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은 지난해 동북아역사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동북아역사재단 뉴스〉에서는 재단 이사장, 자문위원장 등을 역임한 유공 인사와 학계 원로를 모시고 지난 10년 동안 재단의 활동성과를 점검하고, 재단의 발전을 위한 고언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번 호에는 이훈 전 재단 독도연구소장에게 동북아 역사와 영토 문제의 추이와 현황을 바탕으로 2017년 재단의 발전 방향에 관한 조언을 듣는다.
이 훈 한림대 국제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전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장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일본 츠쿠바대 대학원에서 지역연구와 역사인류학을 연구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으로 재직하였으며, 2007년부터 동북아역사재단 수석 연구위원으로 독도연구소장, 한일관계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해수부 독도지속가능이용실무위원회 위원과 외교부 독도정책 자문위원을 맡고 있고, 주요 저서로 《대마도, 역사를 따라 걷다》, 《외교문서로 본 조선과 일본의 의사소통》 등이 있다.
Q. 먼저 재단 퇴직 이후의 근황을 여쭙고 싶습니다. 현재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연구 주제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네요.
이 훈 퇴직 후에는 강의와 연구 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어요. 현재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주제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인데, 대일본 정책사적 관점에서 연구를 하는 중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조선시대 한·일관계를 연구해왔는데, 시대적으로 안전거리가 확보된 시기를 연구하다 보니 그동안 한·일관계를 지나치게 현상 위주로만 보려는 측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동북아역사재단처럼 과거의 역사가 외교 현안이 될 수 있는 곳에 근무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료를 보는 눈이 더 생긴 것 같아요. 임진왜란 이후 국교회복 교섭에 임하는 조선의 입장이라든가 외교 환경이 지금의 한·미·일 관계와 비슷한 측면이 많거든요. 어쨌든 재단에 근무하면서 현실감각이 좀 생겼달까요? 이 감각을 살려서 조·일 간 통교체제 문제를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한·일관계 연구를 보면 주어가 모두 ‘조선’으로만 되어 있어, ‘사람’이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최종 결정 주체로서 조선의 국왕들도 고민을 많이 한 사람들인데, 그래서 지금부터는 한·일관계 연구에서도 ‘사람’이 보이는 연구를 좀 해보려 합니다.
Q. 동북아 역사와 독도 현안이 외교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재단은 연구, 정책 대안 제시, 실행(교육과 홍보)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였지만, 셋 사이에 균형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재단이 학술 연구 집단이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정책 대안 제시와 실행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도 있는데, 독도연구소장으로 재직할 때 이런 것 때문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이 훈 재단이 한·일 간 역사와 독도 현안이 외교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연구는 물론이고 정책 대안까지 제시하는 기관이다 보니, 국내외에서 볼 때 재단에 대한 선입견이 큰 것 같아요. 독도연구소장으로 근무했을 당시 일본에서 처음 만난 연구자들 중에는 내가 연구자로 자기소개를 했음에도, 체구도 작은 나를 마치 군인이나 투사처럼 강하고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거든요.
그런데 재단에 근무하다 보니 정책 제언을 하기 위해서도 제일 중요한 게 바로 전문성의 축적이었어요. 전문성이란 적어도 상대방이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 혹은 그 이상의 전문지식과 예측력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재단이 연구기관으로서 학문적으로 신뢰할 만한 성과물을 많이 축적해서 위상을 확립한다면 내·외부적 혼란과 편견도 저절로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재임 기간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이나 관심을 기울인 분야가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혹시 아쉬웠던 부분은 없으셨는지요?
이 훈 제가 재단에 2007년 입사한 뒤로 독도연구소에만 4년 남짓(2010년 4월∼2014년 2월) 근무했어요. 재단의 역할은 연구뿐만 아니라 교육까지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름은 독도연구소지만 교육, 홍보 등의 업무를 다 하도록 되어 있었죠. 연구위원들도 독도 연구 자체보다는 외부 대응에 시간을 많이 써야하는 구조였고요.
그래서 연구소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가장 비중을 두었던 부분은 독도에 관한 내부 연구역량을 강화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2011년 <영토해양연구>라는 저널과 2014년 국제 홍보를 위한 영문저널
Q. 지난 10년 동안 한·일 간 역사 문제와 독도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격화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 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동안 재단은 무엇을 했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이런 질문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재단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10년 간 재단의 활동을 평가해 주신다면?
