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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의 발견
일본 고문서로 읽는 조일 통교사
  • 윤유숙 한일연구소 연구위원
자료총서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시리즈
 
 
재단은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자료총서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전 6권을 발간했다. 이 사료집은 에도시대 일본이 조선과의 통교를 기록한 고문서를 번역하고 역주를 달아 펴낸 것이다. 이 자료들은 2026년 3월 동북아역사넷에 모두 구축되어 온라인으로도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이 사료들이 담고 있는 내용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짚어 보고자 한다.
 
사료집에 수록된 고문서의 상당수는 에도시대 일본에서 대조선 관계를 전담했던 쓰시마번이 기록한 이른바 ‘소케기로쿠(宗家記錄)’, ‘소케몬조(宗家文書)’이다. 당시 쓰시마번은 다이묘 ‘소(宗)’ 가문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번정(藩政)을 비롯하여 조선 통교에 관해 번이 생산한 문서군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종가기록’이라 부르겠다.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은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초서체(崩し字)로 쓰여 있는 원문을 정자체로 탈초한 본문과 한글 번역문, 역주를 배치하고, 가장 뒤에 사료 원문을 첨부했다. 
 
그동안 근세 조일 관계사 연구의 기초 사료는 조선 정부가 편찬한 관찬 사료가 주를 이루었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조선시대 일본 관련 사료의 역주 작업 또한 이러한 관찬 사료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조선왕조실록』, 『증정교린지』가 대표적인 예다.
 
반면 한국에서 일본 사료를 번역·역주한 책은 매우 드물다. 종가기록처럼 근세 문어체(候文) 문장이 초서로 쓰여 있는 경우가 많고, 이를 정확히 읽고 번역할 수 있는 전문 번역자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단은 일본 사료 해독에 대한 연구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과거 한일 교류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넓히기 위해 2015년부터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을 순차적으로 발간해 왔다.
 
과거 양국 관계의 구조와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 일본 사료가 지닌 가치와 유효성은 조선 사료만큼이나 중대하다. 이에 17세기 초에 발생한 외교적 사건, 외교와 무역의 시스템, 조선통신사, 조선 관계에서 에도막부와 쓰시마의 역할 등 근세 조일 통교를 구성하는 주요 주제가 기록된 기초 사료를 선정하여 작업했다. 모두 학계에는 이미 잘 알려진 기록들이다.
 

도서명

출판 연도

수록 사료

사료 소장처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야나가와 시게오키 구지 기록
2015
柳川調興公事記錄
국사편찬위원회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사쿠마 진파치 보고서, 죽도문담
2018
佐久間甚八報告書(가칭)
通航一覽, 朝鮮國部108
竹島文談
瀧本誠一 編, 日本經濟叢書13, 日本經濟叢書刊行會, 1915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16071624년 조선통신사 기록
2020
慶長十二年     從朝鮮之勅使於紫野宿之事
寛永元甲子年朝鮮信使來聘江戸往來日帳
東京國立博物館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조선인내빙기 보력
2020
朝鮮人來聘記 寶曆
국립중앙도서관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1636년 조선통신사 기록-관영병자신사기록
2023(상),
2024(하)
寬永丙子信使記錄
東京國立博物館
 
근세한일관계사료집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전 6권)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야나가와 시게오키 구지 기록(柳川調興公事記錄)
 
이 사료는 17세기 초 쓰시마번에서 일어난 주종(主從) 간의 내분인 야나가와잇켄(柳川一件)과, 조선과 일본의 국교 재개 과정에서 쓰시마가 자행한 ‘국서개찬(國書改竄)’의 실상을 기록한 것이다. 번주 소 요시나리(宗義成)와 가신 야나가와 시게오키(柳川調興) 사이에 발생한 분쟁, 막부의 심리, 최종 판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담고 있다. 또한 막부의 최종 판결 이후 조선과의 통교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쓰시마와 막부가 주고받은 교섭 내용, 쓰시마 측의 서약서, 각종 관련 문서의 필사본도 함께 수록하고 있다. 이 기록들은 요시나리의 아들 소 요시자네(宗義眞)가 번주로 있던 1683년에 ‘柳川調興公事記錄’이라는  제목으로 정리되었다.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Ⅱ: 
사쿠마 진파치 보고서(佐久間甚八報告書), 죽도문담(竹島文談)
 
『사쿠마 진파치 보고서』(가칭)는 1772년 에도막부의 관리 사쿠마 진파치가 쓰시마의 내정과 대조선 무역 실태를 조사하여 막부에 올린 보고서이다. 이 기록에는 쓰시마의 산업 발달 정도, 조선 무역 현황, 대조선 무역이 쓰시마 재정에 미친 영향, 왜관 운영 실태 등이 담겨 있다. 쓰시마는 1767년 무렵부터 ‘조선 무역이 단절되었다’는 허위 주장을 내세워 막부에 재정 지원을 요청했다. 막부는 이 주장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고 쓰시마의 내정을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 사쿠마를 쓰시마에 파견한 것으로 보인다. 
 
