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칙령 제41호 고시 이전 울릉도 현지조사
1900년 10월 25일은 대한제국에서 칙령 제41호를 제정하여 강원도에 울도군을 신설하고, 울도군수가 울릉 전도(全島)와 대섬(竹島), 독도(石島)를 관할하도록 한 날짜로 잘 알려져 있다(관보 고시는 1900년 10월 27일). 칙령 제41호가 나오기 직전까지 울릉도에 무단으로 들어와 체류하면서 조업을 하거나, 목재를 불법으로 벌채해 가는 일본인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1876년 조선의 개항 이후, 울릉도는 대한제국 시기까지 한 번도 개항장으로 지정된 적이 없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울릉도에 불법 체류하는 일본인의 현황을 조사하고, 이를 근거로 일본 측에 조약 위반이란 점을 들어 항의하려고 1899년과 1900년 두 차례 조사 관원을 파견하였다. 1899년에는 부산해관에 근무하던 세무사 서리 라포르트(Emile Laporte, 羅保得), 1900년에는 내부(內部) 관원으로 울릉도 시찰위원에 임명되었던 우용정(禹用鼎)이 울릉도로 출장을 다녀왔다. 우용정이 출장을 갈 때 일본 측도 현장 합동조사를 위하여 부산영사관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아카쓰카 쇼스케(赤塚正助) 영사관보(領事官補)를 파견하였다.
이들은 울릉도까지 다녀온 후 시찰한 결과를 보고서로 남겼다. 두 차례의 출장 사이 원산영사관에 근무하던 다카오 겐조(高雄謙三)가 마야함(摩耶艦)을 타고 울릉도까지 도항하여 현지를 정탐하기도 하였다. 1900년을 전후로 한 시점, 울릉도를 둘러싸고 한일 간 다양한 조사활동이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1901년까지 이어져 부산해관에 근무하던 스미스(F. J. Smith)가 울릉도 출장 후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이를 발췌 번역한 『황성신문』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이들이 남긴 보고서는 1900년 전후 시기 울릉도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자료라 할 수 있다.
자료집의 구성과 성격
이 자료집에서 역주 작업을 진행한 울릉도 출장 관련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1899년 다카오 겐조와 마야함장 마쓰모토 아리노부(松本有信)의 보고서, 1900년 우용정과 아카쓰카 쇼스케의 보고서, 1901년 스미스 보고서이다. 특히 우용정의 보고서가 수록된 『울도기(欝島記)』는 현재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한적실 육당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이외의 자료는 모두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원본이 소장되어 있으며, 아시아역사자료센터(アジア歷史資料センター)를 통해서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다.
단, 메이지(明治) 시기에 생산된 일본 측 공문서는 육필(handwriting)로 작성되어 있기 때문에 원본을 보기 위해서는 초서로 흘려 쓴 글자를 판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자료집에서는 이러한 원문을 탈초하여 입력하고, 역주작업을 하여 가독성과 이해도를 높였다. 또한 각 문서별로 출전을 표기해 향후 자료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도를 높였다.
『1900년 울릉도 시찰위원 관계자료집』(박한민 편, 동북아역사재단, 2024.)
자료집의 1부 연구 편에는 필자가 2024년 학회지에 발표한 두 편의 논문을 수록하였다. 2부 자료 편에는 1899~1901년까지 울릉도 출장보고서와 관련 자료의 원문, 그리고 이에 대한 역주 작업의 결과물을 실었다. 대한제국 시기 울릉도와 관련된 최근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자료집에 수록한 자료를 적극 활용하고 분석하였기 때문에 1부와 2부는 상호보완적 성격을 가진다.
보고서와 외교문서, 신문기사를 폭넓게 활용한 성과
1부 연구 편에는 총 2편의 글을 수록하였다. 첫 번째 「1900년 전후 울릉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한일의 조사단 파견」에서는 현지조사를 위해 울릉도에 파견된 한일 양국 관리가 남긴 보고서와 외교문서, 신문기사 등을 두루 검토하였다. 그 결과 울릉도 도감이 재류 일본인의 물품 거래에 부과한 세금은 ‘수출세’가 아니라 조선 후기 장시나 포구에서 부과하던 잡세 성격에 가까운 수수료(구문, 구전)라고 보았다. 일본 측 기록에 나오는 ‘수출세’란 표현에는 비개항장이었던 울릉도에 일본인들의 거류를 묵인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일본인이 작성한 문서에 나오는 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대한제국 정부의 울릉도 내 일본인 퇴거 요구에 일본 정부가 응하지 않은 것은 이 시기 러시아가 관련된 마산포 조차, 의화단사건 등 국제정세의 변동이 깊이 맞물려 있었다는 사실까지 고려해야 함을 검토하였다.
