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극에 스며든 일제의 침탈
일제강점기 한국 연극은 근대극의 형성과 발전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도 근대적 문화공간으로서 극장이 건립되었고, 극단을 중심으로 연극을 생업으로 하는 제작자, 배우, 무대 기술자 등이 등장하였으며, 연극을 향유하는 관객층도 형성되었다. 전통 연희와 다른 방식의 새로운 ‘근대적’ 연극 관행이 만들어진 것도 바로 일제강점기이다.
그런데 근대적 문명에 민감했던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식민지 조선에 근대극이라는 새로운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경유지로서 일본의 문화적 가치가 스며드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식민지 시기 형성된 한국 근대극의 태생적 한계 같은 것일지 모른다. 그러한 여건 속에서도 당시의 한국 연극은 식민지 현실을 무대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연극을 통한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어쩌면 그 면면한 흐름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 연극이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연극이 자율적이고 자연스러운 경로를 따라 발전해 나가도록 놓아두지 않았다. 『금지된 무대, 동원된 연극: 일제의 연극 통제』는 일제의 간섭과 침탈이 한국 근대극의 자연스러운 발전을 어떻게 방해하였는지 그 다양한 양태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제강점기 한국 근대극의 발전 과정을 따라가면서 일제의 침탈이 어떤 방식으로 개입, 작용하였고, 결과적으로 한국 연극 발전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는지 서술하고 있다.
비판적 연극을 배제하고 봉쇄한 검열과 공연 중지, 연극인 구속
『금지된 무대, 동원된 연극: 일제의 연극 통제』에서는 연극에 대한 일제의 침탈 양상을 세 시기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앞의 두 시기에는 검열이나 공연 중지, 나아가 연극인에 대한 인신 구속 등 ‘문제되는 연극’을 무대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 시기인 강제합병에서 3.1운동이 발생하기 전까지 1910년대에는 전통연희를 배제하면서 일본 신파극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침탈이 발생하였다. 풍속과 위생을 앞세운 경찰의 극장 공간에 대한 단속으로 ‘눈물연극’으로 대표되는 신파극이 1910년대 주류 연극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둘째 시기인 1920~1930년대(3.1운동에서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전까지)에는 사회비판적 신극, 특히 카프 연극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연극에 대한 침탈이 강화되었다. 이 시기의 연극 통제는 사전 검열을 통한 공연 금지는 물론, 공연장 임석 경관에 의한 공연 중지 등 문제 되는 공연을 물리력으로 막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920년대 중반 흥행취체규칙이 만들어진 것도 당대 연극계에서 당국의 단속이 필요한 공연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방식의 침탈은 극단 신건설 사례처럼 치안유지법 등을 통해 일단 인신 구속한 상황에서 극단 해산계를 제출하도록 강제하여 극단의 활동 자체를 원천봉쇄한 경우이다. 반면 사회질서 관점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 연극에 대해서만 공연을 허가함으로써 연극의 흐름을 통제, 관리하였다. 검열과 공연 중지가 반복되면서 연극인들의 ‘자기검열’ 기제가 작동하였고, 결과적으로 당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훼손하면서 체제 순응적 공연으로 나아가도록 길들여졌다.
1930년대 출판법 위반으로 기소된 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극단 신건설 관계 연극인들
왼쪽부터 강호, 김태진, 이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일제감사대상인물카드)
연극을 국가 전쟁 체제에 동원한 ‘연극 진흥’
셋째 시기인 중일전쟁 이후 해방까지는 일제 당국이 적극적으로 연극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침탈이 이루어졌다. 특히 조선연극협회가 출범한 이후에는 극단과 연극인에 대한 직접 관리체계가 만들어지며, 공연 작품과 활동 방식 모두 총독부 경무국이 직간접으로 관리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활동 방식을 종합한 것이 1944년 조선총독부령으로 제정된 「조선흥행등취체규칙」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당국이 지도하고 후원하는 방식으로 국민연극경연대회나 이동공연이 대규모로 전개되는데, 외형적으로는 당국에서 연극 진흥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시기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국책을 따르지 않는 연극이나 연극인에 대해서는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강력하게 배제하면서 일제의 시책을 선전하는 ‘국민연극’에 한정하여 지원을 강화하였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연극인에 대한 사상 훈련을 강화하여 그 내면을 개조하여 지배하였기 때문에 이 시기의 연극 침탈이 가장 고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시기에는 일제 당국의 연극에 대한 지원이 늘어날수록 연극에 대한 침탈이 더욱 강화되었던 셈이다.
당시 매일신보사에서는 이동공연 전용 차량(매신교화선전차)을 제작하여 전국을 누비며 선전공연을 하였다.
사진은 경기도 과천에서 진행되었던 공연 장면이다. (『매일신보』, 1943.5.12.)
일제 말기에는 기예자증명서를 발급받은 예술인만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사진은 경기도에서 발급한 음악 분야 기예자증명서(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자료)
일제의 연극 통제는 ‘문명의 얼굴을 한 침탈’
일제강점기 연극 분야에서 진행된 침탈 과정은 이식, 검열, 공연 중지, 연극인 구속, 국책연극의 진흥 등 다양한 양태를 보인다. 시기별로 주도하는 양태는 다르게 나타나지만 커다란 흐름으로 보면 식민지 시기 전체를 일관하여 일제의 연극에 대한 통제는 지속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전면화되고 고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일제의 침탈이라 하면 우리나라의 자원을 빼앗아 가지고 나가는 이출의 양상을 보이지만, 연극과 같은 문화적 영역에서는 일제가 우리 연극에 미친 다양한 행위, 특히 일본에서의 관례나 제도를 이입하는 방식의 침탈이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일본을 경유하고, 일본 연극계의 매개를 통해 우리 근대극이 형성, 발전되었기 때문에 크든 작든 일본의 영향을 제외하고서는 우리 근대극의 역사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제의 강점하에 있던 식민지 조선의 연극에 대한 침탈이 외형적으로는 근대적 관행의 도입이나 그 발전의 양태를 띠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문명의 얼굴을 한 침탈’이 전 시기를 관통하는 기본 성격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해방 이후 연극사 연구에서는 일제의 연극 침탈에 대한 서술은 ‘암흑기’로 퉁치고 넘어가거나 아예 누락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을 통해 그 침탈의 전반적 양상을 살펴봄으써 한국 근대연극사에 대한 시선의 균형점을 찾아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