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성 관리 역사와 일본군‘위안부’ 문제』(박정애 편, 2025)
마침내, 책이 나왔다. 공동연구 3년 만의 결실이다.
3년 전,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
나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논의가 길어야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는 시기, 그리고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지역에만 한정되어 이루어지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위안소’, ‘위안부’라는 키워드에만 갇혀 사례가 선별되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 중심 접근의 문제 해결 방식을 지지하는 유엔 인권기구들은 피해자의 명예 회복을 위해 일본이 더욱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은 국가 주도 방식의 문제 해결을 도모하면서, 이 문제는 ‘불가역적,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할 따름이다. 돈과 권력의 힘이 작동하는 국제질서의 위계 안에서 일본 정부는 부끄러워하지도, 책임을 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효율적인 전쟁 수행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여성을 병사 등의 성적 도구로 배치하여 인권을 훼손했다는, 이 돌이킬 수 없는 반인도 범죄에 대해서 말이다.
‘재발 방지’로 나아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5 한일합의’에 합의한 한국과 일본은 어째서 이 문제를 ‘불가역적,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일까. 한일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이 문제 전문가들은 어째서 이 문제를 ‘한일 관계’에 한정하여 말을 얹거나 회피해버리는 것일까. 문제 해결을 위한 지난 30여 년간의 연구와 활동, 실천은 어느 지점에서 동력을 잃기도 하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한정된 시공간을 넘어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구조를 살펴보고, 관련 연구를 메타 비평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2022년부터 기획하여 2023년 8월 <내셔널리즘과 성동원, 그 연속과 단절: 국가의 성관리 체제와 일본군‘위안부’ 문제>라는 제목으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관련 주제의 연구 성과를 구해 읽어보고, 일면식도 없는 연구자에게 메일을 보내 참가를 요청했다. 다케모토 니나, 하야시 요코, 레기나 뮐호이저가 그렇다. 학술회의에서는 새롭거나 이전보다 더욱 예각화한 주장들, 지지와 반대 의견, 앞으로 해야 할 실천 과제에 대한 많은 논의가 오갔다. 참석한 어느 기자는 젠더 관점의 사유 자체가 낯설다거나, 얽히고설킨 이야기들 속에서 논의 주제의 해상도가 낮아졌다는 의견을 주기도 했다.
국제학술회의 종합토론 현장(2023. 8. 11.)
국제학술회의 포스터(2023. 8. 11.)
더 많은 목소리가 책의 이야기와 연결되기를
학술회의 후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고, 원고를 다듬어 책을 내기로 했다. 2024년에 초고가 완성되었고, 2025년 보완과 편집을 거쳐 드디어 책을 완성했다. 재단 연구총서로 출간된 『제국의 성관리 역사와 일본군‘위안부’ 문제』다. 이 책의 주제는 제국 확장을 위한 성 관리의 역사와 그 범죄성을 못 보게 하는 관점 및 용어 정치였다. 역사부정론이 공론장의 ‘쟁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젠더와 탈식민주의 관점에 따라 일본군‘위안부’ 역사 이해가 이루어져 왔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이 책의 편집 책임자로서 작년에 필자들의 원고를 읽고 또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쟁점을 이루어 토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 책에는 현재의 연구 경향에 기댄 채 이루어지고 있는 독일이나 일본, 미군 등 각각의 사례 비교, 제국주의 일본의 성 관리 역사를 본국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인 점령지나 식민지의 실태를 중심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의 정치성이 담겨 있었다. 또한 젠더 관점 없이 이 주제의 연구와 발언, 나아가 문제 해결 활동이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제기를하고, 평시와 전시의 폭력을 구분하여 논의하면서 ‘폭력의 세계’를 지속시키는 인식의 문제점을 짚는 필자들의 원고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과거의 사건으로 남겨두려는 경향이 강해진 현재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책 발간과 동시에 온라인 북토크를 기획했다. 나는 북토크에 참가한 모든 이들이 피해든 가해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에 연결되어 있는 자신의 목소리를 각성하고 발언해주기를 바랐다. 책을 먼저 읽어본 이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해준 책”이라고 감상을 전해주는 것에도 힘을 얻었다. 2026년 3월 27일 온라인에서 열리는 북토크를 앞두고 나는 다음과 같은 홍보글을 적었다.
