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한-베 공동학술회의
지난 5월 28일, 베트남 하노이 베트남사회과학한림원 회의실에서 재단과 베트남사회과학한림원은 공동으로 국제학술회의 ‘근현대 한국과 베트남의 대외 인식과 외교’를 개최하였다.
두 기관은 2009년부터 학술교류를 이어오고 있으며, 2024년에는 양 기관 간 학술교류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새롭게 체결하였다. 올해로 열한 번째를 맞이한 이번 공동학술회의는 양 기관이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와 협력의 성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교류사업이다.

국제학술회의 단체기념사진
제1세션 「한국과 베트남의 대외 인식」
먼저 제1세션에서는 「한국과 베트남의 대외 인식」이라는 주제로, 시대를 관통하는 양국의 세계관과 국제질서 인식이 논의되었다.
보 쑤언 빈(Vo Xuan Binh)은 1967년 아세안 출범 이후 베트남과 아세안 관계의 변화를 분석하며, 1995년 베트남의 아세안 가입이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가 아니라 오랜 조정과 적응의 결과였음을 설명하였다.
필자는 17세기 일본과 조선에 보내진 베트남 외교문서를 분석하며 당시 베트남이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중국 황제로부터 받는 책봉이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내는 행위라기보다 이미 성립된 권력을 외교적으로 승인하는 절차였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장정수는 명·청 교체기 동아시아 국제질서 변화에서 조선의 중화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분석하였다. ‘중화’가 단순한 영토 개념이 아니라 문물과 질서를 유지하는 문화적 공간으로 이해되었다는 설명은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제1세션 발표와 토론 장면
제2세션 「냉전기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
제2세션에서는 「냉전기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라는 주제로, 독립과 전쟁, 체제 전환 속에서 형성된 외교 전략과 상호 인식이 논의되었다.
쩐 티 프엉 호아(Tran Thi Phuong Hoa)는 호찌민의 독립 외교활동과 국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1919년부터 1954년까지의 활동을 조명하였다. 특히 1954년 디엔비엔푸 승리가 단순한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국제 외교활동과 국내 통합의 성과였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어 쩐 티엔 타인(Tran Thien Thanh)과 쩐 미 하이 록(Tran Thi My Loc)은 도이머이(Doi Moi, 쇄신)정책 이후 베트남 외교정책의 전환 과정을 분석하였다. 베트남의 캄보디아 철수 결정이 아세안 및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은 냉전 종식기 동남아 국제정세를 이해하는 중요한 시각을 제공하였다.
이한우는 베트남전쟁을 다룬 한국 현대소설을 통해 한국 사회 속 베트남 인식의 변화를 검토하였다. 작품 속에는 자유진영 수호라는 공식 담론뿐만 아니라 민족해방전쟁,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생존의 문제 등 서로 다른 전쟁 인식이 공존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제3세션 「탈냉전기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
제3세션에서는 「탈냉전기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라는 주제로,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양국이 어떠한 전략으로 대응해 왔는지가 논의되었다.
응우옌 투이 꾸인(Nguyen Thuy Quynh)은 베트남의 다자·다변화 외교와 국제기구 참여 과정을 분석하며, 베트남이 국제환경 변화 속에서 실용적 외교전략을 통해 경제·외교적 발전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하였다.
김인희는 중국의 문명주의 담론이 한중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였다. 현재 중국이 유교 전통과 사회주의를 결합한 독자적 문명국가를 표방하며 기존 국제질서와 다른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오늘날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제의식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응우옌 티 탐(Nguyen Thi Tham)과 쩐 티 주엔(Tran Thi Duyen)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외교정책의 방향과 한-베 협력의 전략적 의미를 분석하였다. 이들은 한국 외교가 이념 중심에서 벗어나 유연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베트남이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차이를 넘어 협력으로
특히 이번 학술회의는 1945년 이후 냉전 질서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양국의 경험을 함께 돌아보는 자리였다. 이러한 역사적 차이를 반영하듯 일부 토론과 질의응답에서는 다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서로 다른 역사 경험을 이해하고 비교하려는 진지한 대화를 이어갔다. 학술회의 말미에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과 베트남이 서로의 중요한 협력 파트너라는 점에 공감하며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학술회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정용상 사무총장은 “한국과 베트남의 학자들이 서로의 역사적 경험을 비교하고, 때로는 조심스럽지만 진지하게 질문을 나누는 과정 자체가 양 기관 간 신뢰와 학술협력의 깊이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앞으로도 재단은 베트남 주요 연구기관들과의 공동연구와 학술교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