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술회의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소주제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굴곡이 많은 한국 현대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입체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이번 학술회의는 주제를 7개 패널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재단은 이 학술회의의 오프닝과 클로징 성격을 가진 <패널 1: 일본사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탈식민화>과 <패널 7: 전쟁 범죄, 배상, 그리고 기억>을 주도적으로 기획했다. 또한 광복 전후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패널 5: 북한의 형성>에도 재단 연구위원이 발표자로 참여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원은 <패널 2: 미군정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 <패널 3: 이승만에 관한 논쟁>, <패널 4: 1948~1950년 헌법제정과 제헌국회기의 정치>를 맡아 기획하였고,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는 <패널 6: 언어의 복원과 교육 및 대학의 재건>의 기획을 맡았다.
공동주최의 장점을 살려 다양한 배경의 전문 연구자들을 발표자로 초청할 수 있었다. 특히 발표자의 절반 이상이 해외 또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연구자였는데, 이렇게 외국 연구자를 폭넓게 섭외한 데는 조직위원으로 참여한 스탠퍼드대학교 문유미 교수의 활약이 컸다. 국내 연구자 역시 16개 대학과 연구소에 재직 중인 전문가 30명이 발표자, 토론자, 사회자로 참여했다. 이렇게 다양한 기관의 연구자를 초청할 수 있었던 것은 재단의 담당자들뿐 아니라 서울대학교 안도경 교수와 명지대학교 이택선 교수 등 공동주최 조직위원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소통과 협조로 이루어진 학술회의 현장 운영
학술회의 공동주최는 기획 면에서 여러 장점이 있으나, 실무적으로는 실시간 의사 전달과 논의 내용 공유 과정에서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작년 말부터 학술회의 전까지 진행된 네댓 차례의 회의에서 안건이 중복 논의되는 경우도 있었고, 특히 조직위원으로 참여한 문유미 교수는 외국 대학 재직 중이라 연락이 제때 닿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공동주최 측과의 소통은 예상보다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아마 학술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자 하는 마음이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안도경 교수와는 격식을 갖춘 이메일뿐 아니라 전화나 메신저를 이용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택선 교수는 참가자 명단의 오류를 수시로 확인해 전화로 알려 주며,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바로 업데이트해서 공유했다.
조직위원뿐만 아니라 공동주최 기관의 실무진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사회과학원 이규호 실장과는 행사장 사전 답사를 통해 리셉션 데스크, 발표자 좌석 배정, 도우미 인원 배치, 참가자의 동선 및 안내 배너 위치 등 세부사항을 자연스럽게 협의할 수 있었다. 국내 연구기관들 내에 학술회의 준비 절차가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 있는 점도 이번 공동주최의 원활한 진행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아쉬움 점도 있었다. 해외 참가자를 위한 국내 답사 프로그램이 무산된 것이다. 재단은 국제학술회의 때마다 해외 참가자를 위한 국내 답사 프로그램을 마련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번에는 특별히 국립중앙박물관을 답사지로 정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반가사유상, 청자·백자 등 한국 문화의 정수인 유물을 전시하고 있고, 무엇보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손기정 관련 기증 유물 전시와 AI로 복원된 독립운동가 전시,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실물 공개 등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답사 프로그램 참여 희망률이 낮아 아쉽게도 취소되었다.
당일 학술회의 발표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행사장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학술 행사에서 흔히 발생하는 마이크, 스피커, 영상자료 등 기술적인 문제 없이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영어 발표가 많은 만큼 통역도 중요했는데, 김하양 통역사 팀은 발표문과 토론문 등을 사전에 철저히 검토해 질 높은 통역으로 발표 내용을 정확하게 국내 청중에게 전달했다.