이 책은 일본군‘위안부’ 이야기가 전형적인 서사에 갇혀 오늘날 실천적 담론의 힘을 잃고 있는 것에 위기의식을 가지고 기획되었습니다. “매춘부라서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어떻게 혀끝의 칼날이 되어 피해자에게 닿을 수 있는지, 역사적 접근을 통해 현재 세계에 질문하고자 합니다. 공동연구팀은 ‘재발 방지’라는, 어쩌면 진부해 보이는 이 문제 해결의 목표에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를 위해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여성의 몸을 동원하고 배치하고 이용해 온 ‘지속되는 폭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일본군‘위안부’는 물론, ‘가라유키상’부터 미군‘위안부’까지 ‘연결된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며, 여기에 우리‘들’의 목소리‘들’ 또한 잇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식민지 경험으로부터 ‘보편’의 재구성 시도
4시간 예정으로 진행된 북토크 행사는 필자들이 각자의 글을 소개하는 제1부와 토론자들이 각자의 관심 주제나 책 내용의 맥락에서 자유롭게 ‘토크’하는 제2부로 구성하였다. 모든 접속자들이 책을 다 읽지 않은 채 참가하는 상황에서 패널들이 자유롭게 주제를 설정하여 ‘토크’함으로써 책 안으로만 논의를 가두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북토크 포스터. 행사 취지에 공감한 바람의 연구자 트리(tree)님이 재능 기부했다.
온라인 북토크에 접속하고 있는 참가자들의 재단 오프 현장
다케모토 니나는 ‘가라유키상’의 구술을 청취할 때 생길 수밖에 없는 ‘듣기’의 어려움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위안부’ 등 피해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왔는지 질문하였다. 하야시 요코와 장수희는 ‘공창제’와 ‘위안부’ 제도, 그리고 평시와 전시의 폭력을 분절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폭력과 폭력 문화를 비가시화한다고 지적했다. 후지메 유키는 연구자나 활동가들 사이에 내재되어 있는 차별적 성별 규범과 국가주의 인식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실태 인식을 왜곡시킨다고 비판했다. 백재예는 일본군‘위안부’를 전시 성폭력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하며 시작하는 국제적 연구들이 정작 역사적 맥락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 또는 분쟁의 배경이 된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의 역사적 맥락을 빼놓고는 일본군‘위안부’ 연구는 물론 이와 연계된 전시 성폭력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라유키상’에서 ‘공창제’하의 여성들, 일본군‘위안부’, 독일국방군의 ‘매춘여성’, 미군‘위안부’까지 제국의 성관리 체제하에서 변함없이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성적 대상으로 이용되어 온 여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배경과 구조, 성격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연속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보편적 여성 인권’으로서의 일본군‘위안부’ 역사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 토론자들은 이 변하지 않는 폭력적 세계의 본질에 대해 젠더 및 탈식민주의 관점을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질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이 책이 트랜스내셔널한 패러다임을 통해 시공간을 관통하는 구조적 성폭력을 연속적으로 보고자 시도했다고 평가하였다. 다중의 시공간성, 다층적 세계 구성의 가능성 속에서 변하지 않는 폭력 구조에 놓여 있는 무수한 ‘묽은’ 존재들을 ‘보편’으로 감각할 수 있는 연구자의 예민함이 요구된다는 장원아의 토론은 이번 북토크의 성과를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북토크 행사인 데다 동시통역 기능을 이용하는 온라인 줌 프로그램에 대한 작동 미숙까지 겹쳐 행사가 매끄럽지 못했다. 그럼에도 60명이 넘는 접속 참가자가 거의 끝까지 함께해준 것에 감사를 보낸다. 또한 재단 및 연구 동료들이 돌발상황을 수습하고 진행을 이어가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무겁게 생각하면서도, 함께해준 이들 덕분에 다음 사업 기획과 북토크를 상상하게 되어버린다. 동료들의 급진적 친절함과 상호 돌봄이 만들어내는 동력은 언제나 다음 전진을 상상하며 백래시를 뚫고 나갈 수 있게 한다. 함께 목소리를 이어준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사와 뜨거운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