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商周)시기 중국의 청동예기(靑銅禮器)는 고대 중국의 찬란한 청동 문화를 보여주는 데 손색이 없다. 따라서 학자들은 청동예기를 중원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중원문화의 주변 전파를 이야기할 때 청동예기를 하나의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제시하곤 한다. 다시 말해, 중원 이외의 지역에서 나타나는 청동예기는 곧 중원문화 진출의 결과라는 것이다. 본서에서 다루는 요서遼西 지역 또한 마찬가지다. 요서 지역에서는 1950년대부터 중원식 청동예기가 드문드문 출토되기 시작했다. 중국학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중원 국가의 정치적인 진출과 관련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본서는 바로 이 중원식 청동예기가 요서 지역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시기인 기원전 15세기에서 기원전 5세기까지를 시간적 범위로 삼고, 이와 함께 다양한 계통의 문화가 나타나는 요서 지역을 지리적 범위로 삼아 이 지역에 존재했던 다양한 문화적 존재 및 그들 사이의 상호 길항 관계를 논하고 있다. 즉 드문드문 나타나는 중원계 문화 요소를 중국 학계의 주장처럼 중원문화의 적극적인 진출로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검증하는 차원에서 마련되었다.
본서는 총 여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김정열의 「요서(遼西) 청동 문화의 전개–기원전 15세기에서 기원전 5세기까지-」는 본서의 총론으로 요서 지역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물질문화 자료에 따라 각 유형의 고고 문화에 대한 편년과 분기 그리고 문화 내용과 사회상을 살펴보고, 아울러 이 지역의 사회 복합화 양상과 시간적 추이에 따른 변화 등에 관한 문제를 검토하였다.
외래문화 유입에 대한 토착문화의 대응 결과
오대양의 「기원전 14~11세기 요서지역 토착문화와 중원문화의 상관성 검토-묘제 양상의 비교를 중심으로-」는 기원전 14세기에서 기원전 11세기 무렵, 요서지역에 있었던 ‘위영자문화(魏營子文化)’의 무덤을 중심으로 요서지역으로 유입된 중원문화가 토착문화에 어떻게 선택적으로 수용되었는지를 연구하여, 요서지역에서 확인되는 중원계 문화 요소가 중원세력의 직접적인 진출이 아닌 외래문화의 유입에 대한 토착문화의 대응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최호현의 「요서지역 출토 상주商周 청동용기 연구-황하중류유역과의 비교를 중심으로-」는 이러한 양상이 비단 무덤뿐만 아니라 청동기 및 청동기 교장갱(窖藏坑 청동기를 매장한 구덩이)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밝혔다. 이유표 또한 「요서 출토 상말주초 족씨(族氏) 명문(銘文)에 대한 일고찰」에서 족씨 명문을 비롯한 청동명문에서도 이러한 양상이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연(燕)의 좌절과 북방문화의 남하
서주 왕조가 들어선 후 동북 최전선에 봉건된 연나라는 토착문화와의 충돌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자 노력했다. 민후기는 「연(燕)의 형성 전후 접경의 변화-상商 후기, 서주(西周) 초기 태항산맥(太行山脈) 동쪽 출토 청동기 명문의 분석-」에서 연과 관련된 중원계 고고유적 및 이 지역에서 출토된 상주 청동 명문을 정리 분석해, 연국이 비록 요서 진출을 지속해서 타진하였으나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지리적으로 후퇴하는 양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후석의 「하북~요서지역 북방계통 청동단검문화의 전개와 성격-하가점상층문화와 옥황묘문화를 중심으로-」는 하북~요서 지역으로 북방계 청동기 문화가 남하하여 중원계 문화가 퇴축되는 것을 북방지역 고대 종족인 산융(山戎)과 관련지어 논하였고, 더 나아가 청동단검문화가 하북~요서 지역의 문화적 판도를 바꾸게 된 새로운 국면을 창출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소흑석구 98년 5호묘 다뉴동경
요서 지역 청동기 문화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
신뢰할만한 관련 문헌 자료가 극히 부족한 현실 속에서, 고대 요서 지역에 대한 연구는 고고학적 자료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고고학적 자료는 가치중립적으로 연구되어야 하지만 ‘중화민족주의’같은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는 순간, 또 개인적 혹은 집단적 이기주의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학문적 주화입마라는 무저갱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본서의 연구 또한 이러한 달콤한 유혹의 최전선에서 진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집필진이 가치중립적인 태도로 이러한 유혹을 극복해 낸 것이 본서의 중요한 성과라 생각한다.
요서지역은 중원계 문화가 북상하고, 북방계 문화가 남하하는 문화적 접경지대로, 다양한 문화가 상호작용하면서 독특한 문화적 양상을 나타냈다. 특히 중원계 문화요소가 드문드문 나타나는 기원전 15세기에서 기원전 5세기에 이르는 기간, 중원계 문화요소는 토착문화의 중원문화에 대한 주체적 수용과정, 그리고 중원세력의 진출에 대한 북방문화의 대응 과정 속에서 나타나게 된 부분적인 현상일 뿐 결코 중국 학계 일각의 주장처럼 중원문화의 적극적인 진출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이는 본서의 학술적 성과 중 가장 큰 성과라 할 것이다.
본서의 출간을 위해 집필진은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수정과 보완을 반복했다. 만족할 줄 모르는 학문적 욕심으로 본서 출간에 큰 추진력이 되어준 집필진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