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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한 · 중 역사교과서 연구 국제 학술회의
  • 오병수(한중관계연구소 실장)

한 · 중 역사교과서 연구 국제 학술회의1020~21일 경인교대에서 역사교과서에서 근대사 기술의 방향이란 주제의 한·중 역사교과서 연구 국제 학술회의가 열렸다. 고대사에서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중국 역사교과서의 한국 관련 서술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고, 또 그것은 개별 사실의 오류와 함께 자국사 및 세계사를 구성하는 서사 체계와 관련된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회의는 한·중 양국 역사 교과서의 근대 서사 및 개념의 형성 과정을 중심으로 한 이론적 배경을 검토함으로써 교과서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실천 가능한 대안적 서술을 모색하려는 것이 취지였다. 이를 위해 양국의 자국사와 세계사 근대 국가에 대한 개념과 서술, 그리고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려는 10편의 글이 발표되었다.

     

먼저 남상구 재단 연구위원은 일본의 자국사(일본사), 세계사 교과서의 국민 국가 관련 내용 요소와 서술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전체 논의에 참고할 수 있는 방향을 제공하였다.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자국의 근대 경험을 근대국가라는 개념으로 매우 긍정적으로 서술하면서, 특히 러일전쟁의 승리가 아시아 민족들의 독립과 근대화 운동에 자극을 주었다는 식으로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자오야푸(赵亚夫, 首都师范大学) 교수와 멍중제(孟钟捷, 华东师范大学) 교수는 중국 세계사교육 내용 체계의 변화와 내재 논리”, “중국 중학교 세계사 교육의 백년의 변천과 당대 특징, 미래 도전이라는 글을 통해, 근대 이래 중국이 추구해온 세계사 이론과 교과서 서술을 회고하면서 현재 당면하고 있는 과제를 소개하였다. 자오야푸 교수는 1980년대 이후 중국 사학계는 세계 역사의 수직적 발전과 수평적 발전 두 가지를 살펴보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다양한 서구 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음을 소개하였으며, 멍중제 교수 역시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각국은 타자에 대한 인식과 세계 속 자신의 위치 변화에 대해 끝없이 요구하게 되었고, 역사 교육에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제하고, 중국에서 세계사는 많은 노력으로 이전의 외국사에서는 탈피했지만 교과서 서술과 관련해 여전히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있음을 소개했다.

류승렬 강원대 교수와 최덕규 재단 연구위원은 한국의 자국사 교과서 근대 서술을 분석하였다. 류교수는 대한제국-독립협회에 대한 역대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을 국권(國權=國家)과 민권(民權=人民)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분석하여, 대한제국 말기부터 이른바 변법개화(變法開化) 계통의 한국인 지식인층과 일본인 역사학자들은 당시 유행한 문명론적 입장에 따라 대한제국을 정치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한 존재로 취급한 반면, 독립협회를 한국 최초의 계몽·민권 단체로서 근대 개혁운동의 선봉으로 평가하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해 왔음을 지적하였다. 또 유 교수는 이러한 서술의 배경에는 성장 제일주의, 서구 중심의 계몽적 근대 지상주의, 본질을 회피한 근대론 등 서구 추수의 근대 인식이 내재되어 있음을 밝히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최덕규 재단 연구위원 역시 제국주의 침략기 근대 한국에서는 자주 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외교 방략으로써 조선 중립화론(中立化論)’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실제 시도가 있었음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교과서는 유길준의 중립화론 등 개인적 구상 수준의 논의만을 부분적으로 소개한 반면, 대한제국 차원의 외교적 노력에 대해서는 소홀하였음을 지적하였다.

한편 리판(李帆, 北京師大)과 취쥔(瞿駿, 華東師大) 교수는 중국에서 근대와 근대 국가개념의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취쥔은 중국에서 근대 국가 관념을 수용하고 보편화 시킨 제도적 기제로 근대 학교에 주목하였다. 리판 교수는 청말 민초 중국에서 편찬된 자국사와 외국사 교과서에 서술된 국치(國恥)’망국(亡國)’ 담론에 주목하여, 이는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한 학당장정(學堂章程)’, ‘과정표준(課程表準)’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진화사관에 기초한 근대 역사학과 대중의 민족주의적 역사인식과의 상호 작용 산물임을 설득력 있게 밝혔다. 이러한 양국 학자의 자국사 서술에 대한 성찰적 연구는 동아시아 근대 전환기 양국이 처한 상황과 근대화 노선 및 서로 다른 역사인식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였고, 이와 연관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이번 회의에서는 현행 역사 교과서 서술에 대한 비판과 함께 대안적 서술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필자는 중국에서 근대적 서사가 이루어지는 1930년대 이후 중국 역사교과서의 동아시아 인식을 추적하였다. 특히 1930년대 이래 중국의 역사교과서는 과거 청대 판도와 흡사한 주변 세계를, 국가 이익을 위해 열강으로부터 보장받아야 할 완충지역으로 이해하였고, 그러한 인식이 현재 한국전쟁 등 냉전사 서술을 통해 여전히 지속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장한림(張漢林, 首都師範) 교수 역시 우리는 어떠한 동아시아 근대사를 서술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중국의 현행 역사교과서는 정치 경제 및 민간 교류의 측면에서 더욱 중요성이 부각되는 동아시아 지역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동아시아적 관점을 반영한 동아시아 근대 서술을 제안하였다. 특히 장 교수는 중국의 역사 교과서에서 한국 관련 서술은 일본에 비해 매우 산만하고 미흡하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 또 강선주(경인교대) 교수는 현행 역사교과서의 근대 서술이 대부분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만큼 비() 서구 세계의 역사 경험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서술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른바 혼합전유’, ‘심성’, ‘인식에 대한 이해 등 새로운 방법에 대한 모색을 제안하였다.

     

참가자들은 회의를 통해 양국이 근대 경험과 당면 과제 측면에서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는 점에 새삼 주목하면서, 그것은 서구적 근대 경험에서 추출된 시간 개념으로 치환할 수 없는 동아시아의 공통적 역사 경험에서 기원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였다. 특히 지난 5년간 주제와 회의 형식을 달리하였지만,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상호 신뢰와 공감을 쌓아 온 만큼 향후 더욱 발전적인 논의를 기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