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한일 미래세대 연구자 포럼 <일본에서 본 한일관계>-
지난 3월 13일, 재단 대회의실에서 ‘제2차 한일 미래세대 연구자 포럼’이 열렸다. <일본에서 본 한일관계: 경험, 지역, 표상>을 주제로 한 이번 포럼은 일본에서 한국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신진·중진 연구자 6명의 발표와 이에 대응하는 분야의 한국인 연구자 6명의 토론으로 구성되었다.
2025년 7월에 개최된 제1차 회의가 사회, 역사, 정치를 키워드로 한일 차세대 연구자들의 ‘대화의 창’을 열었다면, 이번 제2차 포럼은 경험, 지역, 표상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통해 식민 지배의 일상에서 해방·패전 후의 기억까지 한일 양국의 역사적 경험이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층적으로 조명하는 자리였다.
일기와 증언으로 되살린 식민지의 삶
포럼은 세 개의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제1부 ‘증언과 일기로 보는 식민지 경험’에서는 개인의 기록과 목소리를 통해 식민지 경험에 접근하는 두 편의 발표가 이어졌다.
하라 도모히로(데이쿄대학)는 1930년에 한 조선인 소년이 쓴 일기를 분석하여, 식민지 서울의 이중성과 소년의 경계적 정체성을 복원했다. 이 일기에는 도시적인 문화생활의 단면과 함께 ‘왜(倭)’라는 표현이나 3·1절 기록의 부재처럼 식민지적 제약 아래 형성된 심성이 드러나 있다.
사카모토 치즈코(리쓰메이칸대학)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증언 속 ‘공장에서 일한다’는 말에 주목하여, 방적 여공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경험이 식민지 산업화라는 배경 위에서 이어지는 양상을 추적했다.
두 발표 모두 식민지의 일상적 삶을 통해 역으로 그 이면을 조명했다고 할 수 있다. 토론을 맡은 기유정(서울대학교)과 이아리(동북아역사재단)는 일기의 특징을 어떻게 한국의 연구 현황과 당시의 사회구조적 맥락 속에 위치시킬 것인지, 또한 어떻게 식민지 출신 여성의 행위성을 사회구조적 취약성과 함께 분석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날카로운 논의를 전개했다.
국경을 넘나든 삶과 지역의 변동
제2부 ‘재한과 재일, 교차하는 지역사’에서는 토지와 사람의 이동을 매개로 식민지시기 한일의 지역사회에서 일어난 변동을 살펴보았다.
가토 게이키(히토쓰바시대학)는 만주 침략 본격화 이후 ‘북선 루트’의 종단항으로 결정된 함경북도 나진·웅기 일대에서 1920년대부터 전개된 대규모 토지 투기의 실태를 분석했다. 일부 일본인 지주와 조선인 유력자가 막대한 이익을 독점하며 식민 지배를 뒷받침하는 지역 권력으로 부상하는 한편, 대다수 주민은 낮은 가격에 토지를 잃는 과정이 상세히 밝혀졌다.
이시카와 료타(리쓰메이칸대학)는 식민지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한국인 가족의 생애사를 에고 도큐먼트(Ego-document)와 구술 자료로 재구성했다. 지연·혈연 없이 도일한 1세가 기독교라는 신앙 네트워크를 통해 가족의 기반을 쌓아가는 과정, 그리고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2세들이 취업 차별 등에 직면하면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체성을 모색해 나간 분화 양상을 구체적으로 추적했다.
토론을 맡은 박한민(동북아역사재단)과 박준형(서울시립대학교)은 나진·웅기 지역의 정치사적 배경과 니가타 지역과의 경제적 연동을 환기하는 한편, 동아시아 화교 경제사에서 재일한국인 가족사로 이어진 발표자의 연구를 재일코리안 연구사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 타진했다.
죽음을 둘러싼 한일의 두 풍경
제3부 ‘해방과 전후, 한일의 기억을 표상하기’에서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과거의 기억이 어떻게 구성되고 변용되어 왔는지를 다루었다.
아오키 요시유키(돗쿄獨協대학)는 1987년 6월 항쟁이 공적 기억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보수정권이 항쟁을 비가시화하고 6·29선언으로 기점을 치환한 반면, 진보정권은 비폭력·평화의 서사를 특권화하면서 노동 해방 등 급진적 측면을 주변화했다는 지적이 주목을 받았다.
후쿠마 요시아키(교토대학)는 전후 일본에서 ‘전쟁 체험’이 세대 간 투쟁의 대상이 되어 온 과정을 추적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전전파·전중파)와 그렇지 않은 세대(전후파) 사이에서 벌어진 피해와 가해 논쟁을 거쳐, 가해 대 현창(顯彰) 구도로 굳어진 과정의 ‘복합성’을 밝힘으로써 오히려 ‘지나간 미래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영진(강원대학교)과 서동주(서울대학교)의 토론에서는 정권 중심 분석을 넘어 ‘실패한 혁명’을 다시 상기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한편, <고질라> 영화의 변천을 통해 ‘대중’의 차원이 제시됨으로써 전쟁 체험 담론을 한층 더 입체화시키는 제안이 이루어졌다.
연구와 토론을 넘어 답사로
이번 포럼은 단순한 연구 발표의 장을 넘어, 한일 양국의 역사적 경험이 서로 연루되어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였다. 각 발표가 품은 주제의 시간적 폭은 넓었지만, 식민 지배와 전쟁이 개인의 삶에 남긴 흔적을 어떻게 ‘함께’ 읽어낼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회의장을 감돌았기 때문이다.
특히 포럼 명칭에 들어간 ‘미래세대’라는 표현에는 한일 학술교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 학술회의 다음 날인 3월 14일에는 참가자들이 함께 DMZ 답사를 하면서 근현대 동아시아의 격동 속에 남겨진 현장을 각자의 자리에서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