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은 지난 7월 25일(금) ‘한일 역사 교과서 서술 비교와 상호 이해’라는 주제로 제2회 한일 역사교육포럼을 개최하였다. 이 포럼은 한일 양국의 역사교과서 집필진 간 교류를 중심으로, 양국 간 역사서술의 차이를 학술적으로 비교·검토하고 상호 이해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한 것으로 지난 2024년 7월 개최 이후 두 번째다.
첫째 날, 일본 교과서 집필진의 서울 역사문화탐방
7월 24일 오후, 서울에 도착한 일본 교과서 집필진은 곧바로 남산 둘레길 입구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함께하며 교류의 문을 열었다. 남산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저와 조선신궁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었다.
다음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30주년을 맞이한 종묘로 이동하였다. 종묘는 조선 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유교식 사당으로, 국가의 정통성과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제례공간이다. 참가자들은 최근 5년간의 보수공사를 마친 국보 종묘 정전(正殿) 등을 관람하며, 조선 왕조의 건국이념과 정치 철학, 유교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기회를 가졌다.
종묘를 찾은 일본 교과서 집필진(2025. 7. 24.)
이어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조성한 환구단(圜丘壇)으로 옮겨갔다. 이 유적은 황제국 선포와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국내외에 천명하는 상징적 시설로, 고종 황제가 거처하던 덕수궁(구 황궁)과 마주보는 자리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3년, 조선총독부는 환구단의 대부분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경성철도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을 건립하였다. 현재는 환구단의 부속 제단 건물인 황궁우(皇穹宇)만 남아 있다.
환구단이 세워졌던 이 지역은 원래 조선 후기에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남별궁(南別宮)이 있던 곳이다. 이러한 역사적·지정학적 배경은, 대한제국이 황제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공간적으로 표현했는지, 그리고 일제가 이를 어떻게 훼손하고 지우려고 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이번 답사에서는 이러한 점을 중심으로 역사적 맥락과 상징성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환구단을 찾은 일본 교과서 집필진(2025. 7. 24.)
둘째 날, 역사교육포럼 개최
제2회 한일 역사교육 포럼은 7월 25일(금) 오전 9시 30분부터 개최되었다.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회의장은 자리가 부족할 만큼 많은 참석자로 붐볐다. 한국에서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반영한 교과서가 처음 적용되고, 일본 역시 2018년 개정된 학습지도요령에 따른 역사교육의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한일 양국의 교과서 집필진이 만나 서로의 고민과 방향을 공유하는 것은 학술적·교육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이번 포럼은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세 세션으로 구성하였다. 제1부는 ‘형성과 기원’을 주제로 고대사 서술을, 제2부는 ‘교류와 충돌’을 주제로 중근세사 서술을, 그리고 제3부는 ‘기억과 평화의 역사교육’을 주제로 근현대사 서술을 다루었다. 각 세션은 양국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를 중심으로 역사 서술 방식의 차이를 비교·분석하며 진행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성과와 특징이 있었다.
첫째, 세계사적 관점에서의 상호 존중과 개방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한일 양국의 교과서 집필진은 자문화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세계의 다양성과 타문명·타문화에 대한 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를 통해 향후 양국 간 역사 교과서 문제에서의 협력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한일 간 역사갈등 극복을 위한 공동의 문제의식과 방안을 제시하였다. 한일 공동교과서 제작의 가능성과 함께 일본 내 동아시아사 과목 신설 논의 등 다양한 제안이 제기되었다. 특히 서로 다른 역사 해석이나 학설을 교과서에 함께 작성하는 방식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셋째, 서로의 교과서 서술 한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공유하였다. 일본 측은 자국 교과서에 청일전쟁 등 주요 사안에서 당시 조선의 입장이 경시되는 점, 세계사 교과서에서 한일 관계 서술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한국 측도 일본 관련 서술과 설명이 부족한 사례를 인정하고 공유하였다. 양국 모두 교차 비판과 성찰의 자세를 보인 것이다.
넷째, 한일 양측은 교과서에 최신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교육적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동부 유라시아론’에 대한 학문적 소개와 비판적 검토가 있었다. 일본 측은 최근 일본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동부 유라시아론’의 발전 배경과 이론적 기반을 소개하였다. 이 이론은 20세기 중반 일본 학계의 중국 중심적 시각에 대한 반성과 중국 민족주의의 영향력 속에서 ‘책봉체제론’이 주변국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간과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향후 한국 측의 동아시아 지역사 서술에 참고 가능한 담론으로 평가된다.
이번 포럼은 자국 중심의 역사 인식을 넘어 균형 잡힌 시각과 상호 존중의 역사관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한일 양국의 역사 학계와 교육계가 연구 성과를 공유하며, 상생과 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천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취지와 의의가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제2회 한일 역사교육포럼 참가자(2025. 7. 25.)
제2회 한일 역사교육포럼 발표 장면(2025. 7. 25.)
셋째 날, 백제 역사유적지구 답사
7월 26일 오전, 일본 교과서 집필진은 공주 무령왕릉과 부여 정림사지를 답사하였다. 올해로 세계유산 등재 10주년을 맞는 백제 역사유적지구는 고대 동아시아의 문화교류사와 일본 고대사와 관련된 핵심 유적지다. 특히 이곳은 백제의 주체성과 국제성을 유물과 건축유산을 통해 실증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현장으로 일본 교과서에서 보다 균형 잡힌 역사 서술을 유도하고, 나아가 한일 역사교육의 상호 이해 및 협력 증진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되었다.
부여 정림사지를 찾은 집필진(2025. 7. 26.)
넷째 날, 웅진시기 공산성 체험
7월 27일, 일본 교과서 집필진들은 답사 마지막 일정으로 공산성 유적을 탐방하였다. 공산성은 고대 한중일 삼국 간 정치적·군사적 문화교류의 흔적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유산이며, 백제 수도방어체계의 핵심이자 중국·일본 고대 왕성과 비교 연구가 가능한 구조를 지닌 성곽이라는 의미가 있다. 일본 교과서 집필진은 이러한 공산성의 역사적 특성과 구조를 통해 백제가 고대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주체적으로 대응하며 외교와 방어 전략을 전개한 나라였음을 직접 확인하였다.
3박 4일 동안 진행된 제2회 한일 역사교육포럼과 역사문화탐방 일정은 짧지만 매우 밀도 높은 교류의 시간이었다. 서울의 역사현장부터 백제 유적지까지 이어진 여정은 양국 교과서 집필진이 서로의 역사 인식을 직접 마주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번 포럼에서 양국 참가자들은 한일 양국의 역사교육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학계와 교육 현장이 함께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였다. 이러한 지속적인 교류는 한일 공동교과서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