여 잦은 흉작에 시달리던 사람들을 살찌웠습니다. 결국 이런 연구는 물고기를 둘러싼 지식의 교류, 곧 동아시아의 어류 박물학에 관심을 갖게 했습니다. 앞으로는 물고기를 넘어, 동아시아 문명에서 동물이 갖는 의미를 연구할 계획입니다. 주지하듯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의 바이러스 또한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이것 또 한 환경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교수님과의 대담을 통해 역병 등 재해가 기후 변화와 무관치 않음을 알게 됩니다. 또 인간 생활의 기반인 환경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하면 역사의 중요한 동인을 놓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분야를 연구할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전례가 없는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환경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더욱 중요한 문제로 부상할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환경사를 넘어, 지구사(Global History) 및 인류세(Anthropocene)로까지 논의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거대 담론의 형성 과정에서 차분하고 탄탄한 역사학적 접근이 더욱 절실해 지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역사를 연구하며 느꼈던 즐거움은 의외로 상상력을 많이 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기존의 관점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질문은 역사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입니다. 이런 면에서 환경사는 대단히 창조적인 분야라고 봅니다. 더욱 더 많은 연구자가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 <기후,역사를 상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