『죽도문담』은 1695년경 쓰시마 번사(藩士) 스야마 쇼에몬(陶山庄右衛門)이 동료 번사인 가시마 효스케(賀島兵助)와 주고받은 서한으로, 이른바 ‘울릉도쟁계’에 관한 스야마의 견해를 담고 있다. 조선과의 외교 교섭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당시 쓰시마번 내부에서는 향후 교섭 방침을 놓고 대책을 검토하였다. 스야마는 울릉도의 상황을 막부가 정확하게 인지하도록 먼저 보고한 뒤 다시 교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쓰시마는 방침을 바꾸어 막부에 다시 보고했고, 막부는 1696년 ‘일본인의 울릉도 도해’를 금지했다.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Ⅲ: 
1607년․1624년 조선통신사 기록 
 
쓰시마 종가기록에는 방대한 분량의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막부의 허가를 받아 통신사를 초빙하는 단계에서부터 통신사가 에도성(江戶城)에서 쇼군에게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귀국하기까지 사행단을 호행했던 쓰시마로서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외교와 무역을 수행하는 데 있어 ‘고사선례(故事先例)’의 중요성을 간파했던 쓰시마는 통교의 모든 상황을 기록으로 남겨 훗날 판단의 근거로 삼고자 했다. 
 
다만, 쓰시마가 조선통신사에 관해 본격적으로 기록한 것은 1636년 사행부터이고, 조선이 편찬한 『통신사등록』도 1643년 사행부터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임진왜란 이후 초기의 통신사행을 기술한 ‘단독 사료’는 사행록을 제외하면 여기에 수록된 두 편의 사료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양국 관계가 경직되어 있던 상황에서 파견된 17세기 초 사행 기록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지만, 기록 체계가 정립되기 이전인 만큼 내용은 비교적 소략하다.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Ⅳ: 
조선인내빙기 보력(朝鮮人來聘記 寶曆)
 
이 사료는 원래 조선총독부 소장 고서(古書)로 분류되어 있었고, 저자와 작성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1764년 통신사행을 기록한 종가기록인 『보력신사기록(寶曆信使記錄)』(총 130책, 게이오대학 소장)과의 관련성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료의 특징은 다양한 회화 자료가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행단의 구성원을 지위별로 나누어 에도성에 등성할 때와 평상시의 모습을 전신 그림으로 묘사했으며, 이들이 착용한 의복, 관(冠), 모자, 휴대한 악기와 깃발의 용도까지 함께 기록해 두었다. 또한 이동할 때의 행렬도, 에도성 의례 당시 양국 참석자 전원의 배치도까지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그림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가 매우 풍부하다. 사료 전체의 구성이 마치 조선통신사에 관한 사전지식이 없는 독자에게 ‘조선인’이라는 이국인 사절단과 그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의례를 소개하는 한 권의 ‘다이제스트’ 서적을 연상시킨다.
   
내빙기1 내빙기2 내빙기3
『조선인내빙기 보력』에 나오는 그림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Ⅴ(상, 하):
1636년 조선통신사 기록-관영병자신사기록(寬永丙子信使記錄)
 
이 사료는 총 8책 14권으로 구성된 종가기록이다. 상권(1~4권)에는 야나가와잇켄의 경과와 일본에서 통신사 초빙을 준비하는 과정, 즉 쓰시마에서 진행된 막부의 조사 내용과 ‘조선 마상재’의 에도 공연 등이 기록되어 있다. 하권(5~14권)에는 통신사가 조선에서 에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도중 각지에서 이루어진 접대 내역, 국서 교환 의식, 닛코 도쇼구 참배, 통신사의 귀국, 쓰시마에서의 접대, 막부가 통신사에게 보낸 답례품 등을 기록했다. 
 
1636년 통신사행은 야나가와잇켄 직후 막부의 명령으로 추진되었다는 점, 쇼군의 외교 칭호를 ‘일본국대군(日本國大君)’으로 정하고, 일본 국서에 일본 연호를 사용하며, 이테이안(以酊庵)에 교토 고잔(五山)의 승려를 파견하여 조일 외교문서 작성에 참여하게 하는 등 새롭게 정비된 제도가 적용된 사행이었다. 따라서 이 사료는 조선통신사 연구는 물론 17세기 전반 조일 외교 시스템의 변화 및 야나가와잇켄의 평가를 살피는 데에서도 2015년 발간된 『야나가와 시게오키 구지 기록』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두 건 모두 이른바 ‘승자(번주 소씨)에 의해 성립된 기록’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관일병자사료
 
관일병자사료1   관일병자사료2
 『관영병자신사기록』 원사료
 

양질의 1차 사료 번역물은 연구자와 일반 독자 모두에게 조일 통교의 생생한 역사 현장을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사료의 해독을 통해 얻은 역사 인식은 오늘날의 한일관계, 나아가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될 수 있다. 현재 한일 양국에서 근세 일본 사료를 장기적인 계획 아래 번역해 학술서로 발간하고 있는 기관은 재단이 유일하다. 그간의 작업이 전통시대 동아시아 국제관계 연구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 이 분야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넓히는 데에도 기여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