두 번째 「1901년 부산해관 스미스의 울릉도 출장보고서 연구」에서는 스미스가 남긴 영문보고서를 기존에 알려진 다른 자료와 비교 검토하였다. 부산해관 이선청 서리(Acting Harbour Master)로 재직하고 있던 스미스가 영문으로 작성한 보고서는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소장된 『세관사무관계잡건(稅關事務關係雜件)』에 들어가 있다. 여기서는 기존에 널리 알려진 『황성신문』 수록 국한문 번역 기사 및 일본 지방지의 관련 기사와 내용을 대조하기 쉽게 표로 만들었다. 영문본과 번역본을 대조해 본 결과 당시 울릉도 내 사회상을 보여주는 러시아 군함의 울릉도 기항, 한국 관리들의 곡물 교역에 관련된 울릉도민 김성술(金性述)의 사망사건 발생 등 내용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덧붙여 스미스의 출장에 동행하였던 관계자로 부산해관 관리 김성원(金聲遠)과 아라키 하루하타(荒木春端)에 대해서도 추적이 가능한 자료 내에서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력을 소개하였다.
마야함장의 울릉도 현지조사와 일본 수로부의 자료 활용
1899년 9월 25일 마야함을 이용하여 울릉도에 도착한 원산영사관 서기생 다카오 겐조는 기상 여건이 좋지 않아 7시간 정도만 체류할 수 있었다. 다카오는 섬에 건너와 있던 일본인들과 접촉하여 이들의 퇴거를 명하였고, 일본인의 울릉도 내 거류 현황, 시마네현(島根縣) 및 돗토리현(鳥取縣)과의 거래 현황, 생산물 등을 조사하였다. 울릉도 상황에 대해서는 마야함의 함장 마쓰모토 요시노부도 다카오와는 별도로 조사한 보고 기록을 남겼다.
마쓰모토가 조사한 울릉도 관련 기사 가운데 일부는 일본 해군 수로부에서 발간한 『수로보도(水路報道)』(1900),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1907), 『일본수로지』(1920), 『간이수로지 조선연안』(1945) 등의 울릉도 기술 항목에서 반복 활용되었다. 자료집에는 관련 기술을 비교하여 참고할 수 있도록 해당 자료의 관련 내용을 모두 소개하였다.
1900년 울릉도 시찰위원이 남긴 보고서 원문과 관련 문건 수록
1900년 우용정이 작성한 보고서가 담긴 『울도기』는 대한제국 시기 관리가 조사한 울릉도 내 상황을 잘 보여주는 자료로 잘 알려져 있다. 본 자료집에서는 『울도기』에 수록된 문서를 있는 그대로 번역하여 제시하고, 당시 출장에 동행한 아카쓰카의 보고서 및 한일 양국이 주고받은 외교문서가 수록되어 있는 『일안(日案)』 기사와 교차해서 볼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각주로 제시하는 방식으로 편집하였다.
아카쓰카 출장 기록의 경우 임명 전말과 작성 보고서에 첨부된 문건 전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외교사료관에 소장된 『울릉도 벌목 관계 잡건(欝陵島ニ於ケル伐木関係雜件)』을 저본으로 삼아 관련 문서를 수록하였다. 이 작업을 통해 『주한일본공사관기록』에 빠져 있는 조사 문건까지 추가로 탈초, 번역하여 소개하였다.
『울도기』(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한적실 육당문고 소장, 1900)
1902년 한일 양국 신문에 보도된 스미스의 울릉도 출장보고서
1901년 울릉도에 다녀온 스미스의 출장보고서는 『황성신문』 1902년 4월 29일 자에 실린 국한문으로 소개된 번역본 기사가 잘 알려져 있다. 기존 연구에서는 이 기사를 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출장 직후 스미스가 영문으로 작성하여 8월 20일 부산해관에 보고한 문건 제목은 「1901년 8월 2일 기선 창룡호(蒼龍號)로 방문한 울릉도 보고서(Report on a visit to Dagelet Island made on the s.s. ‘Chang Riang’ on 2nd August 1901)」였다.
이 문건은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가 입수하여 외무대신에게 보고한 공문에 첨부되어 있다. 스미스의 영문보고서를 국한문으로 번역하면서 내용을 축약한 것이 『황성신문』에 실린 기사였고, 이것을 다시 일본어로 옮겨 전달하는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다.
이 자료집에서는 스미스의 영문보고서와 번역문, 『황성신문』 기사, 일본 지방지 『산인신문(山陰新聞)』과 『모지신보(門司新報)』의 1902년 5월 보도 기사 원문을 기록이 생산된 시간 순서대로 수록하여 내용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여러 군데 흩어져 있는 스미스 출장보고서 관련 자료를 모아두고, 수록 내용에 대한 교감작업을 진행하였으므로 향후 대한제국 시기 울릉도 사회에 대한 연구 진행과 자료 활용에 편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Report on a visit to Dagelet Island made on the s.s. ‘Chang Riang’ on 2nd August 1901」
(일본 아시아역사자료센터, JACAR Reference code : B10073483900, 1901년 8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