행사 운영도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학회장을 찾은 청중이 무더위에 밖에서 식당을 찾아 헤매지 않도록 행사장 구내식당 식권 배부하였고 많은 청중들이 불편 없이 식사를 마치고 학술회의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다. 주한체코공화국대사관의 이반 얀차렉(Ivan Jančárek) 대사와 주한인도네시아대사관의 시깃 아리스 프라세티요(Sigit Aris Prasetyo) 참사관이 학회장을 찾아 첫날 오전 발표를 경청한 것이다. 개회식 사회를 맡은 안도경 교수가 이들 내빈을 소개하고, 청중의 박수를 유도해 방문에 감사를 표했다. 첫날에는 고가의 통역 수신기 한 대가 분실되었는데 둘째 날 무사히 환수되어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기조 강연, 스티븐 코트킨 교수의 특별한 방문
이번 학술회의에는 특별한 기조 강연자를 모셨다.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자 프린스턴대학교 명예교수인 스트븐 코트킨(Stephen Kotkin) 교수다. 국내 학계에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도 참석하는 국제 지정학과 역사학의 권위자로, 권위주의 정부의 본질을 분석한 스탈린 자서전 3부작(3권은 출간 예정)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다수의 유명 팟캐스트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대중에게 현대 국제질서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코트킨 교수의 초청은 쉽지 않은데, 공동주최 측의 인연과 노력이 큰 힘이 되었다. 문유미 교수는 코트킨 교수와 같은 학교에서 재직 중이고, 안도경 교수 역시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정치학자로서, 코트킨 교수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기조 강연을 한 스티븐 코트킨 교수(2025년 8월 2일)
어렵게 성사된 기회인 만큼 재단은 기조 강연 외에 언론 인터뷰도 추진했다. 코트킨 교수의 서울 도착이 학회 시작 날짜와 가까운 데다 주말이 끼어 있어 분주히 움직였다. 사전질문을 이메일로 전달해 서면 답변을 받았다. 스탈린의 결정이 한국의 국제질서에 미친 영향에 초점을 둔 인터뷰 질문에 대해 코트킨 교수는 스탈린이 관여했던 1945년 이후 국제질서 형성의 관점에서 한국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어 답변하였다. 코트킨 교수가 서울에 도착한 후 진행된 인터뷰 기사는 사회과학연구원 서민철 조교의 연락 조율, 문유미 교수의 통역 감수, 재단 홍보팀의 사진 촬영 등의 협조 덕분에 원활히 이루어졌으며, 학회 시작 전 게재될 수 있었다.
코트킨 교수의 기조 강연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강연 내내 학회장을 이리저리 다니며 청중과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고자 했다. 60분이라는 만만치 않은 시간동안 이루어진 강연인데도 요지 정도만을 적은 종이 하나를 들고 머릿속에 담아둔 생각을 하나하나 풀어냈다. 고도로 응축된 단어와 강렬한 술어로 구성된 짧은 문장을 즉흥적으로 구사하는 강연은 온라인 영상에서 본 그대로였다. 기조 공연은 현재 사회과학연구원 유튜브 채널에서 시청할 수 있다.
학술회의 성과와 네크워크의 확장
학술회의는 행사 당일의 발표와 토론 못지않게, 대회 이후 성과를 정리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조직위원회는 이번 학술회의의 발표문을 발전시켜 출판물로 엮을 계획이다. 여러 발표자가 이에 관심을 보이며 참여 의사를 밝혔다. 재단은 발표의 확장 초록(영어 1,000단어 분량)을 선별·수합해 재단 영문저널 The Journal of Northeast Asian History 2025년 겨울호에 Conference Proceedings라는 제목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끝으로 이번 학술회의에서 구축한 연구자 네트워크를 유지·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국내외 연구자들은 학회장과 패널 발표장, 그리고 오찬·만찬 자리에서 얼굴을 맞대고 생각을 교류했다. 필자 역시 같은 패널 발표자, 토론자들과 함께 순댓국을 먹으며 교류하였는데, 글로만 접하던 연구자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이번에 학술회의에서 맺어진 인적 네트워크가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학술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패널5: 북한의 형성> 발표 모습 (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 2025년 8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