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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화 <밀정> 속 허구와 사실
  • 김종성(역사학자)

영화 밀정 속 허구와 진실

 

2016년 추석 전에 개봉한 영화 <밀정>은 비타협적 행동주의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의 주요 인물들을 소개했다. 그중 하나는 영화의 주인공인 황옥이다. 영화에서 이정출(송강호 분)이란 이름으로 등장한 황옥은 일본 경찰인지 독립투사인지 알 수 없는 의문의 인물이었다.

     

고려공산당 때부터 시작한 이중첩자 생활

1887년 지금의 경북 문경시에서 황희 정승의 19대손으로 출생하고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낸 황옥은 통감부 시절부터 재판소 서기 겸 통역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서른세 살 때인 19193·1운동을 계기로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가담하더니, 19203월부터는 경기도경찰부 경부(경감급)로 특채되어 독립투사 검거를 전담했다. 이후 황옥은 이중첩자 생활을 시작했다. 경찰 신분을 유지한 채, 러시아 연해주 이르쿠츠크에 근거지를 둔 고려공산당에 가입한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경찰 내부 동정을 독립 운동진영에 넘겨주는 한편, 독립운동 정보를 일본 경찰에 보고했다. 동시에, 독립투사들에게 국경통행증을 만들어주고 여비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렇게 돈을 잘 쓰고 지나치게 남을 돕는 행적은 상하이 임정에서도 있었다. 이로 인한 의심의 눈초리를 견디지 못하고 상하이를 떠났던 것이다. 이런 행보는 고려공산당에서도 재연되었다. 동지들의 의심을 견디지 못하고 여기서도 이탈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그가 의열단에 가담한 뒤 이중첩자가 된 것으로 그렸지만, 실제로는 고려공산당 때부터 그 생활이 시작됐다.

고려공산당을 떠난 황옥은 의열단과 인연을 맺었다. 영화에서 김우진(공유 분)이란 이름으로 나온 김시현과의 만남을 계기로 의열단에 가담한 것이다. 황옥이 의열단에 가담해서 벌인 일이 <밀정>의 소재인 폭탄 밀반입 사건이다. 1923년 초 의열단장 김원봉과 첫 대면을 가진 황옥은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거사를 벌인다는 목표 하에 폭탄 밀반입 작전에 가담했다. 영화에서는 정채산(이병헌 분, 실제 인물은 김원봉)과 김우진의 계략에 말려 어쩔 수 없이 가담한 것처럼 묘사됐지만, 실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의열단의 움직임이 황옥을 통해 경찰에 보고됐고, 경찰의 동정 역시 그를 통해 의열단에 전달됐다. 양측이 서로를 훤히 들여다보는 상태에서 대결을 펼칠 수 있도록 황옥이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경찰이 인지한 상태에서 작전이 진행됐으니 이 작전은 처음부터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황옥과 김시현은 폭탄의 국내 반입에는 성공했지만, 경찰에 체포되는 바람에 거사의 착수로 나아가지 못했다.

황옥의 보고를 토대로 경찰이 의열단원들을 체포했으므로, 그가 일본 쪽 밀정이었다는 판단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일본 경찰의 눈에도 의심스러웠다. 일본 경찰은 그가 주요 정보를 빠뜨린 채 제때 보고하지 않는다고 의심했다. 이런 판단 하에 일본 경찰은 황옥을 의열단원들과 함께 법정에 세웠고, 법정에서는 그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그래서 황옥은 공식적으로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 간 사람이 되어버렸다.

     

의문투성이인 행적과 김원봉의 평가

그런데 황옥은 16개월 만에 건강을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받더니, 재수감된 뒤에는 6개월 만에 다시 석방되었다.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도합 2년 밖에 살지 않았으니, 그가 밀정이라는 의심이 한층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김원봉을 비롯한 의열단의 핵심 정보에 대해서는 끝내 함구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직이 와해되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석방된 뒤에는 일본 경찰에 복귀하지 못했다. 해방 뒤 잠시 반민특위 활동을 하다가 한국전쟁을 계기로 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모든 행적이 의문투성이인 인물이다.

많은 사람들은 황옥을 일본 밀정으로 몰아세웠지만, 한때 그와 함께했던 김원봉은 훗날 의외의 평가를 내놓았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발행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에 수록된, 독립투사 홍가근(김원봉의 제자)에 대한 종로경찰서의 1934년 심문조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김원봉으로부터 황옥에 관한 말을 들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홍가근은 황옥은 경기도경찰부 간부이지만 과거에 의열단원이 되어 활동하다가 불행히도 관헌에 체포된 사람이라고 김원봉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답변했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황옥을 의심하지만, 김원봉은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황옥은 더욱 더 알 수 없는 인물이다.

     

황옥과 김시현, 그리고 김상옥

영화에서 황옥을 형이라 부르며 독립운동에 끌어들인 김시현은 실제로는 황옥보다 나이가 네 살 많았다. 영화 속 김시현은 자신의 사진관을 찾아온 황옥과 술자리를 갖고 호형호제하면서 친해졌지만, 둘의 만남은 영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3·1운동 이후 의열단 투쟁에 가담한 김시현은 1920년 경남 밀양에 폭탄을 반입했다가 대구경찰서에 체포됐는데, 이때 김시현을 서울까지 호송한 경찰이 바로 황옥이다. 밀양에서 서울까지 가는 동안 황옥은 타고난 붙임성을 무기로 김시현과 친밀해졌고, 김시현이 석방된 뒤에는 여비도 주고 국경통행증도 만들어주면서 그의 활동을 지원했다. 이로 인한 신뢰가 쌓여 1923년 폭탄 밀반입 사건을 합작했던 것이다.

황옥·김시현 같은 핵심 인물은 아니지만, <밀정> 초반에 김장옥(박휘순 분)이란 이름으로 등장한 의열단원 김상옥의 실제 활약상은 영화 그 이상이었다. 폭탄 밀반입 사건이 있기 얼마 전인 19231월 국내에 잠입한 김상옥은 총독부에 폭탄을 던지기 전 시험 삼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가 쫓기는 처지가 되었다. 그 뒤 서울역 근처인 후암동에서 일본 경찰과 121로 싸워 사망 1, 부상 3명의 손실을 끼친 그는, 남산에서 1500의 포위를 당했다가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다. 며칠 뒤 출생지인 서울 종로구 효제동에서는 일본 군경 약 1,000명과 대치하며 세 시간이나 시가전을 벌이는 동안 일본 군경 16명을 사살했다. 마지막 한 발의 총알을 확인한 그는 권총을 자기 머리에 대고 스스로 순국의 길을 선택했으니, 그의 최후는 영화에서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이렇게 주인공보다 훨씬 더 화려한 인물을 영화 초반에 카메오처럼 등장시킨 상태에서 이중첩자 황옥의 갈등과 행적을 차분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이 영화 <밀정>의 특징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