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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새 책
세월 앞에서도 바래지지 않는 상처
  •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

전후 최악의 한일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마치 컴컴한 터널 속에 갇힌 듯하다. 일본 정부는 부정하고 있지만 2019 7월에 단행한 수출규제의 직접적 원인은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소송 결과 때문이었다. 그리고 징용 소송 이후 일본 정부가 들고 나온노동자론, 국내 경제학자들의강제성 부정 주장은 터널의 입구를 막는 과정이었다. 필자는 이 모두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역사를 외면하거나 단편적으로 인식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b

 

사실을 직시해야 현실이 보인다


 

터널에 갇힌 한일관계는 당분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녕 이 문제를 풀 해법은 없는 것일까? 재일사학자 강덕상 선생은 십여 년 전최근 크게 높아진 일본 사회의 대한(對韓)내셔널리즘의 배경은과거 식민지 시대의 매듭을 짓지 않은 미완의 상태이기 때문이라 진단하고 해결의 출발점을한일 민중이 사실의 무게를 아는 것이라 이야기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사실의 무게를 느끼려는 노력은 한일관계의 해법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사실의 무게복잡다단하고, 사실의 무게를 느끼는 과정은오랜 시간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중 하나다. 일본에 대한 촉구나 규탄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의 무게를 아는 노력에 비해촉구나 규탄은 쉬운 방법이다. 또 다른 해법은해방 74주년을 맞은 오늘날 우리는 왜 일본을 비판하는가하는 문제의식을 명확히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빗겨난 채로 답습되어 온 역사


 

개인적으로 사실의 무게를 느낄 필요성을 절감할 기회가 많았다. 그 첫 기회는 11년간 정부에서 강제동원 진상규명 업무의 실무를 담당하면서였다. 기자는 물론이고 시민들을 상대로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강제동원 문제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때문에대일감정이라는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원인을 시민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에서 찾았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도 부족하지만, 편향된 내용도 적지 않다. 시민들이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강제동원 문제와 대일역사문제를 접하는 창구는 교과서와 미디어이다. 이 가운데 교과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미디어 종사자들도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교과서에 실린 내용은 오류도 많은데다가 가르칠 기회도 거의 없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근대사를 배웠다는 이들은 드물다. 이런 교육과정을 거친 이들이 사회에 나와 기자, PD, 영화감독, 작가로서 역사물을 제작하고 있다. 미디어의 전달 효과를 위해, 또는 제작 기간에 쫓겨 검증하지 않은 오류를 담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 미디어가 시민들에게 자극과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두 번째 기회는 일본의 메이지시대 산업유산 등재 과정이었다. 등재 대상 후보 지역 가운데 강제동원과 관련된 장소에 역사성을 반영하라는 한국을 포함한 피해 국가의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관련 부처와 함께 자료와 논리를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이 입은 피해 내용을 객관화하는 과정과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일본을 상대로 하는 대응 과정 중 많은 부분이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오류와 한계를 수정하고 극복한 논리를 만드는 일이었다. ‘해당 장소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며 일본 기자가 가지고 온 자료는 국내의 유명한 포털사이트 사전에 올라온징용설명 자료였다. 한국의 교과서에도 실린 내용이었지만 오류였다. 한국 학계와 사회 스스로 만든 장벽도 있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치르기 위한 일본의 전시체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피해실태만을 강조한 성과들이 낳은 결과이기도 했다. 편협한 인식의 틀은 우리 스스로 강제성의 범주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러한 학계의 오류는 미디어를 통해 사회에 확산되어 왔다.  


 

그렇다면 학계는 왜 이러한 오류를 생산했는가? 이는 1960년대 척박한 연구 환경에서 자료에 접근하지 못하고, 인식을 객관화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시작한 오류를 후학들이 검증하지 않고 답습한 결과다. 또한 학계의 오류만이 아니다. ‘어머니 배가 고파요라는 글씨가 새겨진 일명벽사진이 강제동원 시기와 무관하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국내에도 알려졌다. 그러나 여전히 방송 프로그램의 배경 사진으로, 그리고 국립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의 전시물로 자리하고 있다. 눕다시피 한 상태로 힘겹게 탄을 캐는 사진이나 뼈가 앙상한 노동자의 사진 등 조선인 강제동원의 사진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진의 주인공도 조선인이 아니다. 일본인이 주인공이다


 

일본 사회가 생산하는 오류도 적지 않다.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에 조선인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하시마 주민은 강제동원 이전에 도일한 일반도일 조선인과 강제동원 시기의 이입노무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적지 않은 구술기록집과 사진집을 통해 탄광산과 토목건축공사장, 군수공장에서 일했던 어린아이들을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작고한 다큐멘터리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林 えいだい)가 남긴 사진집에는 조선 아이들 사진이 있다. 맨 앞줄에 앉은 헐렁한 국민복 속에 작은 얼굴을 한 앳된 아이들. 이 사진집은 일본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런데 2015 2월 산케이(産經) 신문의 1면 기사 제목은하시마에 소년 광부는 없었다였다. 한국의 경제학자도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들에게소년 광부는 없었다. 조선인 강제동원도 없었다를 확산하고 있다.


 


 

연구자로서 사실을 통해 진실에 한걸음 더 다가서다


이런 상황에서 1995년부터 줄곧 강제동원피해 경험자를 만나고 자료를 접하고 있는 연구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는 개인적 고민을 넘어서 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과제였다. 이 책은 그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하나다. 동북아역사재단의 교양총서를 통해 그간 피해자와 언론인, 시민들을 통해 체득한 여러 고민을 조금이라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한다. 물론 얇은 책에 모든 고민을 담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강제동원이 조선인만의 피해가 아니고 아시아태평양 민중이 함께 겪은 피해라는 점, 그리고 남한만의 문제가 아닌 남북한의 공동과제라는 점을 명확히 전달하고 싶었다. 최소한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이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동네의 이야기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이 책을 통해 암울한 한일관계의 터널이 열리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