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임직원 워크숍 기록-
지난 4월 17일 모처럼 회색빛 사무실을 벗어나 봄나들이.... 아니 역사현장답사를 위한 우리 재단 워크숍을 떠났다. 출발을 기다리는 버스 창밖에는 벌써 녹음이 우거지는 듯했다. 최근 갑작스러운 초여름 날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버스에 몸을 맡기고 강변북로를 달리다 보니 어느새 파주를 지나 연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경기도 북부라서 그런지 나무에 아직 푸르름이 다 오르지 않았고, 꽃잎도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창밖의 회색빛이 서서히 초록빛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차장 밖으로 보이는 재단 건물 입구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호로고루성(瓠蘆古壘城)이다.
1990년 발굴조사를 통해 발견된 호루고루성은 아차산 고구려 보루와 함께 서울 및 수도권지역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고구려 유적이 되었다. 이 성은 한탄강변의 수직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잘 정비된 주차장에서 성터로 향하는 길 오른편엔 홍보관이 있다. 홍보관은 작은 규모지만 고구려와 호로고루성에 관한 주요 정보를 잘 설명하고 있다. 또 내부에서 성 쪽으로 낸 창을 통해 조망하는 풍경도 시그니처 포인트 중 하나다.
동벽 앞에서 설명하는 정동민 연구위원
동벽 앞에서는 고구려사를 전공한 한중연구소 정동민 연구위원의 설명을 들었다. 5세기 고구려 장수왕의 백제 강습과 거점성의 축조, 한탄강 지역이 갖는 지리적 조건 등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고구려 특유의 굽도리 축성 방식 즉 성벽의 물림쌓기 기단부는 환도산성 혹은 오녀산성 등 만주 지역을 답사하지 않아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벽에 올라 내려다본 한탄강 줄기는 화산지형 위에 형성되어 여타의 강과는 다른 풍광을 보여 주었다.
두 번째 방문지는 전곡선사박물관이다. 전곡리는 한탄강의 물돌이로 만들어진 평지와 구릉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이곳은 동아시아 최초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Acheulean Handaxe)가 발견된 곳이다. 1978년 미군병사 그렉 보웬(Greg Bowen)이 우연히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 구석기 연구의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2011년 4월 이곳에 전곡선사박물관이 개관했다.
전곡선사박물관 전경(출처: 전곡선사박물관 홈페이지)
박물관 입구
전곡선사박물관은 번쩍이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외형에서부터 눈길을 끈다. 국제공모를 통해 설계된 건물은 원생동물의 형태를 띈 외관과 이동생활을 했던 구석기인이 거주했을 법한 동굴을 연상시키는 내부 구조를 기본 골격으로 삼고 있다.
주 전시실은 “인류 진화의 위대한 행진”을 테마로 약 700만 년 전의 투마이(Toumai, 사헬란트로푸스)를 비롯해 약 1만 년 전의 만달인까지 총 14개의 화석인류를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그중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루시(Lucy)도 포함되어 있다.
루시(Lucy)는 1974년 에티오피아 하다르(Hadar) 계곡에서 발견된 약 318만 년 전의 인류 화석이다. 도슨트를 해주신 이미란 학예사의 설명에 따르면 ‘루시’라는 이름은 발굴 당시 비틀스(Beatles)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즈(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노래가 연상되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인류진화의 위대한 행진
(앞에서 두 번째 원인이 루시)
비틀즈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앨범
화석인류 복원 전시가 인류 진화의 긴 시간을 보여준다면, 전곡리를 대표하는 구석기 유물들은 이곳이 한국 구석기 연구에서 갖는 의미를 직접 보여준다. 1978년 연천 전곡리를 세상에 알린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주 전시실 입구에 자리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고, 지난 3월부터 공개된 초대형 주먹찌르개는 관람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마지막 코스는 한탄강 주상절리길 1코스인 구라이길이었다. 철원을 비롯해 연천, 포천 일대는 우리나라 내륙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화산지형이다. 약 54~12만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신생대 이 지역의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된 현무암과 주상절리 그리고 한탄강 주변의 자연 절벽은 생경한 지형과 경관을 만들어냈다. 그 경관을 따라 포천시 영북면 일대에 주상절리길이 조성되어 있다. 주상절리길은 총 6개의 코스로 구성되었는데, 각각 구라이길, 가마소길, 벼룻길, 멍우리길, 비둘기낭 순환코스, 화적연길로 이름 붙여졌다.
한탄강 주상절리길 전체 네이버 지도와 1코스 구라이길
이번 워크숍에서는 구라이골출렁다리 입구에서 출발하여 강변을 따라 Y자형 출렁다리를 거쳐 비둘기낭폭포 주차장까지 총 4.4km 정도를 걸었다. 데크길처럼 평탄한 길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중간중간 가파른 계단도 있었다. 그러나 잠시 눈을 돌리면 용암대지에 침식 활동으로 생성된 아름다운 한탄강의 절벽과 절경이 펼쳐졌다. 게다가 서울보다 북쪽에 있다는 이유로 이제야 푸르름과 꽃망울이 올라와, 상춘의 느낌도 덩달아 즐길 수 있었다.
Y자형 출렁다리에서 바라본 한탄강 절경
마지막 도착 지점에 다다르자 Y자형 출렁다리가 나왔다. 다리는 바닥이 철제망으로 되어 있고, 사람의 이동과 바람의 세기에 따라 흔들거림이 변화무쌍했다. 몇몇은 고소공포증 때문인지 다리에 오르기를 망설이기도 했지만, 다리 중간에 이르자 눈 앞에 펼쳐진 장관에 감탄했다. 세상사가 다 그런 것처럼, 어느 정도의 난관을 지나야 비로소 만끽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는 듯하다.
약 한 시간 반의 걷기를 끝으로 우리는 다시 돌아오는 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겨울을 지나 완연한 봄이 오고, 어느새 초여름 같은 날씨도 맞이했지만, 사무실 일이나 개인사에 집중하다 보면 생동하는 봄을 놓치기 쉽다. 무엇에든 몰입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가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워크숍은 역사 현장을 직접 보고 배우는 시간이었을 뿐 아니라,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리프레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우즈(Woods)의 드라우닝(Drowning)이라는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빠지지 말자며 빠지는 노래(Drowning)처럼 이번 위크숍은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