이 훈 재단을 퇴직한 지 벌써 3년째인데, 어느 새 저도 고객의 눈으로 재단을 평가하는데 익숙해진 것 같아요. 재단 직원이 아니라 고객으로서 재단을 평가하는 기준이라면 ‘한·일 간 역사문제와 독도에 대한 쟁점을 넘어 더 깊이 무언가를 알고자 할 때, 과연 재단에 신뢰할 만한 학문적 성과물이 있는가’ 하는 부분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저는 재단 창립 6~7년 차였던 2010년 이후 소속 연구위원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간행된 사료집이 큰 성과라 생각해요. 예를 들면 《일본 서기》 역주집, 그리고 독도와 관련해서는 대학 연구소와 지자체 등에서 일본 관련 사료집이 많이 나왔지만 재단 독도연구소에서 간행한 고사료집이 가장 신뢰할 만하다 볼 수 있지요.
Q. 재단에 재직하던 당시와 지금 한·일 사이 역사와 독도 갈등의 양상, 또 해결을 위한 당사국의 노력에 어떤 변화나 차이가 있다고 보시나요?
이 훈 우선 한·일 간 독도 갈등과 관련해서는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재단을 떠난 후 독도에 대한 최근 일본 측 연구 성과를 보면, 연구 방향이 조금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예를 들면 최근 일본에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가 역사적으로 일본의 고유영토는 아니었다”라고 부정하면서, 국제법적으로 무주지 선점에 무게를 두는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어요. 그동안 일본 외무성의 입장은 “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적으로도 일본의 고유영토이다”라는 주장이었거든요. 이러한 일본의 고유영토론 주장을 한국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적 관점에서 일본 스스로 부정하는 성과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죠. 아베 정부의 한·일간 독도 갈등 해법은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인데, 일본 측의 이러한 연구 동향 변화가 과연 일본 정부의 입장과 아무 관련이 없을까 우려되기도 하고, 아마 어떤 식으로든 일본 정부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Q. 많은 사람들이 동북아 갈등 심화의 가장 큰 책임은 일본 아베 정부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베 총리와 정부 각료들은 이를 개선해야 한다거나,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렇게 해서 얻는 이익은 무엇이고, 혹 다른 노림수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훈 재단 독도연구소에서 오래 근무해 본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본다면, 요즘처럼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으로 한·일 간 역사 갈등이 깊어진 상황에서 아베 정부가 의도적으로 독도 도발 수위를 높일 경우, 그동안 일본 정부가 독도에 대해 주장해 오던 역사학적 고유영토론 입장을 어느 날 갑자기 버릴 수도 있겠구나 싶어요. 따라서 재단에서도 역사적인 부분과 국제법적인 부분에 대해 끊임없는 사료 발굴과 연구를 병행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Q. 한 · 일관계를 전공한 전문 연구자로서 관련 분야를 공부하는 신진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 텐데,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훈 오랫동안 주변 연구자들을 보고 또 공부하면서 든 생각은, 연구자들이 한·일관계에 대해 현재의 필요와 시각에 따라 과거의 사료를 필요한 부분만 도려내어 연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편하고 쉽기는 하지만, 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로서는 가장 피해야 할 자세인 것 같아요.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다 보면, 그 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전체상, 실태적인 부분들은 다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시대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거든요. 이제부터라도 한·일관계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료가 왜 그런 모양으로 남아 있는지 기초에 충실한 연구 자세를 가지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네요.
Q. 지난 10년 동안 한·중·일 간 역사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격화된 상황이지만, 재단은 국가와, 국민, 그리고 학계로부터 다양한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재단은 국책연구기관으로서 독자적 역할을 모색하고 있지만 어려운 점이 많은데, 앞으로 재단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조언해 주신다면?
이 훈 연구, 정책, 홍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겠지만, 재단이 정책 연구기관으로서 국내외적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소속 연구위원들이 주체가 되어 기초가 되는 학문적 연구 성과를 축적해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재단의 정체성이 역사 재단인 만큼, 역사 쪽에서 기초가 되는 자료집 발간 등으로 기초 체력을 만드는 것이 힘이 되겠지요. 그리고 경험상, 이러한 성과를 영문화하는 작업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아무쪼록 재단 임직원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하며, 늘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