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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포커스』14호 "러시아의 전쟁: 한반도에서 우크라이나까지"
  • 차재복 동북아역사포커스 편집위원장
러우전쟁과 한반도: 북러 밀착

2024년 6월 19일 새벽,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평양을 전격 방문했다. 순안공항에서 김정은과 나눈 악수와 포옹은 양국 관계의 긴밀한 변화를 상징하며, 북러가 전략적 밀착을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치적 신호였다.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2주년이 되는 해로, 냉전사 권위자인 션즈화(沈志华, 화둥사범대학 교수)는 『중앙일보』(2025. 8. 6.)에 “푸틴은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북한의 포탄과 병력을 원하고, 김정은은 러시아의 군사기술과 핵무기를 원한다”라며 “둘이 결탁한 목적은 전쟁을 발동하고 말썽을 일으키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1950년 김일성과 스탈린의 결탁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이번 『동북아역사포커스』 14호는 한러 수교 35주년을 계기로 ‘러시아와 한반도’를 기획주제로 선정하였다. 최근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이 동아시아 안보지형에 구조적 긴장을 초래하고, 한반도·타이완해협·남중국해 등 ‘역내 화약고’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며, 전쟁의 파장이 한국인의 일상에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 방북 직후 북러는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해 군사협력을 동맹 수준으로 격상시켰고, 약 3만 명의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장에 파병되면서 유럽의 전쟁이 동북아, 특히 한반도까지 확산되었다. 유럽 일부 네티즌은 이를 두고 “북한과 핀란드 사이에는, 북한과 노르웨이 사이에는 단 하나의 나라(러시아)만 있다”, “북한도 유럽연합”이라며 지정학적 이웃 국가로 풍자했다.

『동북아역사포커스』 14호에서는 이러한 지정학적 격동을 배경으로 유럽과 일본의 시각을 포함해 ‘러시아의 전쟁과 한반도’를 다각도로 분석하였다.
 
동북아역사포커스
 

북·중·러 협력과 한반도: 역사적 구조와 현재의 재현  

 
한반도는 19세기 말 청일전쟁(1894)과 러일전쟁(1904)의 전장이었고,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1950)을 거쳐 오늘날 남북 분단체제로 이어졌다. 한국 사회는 1950년 전쟁을 김일성·마오쩌둥·스탈린의 공동기획으로 인식하며, 이는 북·중·러 협력이 전쟁으로 귀결된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다. 이번 14호는 ‘러시아와 한반도’의 역사성과 현실을 종합적으로 조망하고자 ‘러시아와 한반도’를 주제로 6편의 글을 수록하였다.

먼저, 북러 밀착 구도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와 유사한 입장에 선 유럽은 한반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우리는 앞으로 한러 관계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지, 우리 정부와 국민이 머리 맞대어 고민해야 할 숙제를 <특별기고>에서 다뤘다. 니콜라 카사리니(Nicola Casarini, University of Bologna)는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과 동아시아: 유럽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에서 러우전쟁의 지리적 확장과 유럽 안보의 동북아 영향력을 분석하였고, 엄구호(한양대학교)는 「한러 수교 35년 평가와 전망: 새로운 관계를 위한 상호 인식의 노력」에서 양국 관계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향후 과제를 풀어나갈 길과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포커스> 코너에서는 러시아의 전쟁 관련 역사적 분석과 동시대 전략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나바 치하루(稲葉千晴, 名城大學)는 「적대에서 동맹으로: 러일전쟁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러일 관계」에서 양국 관계의 구조적 변화를, 이동욱(동북아역사재단)은 「갈등의 서래(西來): 19세기 영러 대결과 한반도의 지정학」에서 러시아 팽창주의와 한반도 안보의 연관성을, 옥창준(한국학중앙연구원)은 「러시아의 백년전쟁: 크림전쟁과 한국전쟁」에서 냉전기와 탈냉전기의 군사적 연속성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주연(동북아역사재단)은 「러시아의 세계 전략과 한반도: 협력과 갈등의 이중주」에서 러시아 전략의 모순성과 한반도 함의를 제시했다.  
 

동아시아 안보환경의 악화

 
<체험! 역사현장>에서는 연합뉴스 최인영이 2025년 5월 9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 기념행사를 스케치하였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전략적 메시지와 함께,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참석 및 인민해방군 퍼레이드가 보여주는 중러 전략 공조의 대외적 신호를 해석하였다. 

이어 8월 1일 건군절에 중국은 전략 핵잠수함, DF-17 극초음속 미사일, 전자기 캐터펄트 방식의 항공모함 푸젠함 등 핵심 전략자산을 공개하며 미국과 동맹국을 향해 경고 메시지를 발신했다. 중국 국방부장 둥쥔(董军)은 “어떠한 형태의 타이완 독립도 허용하지 않겠다”며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위해 항상 준비돼 있다”고 선언했다(RFI(法国国际广播电台), 政治建军:“能否打仗事小 忠于习主席事大”, 2025년 8월 2일, https://www.rfi.fr/cn/中国/20250801-政治建军-能否打仗事小-忠于习主席事大 (검색일: 2025.8.6.)). 이는 단순한 억지를 넘어 실질적 무력사용 가능성을 시사한다. 러시아 전쟁의 장기화와 미중 전략경쟁 심화 속에 중러 협력과 북러 군사동맹은 구조적으로 강화되고 있으며, 한반도·타이완해협·남중국해 등은 ‘제2의 우크라이나’로 비화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니콜라 카사리니는 러우전쟁이 북·중·러와 한·미·일 간 신냉전 구도를 고착시키며, 한반도를 1950년 이후 처음으로 대리전 양상의 군사충돌지대로 만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트럼프-이재명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EU의 동아시아정책 재조정과 북·중·러 결속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또한 북러 협력은 북한의 핵·미사일·우주기술 역량을 강화하고, 러시아의 대북 경제협력은 제재 회피를 가능케 하여 비핵화 가능성을 사실상 무력화한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 안보에도 직결되며, NATO와 EU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과의 전략 협력이 이미 진행 중임을 강조한다.

실효성 있는 유라시아 전략의 필요성

 
탈냉전 이후 한국 정부는 북방정책(노태우), 햇볕정책(김대중), 동북아균형자론(노무현), ‘비핵·개방·3000’ 구상(이명박), 동북아평화협력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박근혜), 신남방·신북방 정책(문재인) 등 다양한 유라시아 전략을 제시했으나, 모두 북한 핵문제에 가로막혀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24년 기준 한국은 세계 6위 수출국이지만, 보호무역 강화와 미중 기술패권 경쟁,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갈등이 수출주도형 경제에 위협이 되고 있다. 무역 다변화와 함께 북핵 문제를 넘어서는 유연하고 실효성 있는 유라시아 전략이 절실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방일을 앞두고 요미우리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2025.8.19.) 한반도 평화가 동북아 전체의 안정에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북극항로 개척을 매개로 미·러·북·한·일 협력 가능성을 제시했다. 북극항로의 경제성이 주목받는 오늘, 우리에겐 중장기적 新유라시아 전략적 구상이 더욱 긴요하다. 

이번 『동북아역사포커스』 14호는 한러 수교 35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 재설정과 한국 정부의 북방정책, 유라시아 전략 수립에 필요한 학술적 기반을 제공한다. 특히 유럽학자의 한반도 분석과 우리 학계의 한러 관계 재설정에 대한 진단은 新유라시아정책 개발과 학계의 향후 연구방향 설정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하니,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